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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Oct 10. 2021

인생의 노잼 시기가 왔다

취직하기 싫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놀랍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회사 얘기밖에 없다. 집에만 있어도 이야기보따리가 넘쳐났던 나의 일상은 온통 회사, 회사, 회사. 어느 순간부터 축 늘어지기 시작해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노력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를 위해 하던 다짐과 응원의 말들은 나에게 닿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말 그대로 '노잼 시기'가 온 것이다.


본디 회복이 빠른 나는 노잼 시기라고 부를 것도 없이, 의욕이 사라졌다가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성격과 사고를 가지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되겠지만, 오히려 그 편이 나에게는 적성에 맞았다. 한 가지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망가지게 되기 때문에.


많은 목표가 있었다.

올해 안에 HSK 6급을 따고, 독립 출판으로 책도 내고, 일러스트 계정과 계속 키워서 1000 팔을 만들자! 회사에 익숙해지면 주 2회 테니스를 다니고, 주 3회 회화학원을 다니자! 글을 쓰는 것도 포기하지 말자!

이런 목표들은 어느 순간쯤에 바스러졌다. 정신을 차리니 아무 의지도 없었다. 나는 나의 불행을 많이 겪었지만 겪을 때마다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한다. 실망하고 우울해한다. '때가 되면' 자연히 괜찮아진다. 때는 언제 찾아올까? 나는 줄곧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게 회사 때문인 것 같다. 밥도 주고 월급도 주는 우리 회사. 그런데도 싫다. 이런 말이 얼마나 우습게 들릴지, 대충은 알지만 그래도 해보자면, 회사에 있으면 꿈이 없어지는 것 같다. 나에게 이렇게 체계적인 생활은 오랜만이다. 애초에 고등학생 때도 원한다면 조퇴, 결석을 일삼았으니까. 자리를 지키고 견뎌야만 하는 시간은 고역이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가끔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된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쳇바퀴를 도는 것 같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그걸 듣고 나는 좀 의아했다. 반복되는 생활이었지만 난 '재미'가 있었다. 내가 책임질 건 나밖에 없었고, 나의 스케줄은 모두 내가 관리할 수 있었고, 모든 일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고 설계하는 게 편한 내 입장에서 학교는 오히려 잘 맞는 편이었다. 회사는 당연히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했고, 내 스케줄과 업무, 처리 방식은 회사가 결정한다. 이게 진정한 기계의 부품이 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존재가 어떤 하나의 일을 메꾸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난 무엇을 바랐던 걸까?


서울에서 인턴을 하면 좀 더 대단한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그저 부품일 뿐인데.






명절에 입시를 준비하느라 고생인 사촌동생을 보고 기분이 묘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자발적으로 재수생까지 되면서, 나는 대학만 들어가면 다른 일들은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사람들은 대학생이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했고 고등학생인 사촌동생도 대학생을 부러워했다. 대학생은 돈 있고 시간 있는 줄 알지. 기업들은 이력서에 보태라며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착취하고 있다. 수업을 들으며 서포터즈들과 동아리를 한다고, 내 주위에는 모든 시간을 노력으로만 살아가는 애들이 많다.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툴을 만지고 기획서를 쓰고.


그렇게 하면 뭐가 될 수 있을까?



결국 10시에 출근하고 7시에 퇴근하는,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은 직장인이 된다. 일이 재미가 없다던가, 지겹다던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아직 한 사람 분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끙끙거린다. 내가 해온 것들이 얼마나 의미가 없고 얼마나 도움이 되지 않는지 깨닫는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잊는다. 내가 어떤 면에서 사랑받을 사람인지도 잊어서, 나를 온전히 미워하는 마음밖에 남지 않는다. 내 삶이 허무해진다.



직업의 의미에 대해 올해 들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취직이라는 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스펙을 쌓고 나서,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 멀리해왔던 작년과 달랐다. 3학년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압박감이 느껴졌다. 전공 얘기나 공모전 얘기들을 하던 동기들은 마치 똑같은 수업을 듣고 말하는 것처럼 똑같은 취업 고민만 얘기해왔다.



나에게 직업은,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일한다면 커피만 따라도 즐거울 거라며, 꿈을 찾기를 조언해왔다. 나는 엄마의 말들을 듬뿍 받으며 꿈을 퐁퐁 키워나갔다.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아야지. 그게 내 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랐다.



미래에 대해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언젠간 이 삶을 끝내게 되는 순간 내 삶을 돌이켜본다면, 어떤 시간들을 가득했으면 좋겠는지.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은 나의 직장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 직장이 어떤 직장이길 바라는지, 내가 어떤 일을 하길 바라는지. 행복한 순간이 가장 많을 곳에 가고 싶었다. 그런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 해도,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완전히 암흑 투성이다.







목적과 꿈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잘 살아가길 바라는 것뿐이다. 연료가 없는 차에 채울 연료가 없다면, 연료가 생길 때까지 차를 보살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매일 맛있는 밥을 먹고, 좋아하는 드라마와 웹툰을 보고, 보송보송한 이불에서 잠드는 것. 이런 행동들을 반복해나가면 언젠가 연료가 채워질지도 모른다. 그럼 또 그때는 치열하게 달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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