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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y 16. 2021

정착할 수 없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자-뻔한 말이 교훈인 이유-

글만은 계속해서 쓰겠다 다짐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문장과 단어의 깊이가 얕아지고 생각이 짧아진다. 책을 읽을 때에는 새로운 표현을, 단어를 쓸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러지를 못한다. 이게 불행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오늘로 이제 거의 한 달째이다. 서울에 홀로 있는 게 벌써 그렇게 되었다. 대학에 올라온 후 코로나 때문에 1년 가까이 창원에서 지냈다. '학교를 나가거나', '공부를 해야 하는' 어떠한 의무 없이 그곳에서 머무는 건 고민과 자괴감과 그걸 이겨내기 위한 성취들이 따랐다.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건 몰랐던 즐거움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오래 지내는 것도 좋았다. 언제까지나 옆에 붙어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1년 동안 질리지 않은 것을 보니 짧은 시간의 외로움이 깊게 각인된 것 같다. 시간을 촘촘하게 나눠 쓰는 동안에도 가족들과 보내는 데에는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시답지 않게 떠드는 시간은 유한하고, 이런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붙어있던 적은 처음이라, 갈등도 자연히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재수하는 1년 동안에도 집에서 지냈지만 그때는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가족들도 나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도 거리가 필요하니까. 가족이란 멀리 있을수록 애틋해지니까. 서울에 있을 번듯한 집이 아깝기도 했다. 올해 10월쯤에는 이제 빼야 하는데. 분명 그런 집은 다시 구할 수 없을 텐데. 꼬박꼬박 돈을 내면서도 방을 이용하지 않는 게 아까웠다. 남들이 부러워한다는 서울 생활도 하고 싶었다. 이곳저곳 놀러 다니면서, 날 좋을 때 서울의 인프라를 누리고 싶었다. 





간신히 대면 수업을 하나 신청해 서울에 왔다. 알바도 시작했다. 이 곳을 나의 정착지로 만들고 싶어서 이런저런 노력을 했다. 좋아하는 장소도 만들어보고,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보고, 좋아하는 순간들도 기록해보고. 그럼에도 어느 순간 지쳐있다는 걸 느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은 의미가 없었다. 



서울에서 이방인인 것은 당연하다. 그저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제대로 된 연고도 없는 곳에 혼자 왔다. 같은 나라 안이지만 살던 곳에서 동떨어져 집 근처 마트도 지도를 보지 않으면 찾아갈 수 없는 기분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내가 사는 곳임에도 사는 곳이 아닌 기분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이방인인 것이 거칠게 느껴질 때는 나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잘 적응한 친구들을 보게 될 때이다. 나처럼 까마득하게 먼 곳에서 찾아왔으면서 외로워하지 않는다. 괴로워하지 않는다. 길을 잃은 채 머물러야만 하는 아이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서울에 살았던 것처럼 녹아들었다.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고. 자신의 고향은 그리워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서울에서 벗어나지를 않았다.



그런 사실이 내 옆을 맴돌았다 사라질 때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는 남들처럼 서울을 즐길 수 없는지. 왜  나는 서울에서 행복을 찾을 수가 없는지. 왜 나는, 이곳에서 홀로 울어야만 하는지. 그렇게 하루를 우울해하고, 이틀을 우울해하고, 삼일을 우울해했다. 




내가 혼자 살아가는 것도 고달파졌다. 나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아무의 간섭도 없는 상황에서 그걸 해내는 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우울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무렵이 되니 괜찮아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갑자기 외로워서 울고 싶었던 것처럼 또 나는 갑자기 괜찮아졌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모두들 적응을 잘할 수는 없는 게 틀림없다고, 그저 나는 고향을 너무 사랑했을 뿐이라고. 향수병이 심하게 걸린 게 틀림없었다. 남들의 그리움의 깊이와 나의 깊이가 같을 수 없는 건 당연한데, 왜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한 걸까. 





이제는 껴안아버렸다. 뜨거운 외로움을 안고서,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를 건넌다. 파도가 몸을 때려 날 피곤하게 하고 차가운 물에는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사실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는 바다다. 편한 길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니까. 그렇게 여전히 바다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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