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없어서 무리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짜릿한 실수를 했다. 일과 시험,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아보겠다며 일부러 무리를 했다. 출근 첫 주와 둘째 주에 집에 와서 기절하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면 그런 무모한 결정은 하지도 않았을 텐데. 여기서부터 꼬였던 것 같다. 출퇴근 시간마다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며 단어를 외우고 집에서도 단어를 외웠다. 회화 수업까지 미뤄가며 꽉꽉 공부를 했다. 처음으로 중국어가 괴로운 시간이었다.
막상 공부를 하면 재밌었지만 어렵고 힘들었다. 나는 왜 내 실력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왜 그렇게 항상 생각이 짧은 선택을 하는지. 과거가 마냥 원망스러웠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었다. 포기하는 게 훨씬 편하니까. 포기하면, 퇴근하고 바로 집에서 잠을 잘 수도 있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단어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눈을 부릅뜨고 있지 않아도 된다. 포기하면 편하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타협하며 나아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나는 여태껏 그런 삶을 살아왔다. 나는 줄곧 편안하고 안락한 길만 선택하며 나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다음에 또 하면 되지. 안일한 소리였다. 아무도 나에게 가라고 하지 않은 길을 홀로 가겠다고 결정했으니, 이번만큼은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은 그러고 싶었지만 내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내가, 날 미워할 것 같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어? 왜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어? 나는 내가 미워지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언제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공부를 놓지 못했다.
공부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안 했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 애매한 사이에 걸쳐서, 적당히 합리화할 수 있는 곳을 찾아나갔다.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 타협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토요일 밤, 제일 하기 싫은 부분을 미뤄놓고 딴짓만 하던 나는 우연히 중국어 카페에 들어갔다. 종종 들어가던 곳이었다. 4급 시험을 앞두고는 꽤 자주 들어갔던 것 같은데,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조차 충족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모든 문명과 완전히 멀어져 있었다. 내가 간신히 기억하는 요일 뿐이었고 날짜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9월 11일 ibt 후기라는 글자가 보였다. 난 잘못 본 줄 알았지만 후기라는 글자가 들어간 게시물이 너무 많았다. 내가 현실에서 도망갈 수 없도록 내 정신을 계속 두들겨댔다.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머리가 깨끗해졌다. 오늘이 시험이었구나.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허탈했다. 내가 병원에 갔다 집에 오던 시간이 시험 시작 시간이었고, 닭강정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던 시간이 시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내가 그 어떤 의미 있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화가 났다. 허탈한 마음과 분노가 끓었다. 못 보더라도 쳤어야 했다. 결과가 어떻든 시험장에 앉아서 시험지를 봤어야 했다. 5급에 걸었던 내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다들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그랬겠냐고 위로했고, 다음엔 잘 치려고 액땜한 거라 위로했지만 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시험은 날아갔지만 나의 다른 일정에 차질을 줄 수가 없었다. 벼르고 벼르던 중국어 과외를 신청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선생님을 구하고 일정을 잡았다. 이것저것 조율을 하다,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그런데 중국어는 무슨 목적으로 배우시나요?
이 카톡 하나를 가지고 10분을 고민을 했다. 중국어를 배운 계기는 간단했다. 다들 말하는 그 덕심, 그놈의 덕질이었다. 나랑 덕질은 죽어도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거의 태초부터 나는 덕후였고, 아마 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나의 수많은 최애들을 외칠 것이다.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게 된 건 작년 초였다. 내가 썼던 <너와 닮은 나라서>의 주제인 드라마 진정령이 날 이 길로 이끌었다. 다들 분량도 제일 많고 인기도 제일 많은 두 주인공을 열렬히 외칠 때 나 혼자 저 애를 안고 끙끙 울었다. 드라마 속 펴질 줄 모르는 미간을 가진 그 애는 실제로 디즈니 공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방긋방긋 잘 웃었다.
매일 같이 그 애 이름을 검색하고, 사진을 저장하고, 영상을 줄기차게 봤던 나는 그때까지도 딱히 중국어를 배울 마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애에게 어떤 사건이 생겼었다. 하지만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누군가가 번역해주지 않으면 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남이 선택해준 것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애한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 줄도 모르고,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나는 분했다. 나의 무력함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교재를 알아보고, 그다음 주에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 선택당하는 이가 되고 싶지 않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영어보다, 일본어보다도,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게 재밌었다. 가장 순수한 공부였다. 그저 재밌었고, 궁금했고, 더 알고 싶었다. 영어처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일본어처럼 오랫동안 알아오던 것도 아니었는데 난 순식간에 중국어에 매료됐다. 그래서 그저 공부했다. 목표가 없이도 매일매일 공부를 했다.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보람이 가득한 날들이었다.
선생님의 물음에 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재밌어서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남들 눈에는 오히려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스물셋, 취직이 더 가까운 나이에 그저 재밌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하고 있다니. 그것도 시간과 돈을 잔뜩 투자해가면서. 그렇지만 중국어를 할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난 나의 모든 걱정과 시름과 아픔을 잊을 수 있다.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그것마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오늘은 처음으로 중국어 과외를 받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중국어를 발음하려니 쑥스러웠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선생님은 내가 궁금했던 것을 가르쳐줬고, 우리는 함께 나아갈 목표를 정했다. 나에게 과외란 언제나 도망치고 싶거나, 졸리거나, 재미가 없거나, 배가 고프거나, 때때로 뿌듯한 경험이 다였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내일의 과외가 기대됐다. 5급을 공부할 때는 중국어가 어렵고 두려웠다. 어쩌면 여기서 포기해서,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 머무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수업을 들으면서, 발음 하나하나를 고쳐나가면서, 내가 가슴 깊이 중국어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재미 때문에 중국어를 좋아했다는 게 기억났다.
앞으로도 회사에 적응할 때까지 난 무리할 것이다. 오늘은 날이 좋아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다.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잔뜩 생각났으니 글을 쓸 것이다. 중국어는 꾸준히 해야 좋으니 계속 공부할 것이다. 그림도 그리고, 내가 만든 굿즈도 팔 것이다. 지켜나가고 싶은 게 많다. 내가 오랫동안 사랑해줬으면 하는 게 많다. 조금 더 견디자. 언제나 즐겁기만 한 건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