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새지 않을 때까지

외면하지 말기

by 한열음

우리 집은 내가 첫 입주자인 새집이었지만 번지르르한 것과는 다르게 속은 부실했다. 비가 새고 벽지가 울고, 처음 이사 온 한 달동안 수리기사를 몇 번이나 불렀는지를 모른다. 얼마 전, 서울에 기록적인 비가 내렸을 때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학원에 다녀온 사이 벽지까지 모두 얼룩져 수리기사를 불러야 했다. 우리 집의 수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뒤로도 비는 계속 내렸지만 나는 아무 걱정이 없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아랫집에서 비가 샌다며 우리 집에 다시 방문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다음 날부터 일주일정도 집을 비워야 했고 이야기했더니 안된다고 했다. 결국 그 날 오후에 바로 약속을 잡았다. 저녁에는 학원이 있었는데,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도 수리기사는 오지 않았다. 그나마 30분만 늦은 관리인은 자신이 있을 테니 볼일을 보러 가라고 했다. 내가 계속해서 거절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뭐 훔쳐갈까봐 그러세요?”



헛웃음이 나왔다. 20대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건장한 체구의 30대 남성을 들여놓으면서 걱정하는 게 그런 부분일 리가. 엄마는 전화로 남자가 집에 몰카라도 설치하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나도 그게 두려웠다. 남자친구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도 믿을 수 없는 판국에 겨우 ‘관리인’이라는 직함 하나 가진 자신을 믿으라니. 관리인은 나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걱정하는 건 물건 몇 개가 사라지는 것이고, 내가 걱정하는 건 내 얼굴과 행동이 ㅁㅁ대 ㅁㅁ녀라고 박제되어 인터넷에서 남자들의 웃음거리나 성욕처리가 되는 일이었다. 한 시간을 더 기다리다가 나는 결국 학원에 갔다. 애써 내가 운이 좋기를 바라며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 날 돌아와 집안을 샅샅이 뒤져야 했다.





나는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동안 매년 반복되는 ‘양성평등 글짓기’에 참여하며 차별은 우리 할머니 시절에나 있었던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 옛날이야기는 나도 가끔 실감할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건 가족이었다.


할머니 댁에 가면 남자들은 먼저 밥을 먹고 여자들은 남은 걸 먹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남자들의 시중을 들어야 했다. 장손이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지지만 난 떨어질 고추도 없어서 일을 도와야 해야 했다. 어른들은 내가 크면 제사에 참여할 수 없으니 어릴 때 참석하라고 했다. 외할머니가 쓰러져도 외할아버지는 10명이 넘는 친척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였다. 큰외삼촌은 뭐하러 밖에 나가냐며 앞으로도 이렇게 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겪은 것들이 단지 어른들이 옛날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는 동안, 강남역 살인 사건이 있었고,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됐다. 가끔 나는 ‘너 페미야?’라는 말로 사상검증을 당하고 한국의 페미니즘은 변질되었다며 여성우월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친구들은 때때로 대학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몇 년이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사실에 난 놀란다. 여자 화장실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있다. 그 구멍들이 무서워 화장실을 못 가는 친구가 있다.

나의 삶은 어느 하나 과장된 것이 없다. 단 한순간도 여성으로 살아보지 못했으니 남성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온 삶들을 겪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시해버리는 것은 비열한 행위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성별이 판단의 요소가 되지 않는 것이다.




사회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사회는 완벽할 수 없다. 모두가 노력해왔기 때문에 지금 사회는 번지르르한 겉을 갖추고 있다. 하나씩 고쳐나가다보면 우리 집이 더이상 비가 새지 않는 것처럼 사회도 언젠가 속까지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비가 새도 괜찮다, 또 바꿔나가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