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다닌 지 한 달째, 누구보다 빠르게 난 직장인의 생활에 적응했다. 프로 직장인들이 보면 우습기 그지없는 쫄다구 신입사원이겠지만 이제 알에서 갓 태어난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번 한 시간씩 걸리는 출근길도, 나에게 쏟아지는 업무들도,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 사수 분이 가끔 뒷목을 잡을 짓을 하고 있지만 나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애써 믿고 있다.
회사에 들어오고 제일 힘든 게 뭐였냐고 물어본다면 처음에는 ‘밥’이었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이 자율이었다. 먹고 싶을 때 나가서 알아서 들어왔다. 한 시간이긴 하지만 한 시간보다 늦게 들어온다고 해서 눈치 주는 사람은 없었다. 말 그대로 자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으러 가는 ‘때’가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불쌍한 나는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매번 자리에 앉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혼자 먹는 게 싫어서가 아니었다. 이 망할 놈의 청담동은 혼자 먹을 식당이 마땅치 않았다. 물가도 만만치 않았고 메뉴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아니면 혼자 있는 인턴이 안타까웠는지 사수 분께서는 날 자주 챙겨주셨다. 입사 일주일 동안 매일 사수 분과 단둘이서 밥을 먹었던 것 같다. 그게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해서, 나는 소문으로만 듣던 제휴식당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이 생기면 혼자 먹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혼자 먹어도 괜찮은 메뉴들밖에 없겠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내 메신저에 제휴식당에 밥을 먹으러 갈 사람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빠르게 답을 보냈다. 나 말고도 제휴식당에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 파트 모두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낡은 동네 분식집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청담동과 ‘낡은’, ‘분식’ 이런 단어들이 모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신기했다. 그 작은 가게는 그다지 위생적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북적였고 우리도 간신히 앉을 수 있었다.
사수 분께서 여기는 소세지김밥이 유명하다며 이걸 시키자고 하셨고, 그때는 지금보다 눈치를 많이 볼 때라 옆에서 고개만 계속 끄덕였다. 내가 입사하게 되면 넵, 알겠습니다, 이 두 말밖에 할 일이 없을 거라고 한 친구의 말이 맞았다. 완벽한 네네 봇이었다. 다른 분들의 메뉴 선정에도 난 딱히 불만이 없었다. 안 먹어본 곳이기도 하고, 일단 분식집 메뉴가 거기서 거기니까.
어색한 대화들이-아마 나만 그랬을 것이다-오가고 어떻게든 반듯한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분주함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첫 번째로 등장한 게 바로 소세지 김밥이었다.
사실 김밥이란 메뉴는 나에게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고 소세지 김밥 같은 특별한 종류와도 좋은 기억이 없었다. 밖에서 먹는 김밥은 주로 김 때문에 예민해졌다. 학창 시절부터 소풍날 누군가가 싸오는 파래 김밥 때문에 괴로웠고, 동아리에서 매번 시키던 김밥집에서 파래김을 사용하는 게 괴로웠다. 비린내가 잔뜩 나는-누군가에겐 소중한 음식이겠지만 죄송합니다-김은 내가 먹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한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날 구역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나온 김밥은 냄새가 나지도 않았고 오히려 두툼한 소세지가 가운데를 차지해 맛깔스러워 보였다. 어색함을 느끼면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 역시 그런 부류였다. 달갑지도 않은 음식을 두고 맛이나 보자며 젓가락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놀랍게도 맛있었다. 다들 소세지가 들어찬 모습을 보고 별 기대가 없었는데 김밥을 먹고 표정이 달라졌다. 음식이 맛있어서 난 긴장이 조금 풀어졌고, 그날의 대화도 즐거웠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비 내리는 날씨처럼 우울했던 날이었다. 나의 전공을 계속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답을 내렸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과 그럴 수 없다는 이성이 맹렬하게 부딪히고 있었고 나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친한 친구는 나와 상황이 달랐고 나와 상황이 비슷한 친구는 자신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오로지 스스로 판단해야만 했다.
비가 오는 날, 춥고 꿉꿉한 날에 이상하게 라면이 먹고 싶었다. 다른 인턴 동기와 함께 분식집으로 향했다. 우리는 라면 두 개와 김밥 한 줄을 시켰다. 한 줄은 바로 소세지 김밥이었다. 매콤한 라면과 달콤 짭짤한 김밥을 마주하니 이상하게 내 마음이 흘러나왔다. 편안해졌나 보다. 동기는 조용하고 침착하게 내 말을 잘 들어주었고, 솔직한 답변도 잊지 않았다.
도망치는 게 아니냐는 내 말에 그것도 전략이라고, 언니가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이 또 어떻게 언니 인생을 바꿀지 모른다고 이야기해줬다. 그런 답변은 나의 예상도 벗어난 것이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냐는 말도 들었다. 이번에 난 웃음을 터뜨렸다. 난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다 그만두고 싶었다.
놀랍게도 난 도망가지 못했다. 그만두지도 못했다. 그만두려는 마지막 순간, 내 안에 남아있던 한 톨의 애정이 비참한 전 연인처럼 날 붙들었다. 날 사랑한다면 아직 버리지 말아 줘.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오히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우리 회사 근처의 명물이라면 난 당연히 소세지 김밥을 꼽는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 겉으로만 보면 그저 그런 김밥 중 하나이다. 좀 신기하긴 한데 또 어디에나 있을법한 그런 녀석이다. 그래도 그걸 맛보게 되면 다들 처음에는 눈이 동그래진다. 말랑한 김밥과 단단한 육즙이 흐르는 소세지는 찰떡궁합이다. 동그란 한입거리는 먹게 되면 자꾸 생각나고, 우울함이나 허기도 달래준다. 언젠가 당신이 청담동에 오게 된다면, 꼭 소세지 김밥을 먹어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