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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Nov 13. 2021

미운 정도 정이라더니

떠날 때가 되니 그리워진다

아늑하고 행복한 창원에 있다 홀로 서울에 올라올 때면 마음 한 구석이 의연해짐을 느낀다. 이곳에서는 홀로 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가 자립하기를 도와준 게 아니다. 잘못 떨어져 버린 밥풀처럼 나는 그저 불시착해버린 것이다. 그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라는 걸, 이전까지는 왜 알지 못했을까.


KTX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면 엿 같은 서울에 또 와버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에스컬레이터가 한 칸, 한 칸 올라갈 때마다 나는 더 마음을 추슬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넌 혼자야.


창원에서는 쉴 틈 없이 바쁘게 굴었지만 서울에 오는 순간 이상하게 풀어졌다. 똑같은 내 시간이었지만 마치 창원에서의 시간은 귀하디 귀한 황금 같았고, 서울에서의 시간은 벌레가 생길 정도로 썩어버린 쓰레기 같았다. 그 괴리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항상 돈이나 살림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싫었다. 사실 내가 여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 대신해주고 있다는 뜻이었겠지만, 난 그만큼 숙련되지 않았다는 걸 변명으로 삼고 싶다. 아무리 배달의 시대라고 해도 정말 내가 먹고 싶은 1인분만큼은 팔지 않았고 설령 팔더라도 음식들이 택시라도 타고 오는지 배달비가 어마 무시했다. 음식을 해 먹으면 남는 게 일이었다. 어느 방면으로도 자취의 이점 같은 건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 거지 같은 청파동에서 끈질기게 살았다. 내가 대학생이 된 순간부터, 난 줄곧 청파동에 살았다. 아무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정이 들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카페나 식당들이 생기고, 좋아하는 골목들이 생겼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라오는 순간들도, 집 뒤의 시장길도 좋아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즐겁고, 카페에서 책을 읽는 순간들도 좋다. 씻고 나와 거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도, 작은 1인용 소파에 기대 있는 것도 편안했다.



무서워하던 곳에서도 좋아하는 것들이 쌓이니 그럭저럭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었다. 가끔 친구와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서울이 아무리 싫다, 싫다 해도 청파동은 결국 제2의 고향이라고. 아무것도 몰라 무서울 시기를 함께해준 건 이 동네였다. 처음 하는 통근에 힘들어하면서도 이사를 가지 못했던 것도, 사실은 청파동에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왕복 두세 시간의 교통길보다도, 청파동이 소중했다. 그 신호를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난 언제나 이기적인 사람이라, 내 생각밖에 못하는데. 내가 청파동을 선택했다는 건 단순히 편리함이 아니라 낯선 동네로 떠나는 두려움이 내재되어있었다는 걸. 월세를 걱정한 게 아니라 그저 난 또다시 낯선 곳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번 이사를 준비하며 톡톡하게 느꼈다. 내가 마냥 서울이 싫고 끔찍하다고 여긴 것도, 서울에서도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란 걸. 내가 10년 넘게 살던 아파트에서 떠날 때도 이상한 기분은 잠시이고 말았다. 그때는 오래전부터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기도 하고, 이 동네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그리 우울하지 않았다. 설령 떠나더라도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은 달랐다. 이곳은 떠난다면, 한동안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영영 떠나버리는 것이라서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출근길, 우리 집까지 오는 길, 이 모든 게 이제는 안녕이다. 두 번 다시 이 집에 올 일이 없다는 건, 지금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순간이 됟 수 있다는 건 기분이 묘하다. 마지막, 이 말은 언제나 외로운 말이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며, 이번 기회에 만나지 않으면 사라질 수 있는 인연들을 위해 노력하고자 마음먹었다. 나는 놓치고 싶지 않고 더 알아가고 싶은 이들이라 일부러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속을 잡았다. 일요일이면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닐 집처럼, 지금 나와 이어진 인연들도 내가 서울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인연이 아닐 수 있다.






계속 나는 가족과 친구들을 저울질하고 있다. 나의 일상이었던 가족에서 떨어져 나온다는 건 훨씬 무섭고 고독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나의 친구들은 대부분, 내가 대학생이 된 후부터 만나게 된 이들인데 이들은 내가 창원에 영원히 발을 붙이는 순간 만날 수 없게 된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을 죽을 때까지 못 만난다는 건, 그들을 만나는 게 일상이었던 내 일상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니게 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난 아직도 저울질을 멈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인생의 우선순위를 턱턱 결정해내는 건지, 그 답을 지금의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서울이 마냥 밉지 않아서,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이 마냥 나쁘지 않아서, 괴로운 나날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날 위로하기로 했다. 내 인생은 더 최악일 수 있었고 더 끔찍할 수 있었다. 서울이 나에게 더 모질었을 수도,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이 전부 나쁜 사람일 수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있다는 자체가 사치다. 모든 인연을 정리하더라도 돌아가고 싶은 가족이 있고, 어떻게든 악착스럽게 이어가고 싶은 인연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아름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한동안은 상실과 외로움에 파묻혀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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