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했습니다
퇴사를 했다. 길다면 길었을 3개월이었고, 짧다면 짧았을 3개월이다. 6개월까지는 못하더라도 4개월은 채우고 싶었는데, 집 문제가 꼬여 그러질 못했다. 분명 입사 때에는 단기 임대 방도, 셰어하우스 1인실도 많았는데 막상 11월 중순에 방을 구하려 하니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8월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2학기 개강을 앞둔 시기여서 그랬던 것뿐인데 종강도 한참 남은 12월 중순까지는 방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얼레벌레 입사를 한 것처럼 퇴사도 얼레벌레 하게 됐다. 이 자리가 나의 자리가 아니게 될 거라는 게 얼마나 슬펐는지, 회사 사람들은 이젠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애틋했다. 매일 퇴사하고 싶다는 소리는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막상 원치 않은 퇴사를 하게 되니 아쉬움만 가득했다.
우리 회사는 첫 회사로 나쁘지 않은 회사였다. 내 기준에서는 그랬다. 타사 인턴들보다 월급도 많이 주고, 점심도 공짜로 주고, 간식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고. 사내 분위기도 좋고 흔히 말하는 꼰대도 없었다. 직장인이 되어 책임을 진만큼의 스트레스는 있었다. 그래서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걸 배웠다. 한동안은 많이 울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운 적이 있고,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서도 울었다. 누군가에게 혼이 난 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혼이 났던 건 아마 초등학생 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중학생 때부터는 내 잘못이어도 당당했다. 누군가가 크게 피해를 본 것도 아니고, 그게 혼날 일이라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래서 누가 혼을 내도 어쩌라고, 싶은 심정이 강했다.
막상 내 잘못으로 혼이 나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잘못의 크기를 따지긴 어렵지만, 피해로 인한 크기를 따지자면 그 크기가 천차만별인데 크기에 관계없이 죄인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혼이 나도 알겠다며 다시 했으면 되는 걸 그때의 나는 그러질 못했다. 왜 혼이 났을까,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나는 왜 일을 그렇게밖에 못했을까. 뭐든 남 탓을 하는 게 살아남기 쉬운 방법이었지만 사고의 마지막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로 흘렀다. 나는 왜 이거밖에 안되지?
나는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흔들렸다. 나 자신이 미우면 기댈 곳이 없는데 내가 싫어졌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지긋지긋하고 내가 싫었다. 사람의 말투, 어조, 표정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 성격이 불을 짚였다. 회사에 있을 때도, 퇴근을 하고도 계속 울고 싶었다.
10월 중순쯤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출근하다가도 울어버렸고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났다. 아무리 눈물이 많았지만 아무 때나 울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뭘 해도 기쁘지가 않았다. 매일 울고, 울고, 또 울고.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집 문제 때문에 퇴사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난 다른 것에 집착했다. 다른 것이라도 제대로 해야 내가 살아가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집착했던 건 글쓰기였다.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써야지, 내가 살 수 있었다. 수업을 들으며 들었던 피드백들을 계속 읽었다. 내가 쓴 글들을 계속 읽었다. 더듬더듬 글을 썼다. 한 문장이라도, 한 문단이라도, 썼다. 조각난 글들을 썼다. 글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회사에 들어가고서 문제였던 건 '나'였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잊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었는지를 잊었다. 그게 날 괴롭게 했다.
퇴사를 한 지금은 이전까지의 내가 거짓말 같다. 아직까지는 원래의 나처럼 무언가를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지 못한다. 엄마는 내가 긴장이 풀린 탓이라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서서히 나를 회복하고 있다. 천천히 공부도 시작하고, 단편소설도 하나 완성했다. 나쁘지 않다, 나쁘지 않다. 아마 다음에 다시 회사를 다니게 될 때는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그때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