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에는 끝이 있으니까
우울을 기록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건 큰 결심이다. 그 일이 잊히게 되더라도, 글을 쓰기 위해 그 순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 글을 다시 읽을 때마다 그 일이 날 맴돌게 될 테니. 그래서 잊고 싶은 일들은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되새길수록 선명해지고, 되새기는 순간마저 기억에 남기 때문에. 우울의 주기가 오면 나는 도망가버린다. 모두 포기해버린다. 무섭고 두려우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눈물만 흘리면서 멀리, 멀리 떠나버린다. 예전에는 우울을 기록으로 해소했는데 그 기록이 몇 년 뒤의 나에게 너무 무겁게 다가왔기에 기록을 포기했다. 브런치에 글을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던 날들도, 그림도 그리지 못했던 날들도, 모두 우울의 기간이었다. 아무것도 날 해소시키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 망가진 배터리에 충전을 하면 아주 잠깐 괜찮아졌다가 이내 다시 전원이 꺼지고 만다. 난 입사한 이후, 줄곧 그렇게 살았다.
회사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다. 회사생활은 바쁘고 재밌었고, 내가 어릴 적부터 줄곧 머릿속으로 그려온 꿈의 직장이나 다름없다. 내가 말하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회사다. 하지만 난 통근이 처음이었고, 출근도 처음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아마도.
초중고등학교는 모두 도보 5분에서 10분 거리였고, 대학마저 아예 먼 곳으로 오는 바람에 도보 5분에 자취방을 구했다. 그런 나에게 넉넉 잡아 왕복 3시간은 너무 먼 거리였다. 아침이 고되고, 저녁은 더 고됐다. 휴일은 온다는 자체만으로 즐거웠고 그것 말곤 없었다. 차라리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게 나을 정도였다. 눈앞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놓치면 화가 많이 났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지쳤다. 저번 주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당장 시험을 앞에 두고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나에게는 이게 우울이었다. 냉동고에서 위치가 정해져 굳어버린 푸딩처럼, 마음이 굳어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온통 짜증과 짜증과 짜증 투성이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난 또 포기했다.
짜증은 오늘까지도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다. 나는 정신없고 고단하고 스트레스만 받는 나날 속에서 삶을 이겨내는 법을 몰랐다. 어제 동아리 활동을 이은 점심 약속. 눈을 뜨니 생리가 터져있었다.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자, 난 고민에 빠졌다. 할 일은 밀려있고 생리도 터졌는데, 집에서 쉬는 게 낫지 않을까. 분명 그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번, 똑같은 선택을 했다. 힘들면 포기하고 애써 합리화하고. 그래서 처음으로 날 거슬러보기로 했다. 꾸역꾸역 약을 먹고 집을 나섰다. 배가 아프지만 바람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버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슬아슬한 게 보였다. 이왕 가는 거 뛰어볼까, 싶었다. 그렇게 바람을 느끼며 달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악 하고 넘어졌다. 굽 높은 샌들에 발목이 뒤틀린 건지, 발이 꼬인 건지, 원인은 제대로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 넘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리막길인 바람에 퍽하고 넘어지기보다 주르륵 넘어졌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내리막길에서 조심하라며 아프겠다고 위로를 해줬다. 벌떡 일어나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무릎은 좀 깨져있었는데,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바람을 느끼며 걷는 동안에도 난 생각이 많았다. 내 사고의 흐름과 기분이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줄을 몰라서,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넘어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화끈거리는 무릎과 구멍이 나버린 바지 때문에 일어서자마자 웃음이 났다. 나이 스물셋을 먹고 또 화려하게 넘어졌구나. 내가 생각하던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기분이 들었다. 뭐든 어때, 정말 뭐든 어때. 난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안 할 수 있는데. 고민하던 게 전부 씻겨 내려갔다.
버스에 앉아 확인해보니 무릎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긴바지를 입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득 2인 3각을 하다 넘어졌던 고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아프고 서러웠는데. 외로웠었다. 지금은 어쩐지 그때보다 괜찮았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즐거웠다. 오랜만에 서로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가벼운 이야기들도 빼놓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도 여러 친구들과 연락을 했다. 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만날 날을 정하면서, 문득 서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도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가 있고, 같은 학교를 나와 같은 직무에서 고민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서로의 출퇴근길을 함께 해주는 동기들이 있고. 서울에서는 누구라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줄곧 서울에 적응하지 못한 건 내 마음가짐의 문제 같았다. 서울이 계속 나쁜 곳이면 좋겠다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 서울을 좋아하고 싶지 않다는 어린애 같은 생각. 서울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이곳에서 앞으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했다. 난 창원을 더 좋아하고 싶은데 변하는 내가 낯설었다. 이곳을 좋아하게 되는 게 두려웠다. 더 이상 창원에 내려가지 않을까 봐, 명절 때만 집에 내려가고, 고향이 정말 고향으로 남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까 봐 무서웠다.
다들 이렇게 고향을 떠나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