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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an 12. 2022

한 발, 한 발

썩지만 않으면 되겠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시험이 끝났기 때문이다.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 건 오로지 나의 이기심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을 사랑하지 못했다. 가만히 더 있었다가는 내가 썩어버릴 것 같았다. 뭐든, 뭐든 목표를 정해서 다시 앞으로 나가야만 했다. 빠르고 느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흐를 줄 모르는 물은 고여서 썩어버리니까, 어디라도 좋으니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생각이 좁아진 사람의 선택도 좁을 수밖에 없다. 내가 잡은 건 시험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중국어 시험을 1월 초로 정해두고 나머지 일정들을 조율했다. 휴학하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첫 번째가 중국어였다. 시험도 시험이지만 실질적으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난 회화학원에 가고 싶었다. 집에서는 거리가 조금 있지만 자전거로 20분이 안 걸리는 곳의 학원을 등록했다. 



또 새로운 게 하고 싶었다. 집 근처 문화센터에서 민화 반을 개강한다는 공고를 봤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기에 민화의 재료비는 가볍지 않아서 비슷한 결의 먹 일러스트로 갈아탔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건강이 회복되면 테니스도 시작하기로 했다. 매일 자전거를 타면서 체력을 다시 기르고, 피부염도 누그러지면, 그때는 테니스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퇴사와 동시에 소설 수업을 신청했다. 글을 쓰는데 가장 중요한 게 이미 나에겐 충만했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과 시간. 퇴사한 대학생만큼 간절하고 휴학생만큼 시간이 많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간이 없어서 놓아버린 글을 되돌릴 필요가 있었다.








월, 수 아침 9시에 중국어 수업이 있고, 화요일 저녁 7시에는 소설 수업, 목요일 아침 10시에 먹 일러스트 수업이 있다. 그 시간들에 짜 맞춰 나를 움직이다 보면 천천히 시동이 걸렸다. 한발 두발 앞으로 나아

갈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루틴이 생기면서 소소한 행복들도 피어났다. 


소설을 쓰는 건 즐거웠지만 힘들었다. 계속 쓰지 않은 티가 났다. 묘하게 느껴지는 공백이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내가 설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곳에서 능력을 펼치지 못하니 한심했다. 글을 쥐어짜 내고 또 쥐어짜 내고. 난 그저 글자와 문장들에 기대서 끈질기게 이어나가기만 했다. 그걸 쓴다는 행위로 부를 수 있을까? 


전혀 아니었다. 본래 글을 빨리, 많이 쓰던 나의 스타일과는 정반대로 하루에 한 두장밖에 쓰질 못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글을 쓰는 게 즐겁지 않았다. 저번 수업에서는 매번 글을 쓰는 것도, 주제를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이번엔, 하나도 재밌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았다. 고통스러웠다. 즐겁지 않을 때에도 그 일을 사랑해야만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도 생각보다 수준 이하였다. 선생님은 생각해야 할 것과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아져서 그렇다고 했다. 글을 즐거운 게 중요하니까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하신 피드백 중 틀린 것은 없었고, 내 글에서 나도 아쉬운 부분들이었다. 그럼 개선되도록 노력해야 할 텐데 노력하려고 하면 글을 쓰는 건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난 정말 이것마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그건 원하지 않았다. 나도, 그 이전의 나도, 아마 이후의 나도. 그래서 썼다. 쓰다 보면 또 다음이 오겠지, 마음에 새겨두는 말이었다. 




소설 쓰기와 시험을 병행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내가 아주 큰일이 났다는 걸 알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난 내가 시험에 합격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을 정도다. 원래는 글을 쓰고 남는 시간에 공부를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택도 없었다. 


결국 공부를 하고 남는 시간에 글을 썼다. 그게 잘될 리가 없었다. 암기와 받아쓰기, 단어에 집중이 되어있는 머리를 소설 쓰기 모드로 되돌리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책도 읽지 못하니 인풋이 없었고 바짝바짝 말라가는 뇌는 소설을 쓰지 못했다. 마지막 소설은 처음으로 미완성으로 제출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최선이었다.




시험공부도 고통스러웠다. 공부를 좋아하는 마음이 고통에 짓눌렸다. 좋아하지 않는 공부였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공부를 해야 했고 너무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좋아해서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머리에 단어들을 쑤셔 박듯 공부를 했다. 모의고사 점수는 간신히 합격선을 왔다 갔다 해서 시험을 치기 직전까지도 엉엉 울고 싶었다. 


도전하고 결과를 받는 게 무서웠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어찌어찌 버텨냈고, 시험도 무사히 치렀다. 모의고사보다는 아주 조금 쉽게 나와서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기대 중이다. 내가 강의를 들었던 선생님은 시험장에서 나오며 아쉬움만 없으면 된다고 했다. 제출 10초 전에 바꾼 문제가 아쉽긴 했지만 이 정도 아쉬움이면 괜찮았다. 나 자신한테는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12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약 한 달,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퇴사한 후 허송세월만 보냈던 그 이전의 한 달보다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수업을 마치던 날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한 가지 말씀만 해주셨다. 언젠가 좋은 자리에서, 좋은 작가로 날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저번에는 언젠가 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주셨는데 조금 더 발전된 말이었다. 이 한마디가 또 나를 얼마나 많은 우울과 좌절의 길에서 일으켜줄까.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다음 목표는 2월 초에 있는 영어 시험이다. 나아가자, 또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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