오랫동안 잔상이 남아있던 친구에게 몇 년을 고심하다 SNS 친구 추가를 했다. 뭘 하고 사는가 싶어 가끔 음침하게 계정을 찾아가게 되는 것보다는 대놓고 팔로우를 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물론 그 과정까지가 힘이 들어서 버튼을 누르는 데에는 연락 왔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의 이성보다는 이제는 견딜 수 없다는 충동이 자리 잡았을 뿐이다. 나의 오랜 친구가 수락이 될 때까지의 찝찝함을 기다려주었는데 모든 걱정들이 무색하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섭섭했고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안 시간보다 모르게 된 시간이 길었다. 과정에서는 떠올릴 수 있는 물건이나 매개체가 적어서 모르게 되는 속도가 빨랐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문득, 아주 문득 타코야키라는 소재에서 그 친구가 떠올랐다. 특별하지 않은 밤이었다. 우리가 함께 보냈던 수많은 시간 중의 단 한순 간뿐이었고 나는 더 많은 시간 동안 홀로, 또는 다른 이들과 타코야키를 먹었는데 유난히 그 기억만이 선명했다.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문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보인다. 의도가 두드러지지 않은 채 콘텐츠 안에 녹아들어 있다면 친숙함도 커진다. 타코야키라는 일본식 말보다 만화를 열심히 본 우리 세대라면 '문어빵'이라는 단어가 친근할지도 모른다.
꼬마 마법사 레미. 우리 세대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는 유명한 마법 소녀 만화이다. 그 속에서 파란 머리의 사랑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문어빵이었다. 동글동글한 빵은 이쑤시개로 콕하고 찔러 먹었는데 입안에 넣고 행복해하던 모습만 떠오른다. 실물로 보기 전에 사진도 아닌 그림으로 보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좋았다.
동글동글 문어빵 맨이라는 만화도 있었다. 문어빵 맨들이 악당에 맞서 싸워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문어빵들이 꽤 스케일이 큰 활약을 했구나 싶지만 그때는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맛있어 보였고 근사해 보였다. 이 두 가지 만화를 통해 내가 갖게 된 감상은 먹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조금 자라고 나서 집 근처에는 가끔 타코야키 트럭이 왔다. 빨간 트럭에 등불을 매달고 타코야키라고 일본어와 한국어로 커다랗게 적혀있었다. 타코야키만으로 장사가 되지 않는지 닭꼬치와 어묵이 있었다. 중고등학교와 학원가로 향하는 사이의 아파트에 위치했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있었다.
내가 처음 먹은 타코야키는 썼고, 물렁했고, 문어는 찾을 수가 없거나 너무 작아서 음미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장사를 잘하는 집은 아니었다. 아빠가 술을 먹으면 가끔 닭꼬치를 사 왔고 엄마는 떼를 쓰면 비위생적인 곳이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마지못해 사 왔다.
내가 먹어본 곳은 그곳이 유일했으니 타코야키란 원래 그런 부류인 줄 알았다. 쓰고 물렁하고 문어는 제대로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에도 붕어는 들어있지 않고 소시지빵의 소시지는 그렇게 크지 않냐며 합리화해왔지만 틀렸거나 내키지 않는 문제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의 집과 나의 집은 도보로 3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는데 어떤 날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면서도 어떤 날은 멸망한 세계에 단둘이 남은 것마냥 애틋했다. 그 시간들을 보낸 게 학교, 그 애 집 앞, 집 근처 공원, 도서관 앞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거리들이었다. 점점 뒤틀려간다는 걸 인식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서로에 대해 관심이 있으니까 싸우는 게 아니겠냐며 나를 다독였다.
잘 오지 않는 어느 애틋의 날이었다. 중학생 때와는 다르게 고등학생이 되니 더 늦은 시간에 학교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더 늦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그 애 집 앞에 앉아서 말을 나눴다. 우리의 몇 안 되는 '대화' 시간이었다.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말들을 소중하게 여겼다. 맑은 밤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타코야키 트럭 주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근처에 사는 모양이었다. 이거 먹으라며 타코야키 한 상자를 두고 갔다. 여느 때와 같은 맛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좀 더 차가웠다. 입에 감도는 맛이 너무 씁쓸해서 먹는 걸 포기했다. 더 이상 이런 맛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언니네 학교에 놀러 갔다. 난생처음으로 가본 대학가는 맛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중 타코야키 집이 보였다.
씁쓸함 대신 따뜻함을 찾고 싶었다.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언니의 말을 믿고 싶었다. 친절하게 웃으며 건네주셨던 타코야키는 놀랍게도 맛있었다. 따뜻했고 겉은 바삭했고 속은 부드러웠다. 안에는 커다란 문어들이 있었다. 내가 먹은 건 가짜였구나. 모양이나 이름만 그렇다고 다 같은 게 아니었는데. 그제야 알았다.
한 번 그 맛을 보고 나니 두 번 다시 트럭을 찾지 않았다. 쓴 걸 알면서도 애써 합리화하며 먹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그 친구와도 그때부터 멀어졌다. 따뜻함과 그 느낌 하나만 맛보고 싶다는 이유로 텁텁한 타코야키를 굳이 찾아 먹은 것처럼, 이미 망가진 관계에서도 한줄기의 애정 때문에 친구를 놓지 못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나는 연락을 끊어버렸고 타코야키 트럭도 자취를 감췄다. 그걸 보고 엄마는 한마디 내뱉었다.
"그럴 줄 알았어. 청소도 하나도 안 하고 맨날 더럽더만. 이제 너도 안 사 먹었잖아."
타코야키를 먹지도 않았는데 입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다행히 그런 기분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이제 타코야키는 맛있는 음식이었고 맛이 생각날 때면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역 앞까지 걸어 나갔다. 먹을 때마다 이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 진짜라는 사실을 감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