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성장할 계기를 얻었다. 납득되지 않아 빙 둘러졌던 말은, 순식간에 나를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친 말은,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반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나의 밑거름이 되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은 부끄럽지 않아. 이 말만이 생각났을 때 그랬다.
유난히 운수가 좋던 날. 간만에 찾아온 운수 좋은 날을, 나는 만끽하고 있었다. 후회 없이 일을 마친 게 얼마만이던 지, 기분이 두둥실 들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화 한 통이었다. 2학기 수업이 대면이냐,라고 물어서 어차피 휴학할 거라 상관없다 했다. 1년 재수하고 1년 휴학하면 군대랑 같다고 웃더니, 어차피 빠른-빠른 년생-이라 상관없겠다 했다. 그때부터 석연치 않았다. 비웃는 건가? 내가 느끼는 싸함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여태까지 축적된 빅데이터가 알려주는 '좆됨'의 신호라는 말은 언제나 틀리지 않다.
시험 기간이라 바쁘지 않냐는 말에 어차피 공부를 안 한다고 웃었고 상대는 공부를 안 하면 어떻게 서울에 가냐고 말했다. 말한 게 맞을까. 나는 비꼬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명백히 당황하고 있었다. 논점과 관련이 없는 말하기를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오랜만이었고 상대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학점이 얼마냐는 말에 나는 또 당황했다. 더 당황스러울 수가 있구나. 여태껏 나는 그 누구의 학점도 궁금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왜 궁금한 건지. 할아버지 같다고 농담조로 말했더니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않냐고 적반하장 식이 었다. 학점을 말했더니 생각보다 잘 받았다고 대꾸했다. 그러더니 어차피 작년에는 절대평가라 에이반 비반이지 않았냐고 했다. 이쯤 되니 싸함은 이미 논리적 근거가 되어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이렇게 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끊고 나니 화가 났다. 왜 화가 났을까. 말마다 비꼬아서? 캐내는 듯이 질문해서? 답을 찾지 못했다.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남의 앞이니까 화를 눌러 담고 꼭꼭 눌러 담아 삼켰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어른이었다.
몇 시간이 더 지나서 이 일을 다시 떠올리고 이야기하며 정리했다. 친구와 격분해서 이야기하다 나도 몰랐던 본심이 나왔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면서! 왜 노력하지 않고 대충 운이 좋아서 대학 잘 간 애처럼, 성적 잘 받은 애처럼 말해? 지가 뭘 안다고?"
적어도 고등학생 때부터는, 대충 살지 않았다. 줄곧 노력했다. 가고 싶은 대학이 있었고 학과가 있었고 배우고 싶은 공부가 있었다. 내가 얻어낸 결과에는 내 노력들이 바탕에 있었다. 모든 노력이 보답받는 건 아니지만 이루어낸 것 아래에는 노력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내가 대학에 올 수 있었던 건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했기 때문이고, 수능날 떨면서도 실력을 발휘했기 때문이고, 이 학과에 올 수 있었던 건 울면서 원서를 넣었기 때문이고, 학점을 잘 받은 건 못 받은 사람보다 노력했기 때문이다.
대외활동을 한 건 지원서를 열심히 작성하고 면접을 잘 봤기 때문이고, 학회나 동아리에서도 성과를 낸 건 내 자리에서 기대에 부응하며 노력했기 때문이다. 내가 일러스트를 잘 다루는 건 겨울 방학 두 달 내내 매일 한 시간씩 강의를 듣고 연습하고 복습했기 때문이고, 프리미어를 잘 다루는 건 열 시간씩 영상을 편집하며 배워나가기 때문이고, PPT를 잘 만드는 건 수십수백 개의 기획서를 보고 또 봤기 때문이다. 오늘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밤을 새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지원서를 썼기 때문이고 그림 계정이 점점 성장하는 건 캐릭터를 오랫동안 준비하고 사람들과 계속해서 소통하기 때문이고 언어 자격증이 있는 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꾸준히 공부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대충 운에 기대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기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 애초에 그럴 운이 있었다면 그렇게 많이 실패했을 리가 없지. 나의 인생 모토는 후회하지 않는 오늘이고, 넘어지는 만큼 일어서는 게 목표다.
나는 내 삶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 건지 시간을 헛되이 쓰는 건 아닌지 지금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 몫을 해내기 위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마저 버려가며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더 서러웠다.
나는 내 시간을 부정당한 것 같아 화가 난 거였다.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다. 포기하고 싶어서 울고 싶었던 때도 있다. 이미 희미해져 버린 기억들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내가 힘들었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절대 부정하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
이 사건 덕분에 나는 나를 돌이켜볼 수 있었다. 내가 노력해온 시간들을 타인과 나의 시선 속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힘들었던 일상에 내가 또 위안이 된다. 다시 견딜 힘을 얻었다. 한동안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