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와 쌈장

쌈장을 좋아하세요?

by 한열음

어릴 적에는 순대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순대를 두르고 있는 껍질-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이게 최선이다-때문이었는데 입이 예민했던 나는 식감이 다른 음식을 싫어했다. 특히 순대껍질은 어린 아이가 씹기에는 질겼다. 물론 너무 오바한 거 아니야, 싶겠지만 식감 때문에 어린시절엔 고기도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한결 같이 부드러운 식감의 생선만을 먹었을 뿐이다.



두꺼운 껍질 안에 말랑한 속이 있다는 것을 안 뒤에는 껍질을 벗겨서 먹었다. 비닐봉지를 씹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되면서 순대도 자연스럽게 먹게 되었다. 이빨이 튼튼해서 그랬던 걸까?






순대를 사면 매번 쌈장을 준다. 그 쌈장은 집에 있는 쌈장과는 다르게 묽은 쌈장이다. 거기에 찍어 먹지 않으면 조금 비리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쌈장은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순대 1인분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항상 떡볶이도 같이 시킨다. 너무 짜지도, 달지도 않은 국물에 찍어 먹을 때면 쌈장이 없어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쌈장이 아예 없는 건 일종의 사형선고와도 같다. 그 사형선고를 겪게된 건 작년 가을쯤이었다.



가끔 TV에서는 지역별 음식이라든가 음식을 먹는 방법에 대해 보여주고는 했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오래 전부터 퍼져있었던 미신처럼 그 중 가장 유명했던 건 ‘순대’를 먹는 방법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 먹는다는 말. 나는 그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마 서울 사람들이 우리가 쌈장에 찍어 먹는다는 걸 알면 그런 느낌일 것이다.



서울의 자취방 앞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순대트럭이 왔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는 이야기에 1인분만 사오게 되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소금을 보고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 때는 내가 반신반의했던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니 나쁘지 않았다. 막상 찍어먹어보니 나름대로 괜찮기도 했다.




하지만 가을날, 내가 굉장히 지쳐있던 날이었다. 과제도 많고 일도 많아서 밥할 기운도 없었던 때에 창원에서 자주 사먹는 프렌차이즈 분식집이 배달이 된다는 걸 알게됐다. 혼자 먹기에는 분명 남을 게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떡볶이와 순대를 먹고 싶었다. 창원이 그리웠던 탓도 있었다. 그래서 자취생이 분식에 쓰기에는 조금 사치스러운 비용까지 지불했다. 배달이 도착하고 음식들을 꺼내들다가 나는 크게 실망을 했다. 쌈장 대신 소금 하나가 온 것이다. 결국 서러워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인데 낯선 타국에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었다.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바보 같았다.




그 이후로는 창원에 내려올 때마다 순대를 먹었다. 묽고 짭짤한 쌈장에 순대를 듬뿍 찍어먹을 때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기분이 든다. 아마 이건 평생 바뀌지 못할 나의 고향의 흔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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