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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pr 09. 2021

어느 날의 방황

여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문장들이 나를 이루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 시간이 찾아올 때면 여전히 나는 견디는 법을 찾지 못한다. 그 누구도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비슷한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그랬다. 



좌절이나 한계가 나를 성장시킨다는 건 알지만 내 안이 바닥나도록 갉아먹으면 어딜 딛고 일어서야할지도 모른다. 성장이 아니라 학대다. 이렇게까지 우울한 일이 아닌데 우울하다. 날이 더우면 쓰레기가 금방 냄새가 나듯이, 내가 혼란스러우니 추악한 것들도 금방 밖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그게 싫었다. 




누군가는 그걸 표출하지 않는 것도 미덕이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표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런 사람일 수는 없을까. 남들은 없는 것 같은, 글로도 남기고 싶지 않은 저열함을 왜 나는 샘솟듯 가지고 있을까. 행복도 즐거움도 열정도 아닌 덩어리들을 품고 있다. 마구 자라고 있다. 갈 곳 모르고 튀어대는 공들처럼, 방심한다면 금방이라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인간인지 되새기게할 것이다. 추악하다 생각하면서 멈추지 못한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후회에 잠기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대책을 찾았다. 나를 채우는 것이다. 나를 평가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나를 채우고 싶었다. 기반을 다지고 나라는 사람을 틈 없는 팬케이크처럼 두툼하게 만든다. 빠른 시간 안에 이뤄낼 수 없는 걸 이루기 위해 지금부터 노력한다. 멋진 그림이었다. 



그러다 문득 싫어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지? 나의 일상은 무언가를 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삶인가? 나는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싶은 거지? 왜 나는, 무언가를 해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눈에 보이는 결과와 남에게 증명할 수 있는 걸 찾는 걸까. 왜 나는 해낼 수 없는 나를, 실수를 하고 마는 나를, 이 상황에 지쳐 도망가고 싶은 나를 미워하는 걸까. 나를 아는 건 나밖에 없는데 왜 나는 내가 아니고 싶을까. 머무르고 싶었다.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음미하면서 가만히 자리에 있고 싶었다.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아 책을 읽었다. 나를 구원하는 건 언제나 활자들이다. 작가의 오롯한 시간이 담겼을 글자가 나와 발을 맞춘다. 나는 독자로서 시간을 공유한다. 문장 하나와 단어 하나에 얼마나 큰 의미들이 담겼을지 생각하면 섣불리 넘길 수 없다. 속으로 문장을 읽고, 다시 눈으로 읽어나간다. 글자들을 꼼꼼히 씹으며 머릿속으로 책을 그려낸다. 살아있는 인물들을 보며 순간을 견딘다. 



내 기분과 상태는 나도 종잡을 수 없어서 이따금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내 삶의 기쁨과 환희를 생각하면 감정의 널뛰기가 있어 다행이라여기지만 이렇게 찾아오는 무기력을 생각하면 그런 기쁨과 환희도 보잘 것 없어진다. 






나의 삶이 문장이면 좋겠다. 찾고 싶어지고 읽는 게 즐겁고, 돌이킬수록 여운을 남기면 좋겠다. 문장이 쌓이는 걸 기다리는 게 지금의 내가 찾은 최선이다.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것처럼 문장들을 좇고 있다. 적나라한 태양 아래 숨쉬지 못하는 이처럼 책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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