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하지 말고 관심을 주세요
요새 나의 일과에 새로운 생존 시간이 추가됐다. 고름 흡수 밴드를 붙여 고름을 빼주는 것이다. 이렇게 들으면 마냥 심각한 일 같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어릴 때부터 이상한 잔병치레에 몸은 약해졌지만 마음만은 굵직해졌다. 자잘한 상처나 고름, 통증에는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는다. 내 몸에 대한 꼰대가 된 것이다. 이 때는 더 아팠는데 이 정도면 괜찮아, 하는 안일함이 흉터와 함께 나에게 남아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밴드를 붙이고 있는 곳은 대략 7곳 정도. 못난 딸은 잔소리를 피하고 싶어 두 곳뿐이라고 대충 둘러댔다. 제일 심각한 건 두 곳인데 하나는 오른쪽 종아리 옆이고 하나는 왼쪽 발목 부근이다. 정말 이런 곳까지 균형을 맞출 필요가 없는데. 어처구니가 없다.
오른쪽 종아리는 이렇게 된 게 벌써 한 학기째다. 그 정도면 병원에 가야죠, 하고 다그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나았다가-완전히 내 피부가 되었다가-다시 번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핑계로 대고 싶다. 요지는 내가 긁지 않으면 괜찮다는 거다. 너무 피곤해서 손대지 않아 나았다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박박 긁어버리는 바람에 지금처럼 됐다. 과제 탓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
왼쪽 발목은 창원이 나에게 준 엿이다. 창원에서 보내던 마지막 날, 어쩜 그렇게 모기가 많던지. 선풍기도 없는 뜨거운 방에서 모기한테 진수성찬이 되어줬다. 그걸 긁었더니 한참 있다 덧났다. 길가다 진물이 흘러 발을 적실 정도이니 말은 다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런 진물들도 대일밴드만 붙인 채 대충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진물들을 흘리며 사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고, 여름이다 보니 물에 닿는 시간이 길어져 통증도 잦아졌다. 아픈 기간 자체가 길어지기도 하니 이제는 끝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귀찮아서 내버려 뒀지만 나는 종강을 했고, 조금 나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 같았다. 몸에 고름이 많이 쌓여있다는 진단을 받은 친구의 말도 영향을 줬다.
약국으로 가 장비부터 마련했다. 이미 다 떨어진 소독약과 솜을 대신할 소독약이 묻어있는 솜. 가격은 비싸지만 의사들도 쓴다는 소리에 솔깃해서 구매했다. 소독약과 솜을 합한 금액보다 배가 비싸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비싼 줄 알았더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거다. 고름을 빼는 밴드는 두 장에 만원이었다. 잘라 쓰는 형태에서 여러 번 쓸 수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비싸다니! 창원에 있을 때는 엄마 옆에 서서 우와 비싸다, 하고 한마디 거드는 게 끝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나의 생활비가 되었다. 자취하고 제일 서로 울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약이 비쌀 때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집에 와서 열심히 소독을 하고 밴드를 발랐다. 원래 하루 이틀이면 고름이 빠져나가는데, 어제는 외출했을 때 밴드 끝으로 고름이 흘러 날 곤혹스럽게 했다.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다리에서 물을 흘린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게다가 일행과 함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질병의 병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아서 휴지로 대충 닦아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나의 밴드는 고름으로 빵빵하다. 낫지 않은 작은 상처들에도 밴드의 자투리들을 발랐는데 그 부분도 빵빵해져서 놀랐다. -동일한 환경의 상상을 위해 웬만하면 사진을 첨부하려 하지만 이건 안 하는 쪽이 서로에게 이로울 것 같다-
요새 들어 나는 잠만 자고 있다. 가고 싶었던 회사의 지원서도 쓸 기분이 들지 않았다. 먹고, 자고,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외면하고만 있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진로에 대해 고민하느라 마음이 편한 순간은 별로 없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삶의 연속이다. 그래도 난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방치해두는 것보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투자하며 고름을 빼줘야 한다. 막상 빼본다면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까지도 곪아있다는 걸 알 수 있고,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내 마음이 곪아 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휴식에 죄책감을 갖지 말자. 휴식이 우리를 치료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