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닥으로 갈라진 발. 비위가 약한 나는 닭발을 어릴 때부터 싫어했다. 실물을 본 적도 거의 없었는데, 닭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마당에 있을 법한 닭이 떠올랐고 그다음으로는 그 닭의 발이 떠올랐다. 그것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모양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저건 도저히 못 먹겠다 싶었다.
하지만 인간의 인생이 언제부터 뜻대로 됐던가. 뭔가 당연하게, 닭발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지금 마라탕을 좋아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안타깝게도 나는 마라탕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닭발에 주먹밥이나 계란찜을 추가해서 먹는 건 당연한 ‘공감대’가 되었다.
싫다고 이야기하면 꼽을 주거나 뭐라 하는 이는 없지만 왜인지 모르게 먹어야만 할 것 같았다. 나 혼자 느꼈을 것 같은 무언의 압박.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곱창과 닭발, 마라탕을 좋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 굳이 싫다고 손 들고 싶지도 않았고 다들 좋다고 하는 게 왜 좋다고 하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다.
결국 그 공감의 끝자락에 들고 싶었던 지라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닭발을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만 굳어졌다.
닭발을 처음 먹은 건 스물한 살, 생일로부터 이틀 전이었다. 손이 얼어붙는 새해 초에, 닭발로 유명한 포차에 갔다. 이제는 오래된 친구와 생일을 기념해서 만났다. 합법적인 성인도 되었겠다, 소주 한 병과 닭발, 그리고 주먹밥을 시켰다.
술집은 연초라서 사람이 많았고 밤이라서 시끄러웠다. 사실 그 술집은 무슨 이유인지 조명도 제대로 켜놓고 있지 않았는데 사람의 얼굴만 간신히 구분이 갈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닭발이 어떻게 생긴 지도 잘 보이지 않았다.
시뻘건 국물 속에 둥둥 떠다니는 발들은 어둠에 가려서인지, 양념에 가려서인지 그냥 음식 같았다. 여기는 무뼈 닭발이 아니라서 좀 불편한데, 친구는 닭발을 계속 뱉어냈다. 매운맛이라면 환장을 하는 나에게 그곳의 닭발은 딱 내 취향일 정도로 맵고 맛있었다. 닭발의 맛을 느꼈기보다 그 겉에 배어 있는 양념이 너무 맛있었다.
닭발은 먹는 것보다는 뱉는 게 많아서 내가 밥을 먹으러 온 건지, 뼈를 뱉으러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너무 귀찮은 음식인 것 같았다.
다음으로 닭발이 생각난 건 한참 뒤였는데, 닭발이 그리웠기보다는 적절한 매운맛을 못 찾았기 때문이었다. 친구가 다음에 먹을 때는 꼭 무뼈 닭발을 먹으라는 게 생각이 났다. 어디서 시켜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에 자주 먹던 치킨집에서 무뼈 닭발을 파는 것을 발견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닭발을 주문했고 결과적으로는 대만족이었다.
그 집은 가격이 비싼 대신 양은 훨씬 많았다. 김과 참기름을 넣어서 주먹밥까지 만들어먹었다. 무뼈 닭발은 맛있게 매웠고 뱉을 건 없었지만 씹어야 할 게 많았다. 평소에 물렁뼈도 씹지 않는 나였기에 이것도 씹어야 하나? 몇 번은 고민했다.
내가 먹고 있는 게 닭발이라는 생각이 들고, 마당에서 뛰어노는 닭과 그 발이 연달아 떠오르는 순간, 나는 젓가락을 내려놨다. 또 한동안은 먹지 않았다.
이 이상한 거리감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중소기업에서 만든 협찬품을 먹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파는 닭발도 먹었다. 가끔 치킨집에서도 닭발을 시키고 대형마트에서 마감세일을 하는 닭발을 사 오기도 했다. 어느 날은 너무 먹고 싶었다가-사실 그런 날이면 항상 먹었다-갑자기 닭이 떠올라서 젓가락을 내려놓기도 했다.
지금도 닭발과 나는 묘한 거리감 속에 있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웬만해서 거리감을 느끼지 않지만 닭발과는 꾸준히 권태기와 절정을 번갈아가고 있다. 닭발의 맛을 알지만 그 노란 발만 생각하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 좋아한다고 물으면 좋아하는 음식. 하지만 이상하게 매일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음식.
적나라한 모습 때문일까, 나의 쓸데없는 상상 때문일까. 머릿속에 뛰어다니는 닭이 조금만 덜 리얼했더라도, 실제로 닭의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더라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이 거리감 속에서도 여전히 닭발을 찾는다. 다른 사람들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 공감대의 끝자락에 발 하나 정도는 걸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