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다. 감정을 딱 잘라 말하는 건 안 좋은 방식이라고 말하지만 우울하다는 단어만큼 적절한 단어가 없었다. 아무리 북돋아도 잠깐뿐이고 다시 가라앉았다. 난 개명한 이후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이번의 실패는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시험을 못 친 게 실패처럼 느껴졌다. 고작 시험 하나에 인생이 무너질 리가 없는데 무너진 것 같았다. 극복하지 못했다. 점점 가라앉았다.
오늘이면 2월이 끝난다. 올해 2월은 우울의 달이다. 어쩌면 이렇게 우울했던지,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시험만 끝나면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글도 쓰고 싶었는데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는데 멈추는 법을 몰랐다. 시간은 계속 고여서 썩었다. 그러면 나는 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도 썩었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자라나다가 문득 깨달았다. 언제부터 내 인생이 순탄했었지? 내 인생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순탄하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난 내 인생이 순탄하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난 실패하지 않고, 나의 선택은 언제나 옳을 것이고,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그런 믿음이 나를 지탱해준 것도 맞았지만 날 무너뜨리는 것도 맞았다. 난 순탄한 인생을 산 적이 없었다.
내가 나를 싫어하고, 내 인생을 싫어했던 이유를 몽땅 잊어버렸다. 몇 번 맛본 성공의 쾌감에 젖어서 스스로도 성공했다고 단정 지어버린 것이다. 조금만 돌이켜봐도 내 인생은 온통 최악과 차악과 차악뿐이다. 목표 없이 누구보다 방탕하게 살았다. 그 시절은 닥치는 대로 읽고 봤다. 일탈은 없었지만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만화를 보고, 인소를 읽었다.
못하는 건 너무 많아서 어릴 때부터 욕을 너무 많이 먹었다. 그래서 난 학교가 싫었다.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주제에 학교는 정말 싫었다. 학교에서는 뭐든 다 무난하게 해야만 했다. 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게 명확했고 잘하는 것마저도 우월하지는 않았다. 미묘한 뛰어남에는 별다른 말이 붙지 않지만 못하는 것에는 나쁜 말이 쉽게 붙는다.
내가 교대를 가지 않은 건 초등학교에서 좋은 기억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가 제일 싫었다. 선생님도 애들도 싫었다. 제대로 된 건 금방 사라지는데 끔찍했던 건 머릿속에 선명하다. 그때의 나는 나에 대한 기대가 낮았다.
난 내가 지금도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줄곧 나는 대단하지 않고 내가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한테 '잘한다'는 수식어는 맞지 않았다. 중학생 때도 힘들었다. 구질구질한 애정과 무능력함 때문이었다. 사실 동아리만 나가면 해결되는 일이었지만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무너지지도 않았다. 상처만 받았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좋아진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보다 활발한 성격이 되고 눈치도 생기고 나에 대한 마음이 단단해졌던 때. 잘하는 게 없는 나한테 익숙해져서 난 다 괜찮았다. 하지만 그것도 짧았다. 열아홉의 겨울은 나한테 너무 추웠다. 내가 더 깊숙하게 싫어졌다.
정작 내 인생이 마음에 든 건 개명 후부터다. 도전하고, 뭐든 해내고, 노력하고. 어쩌면 난 이전의 삶을 완전히 지우려고 한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만 남기고 싶어서. 못해도 즐거울 수 있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서 못해도 재밌는 건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것들은 점점 많아지고 깊어졌다. 좋아, 가 멈추지 않는다.
기대가 생기는 건 좋았는데 기대가 생기니까 쉽게 무너진다. 몇 번이나 자기소개서에 오뚝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는데 이제는 안 쓸 것 같다. 난 오뚝이가 아니다. 넘어질 일이 있으면 그냥 넘어진다. 당장은 못 일어선다. 넘어진 게 너무 아프고 서러워서 일어날 수가 없다. 일어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렇게 넘어져있다가 아프지 않으면 다시 일어난다. 일어나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단지 넘어져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난 감정의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털어낼 수 있다. 감정의 절정은 그 순간뿐이다. 다 마르고 나면 일어난다. 자국은 남았지만 이젠 그렇게 아프지 않다.
당시에는 진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게 먹과 닮았다. 앞으로는 나를 먹으로 설명할지도 모르겠다.
난 내 인생이 한심한 시절과 그럭저럭 잘 살아간 시절, 자랑할만한 시절로 나뉘었다고 생각했는데 마냥 그렇지 않았다. 소설 수업을 들을 때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나의 문체는 탄탄하다고. 글을 많이 쓴 사람 같다고. 어떤 분은 나에게 물어보셨다. 글을 그렇게 빨리 잘 쓸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소설을 쓰는 건 오래전에 포기했던 일이지만 글은 꾸준히 써왔다. 나는 유난히 감성적이라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짧은 글들을 남겼다. 단 한 줄이라도 메모장에 손으로 써서 남겼다. 그게 노트로 몇 권이나 될 정도니 꽤 많이 썼다. 내가 흑역사로 여길만한 감성적인 문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걸 남기는 게 재밌었다.
읽기도 많이 읽었다. 이야기를 몹시나 사랑해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방탕했던 시절이 그랬다. 사람들이 비웃을지 모르는 인터넷 소설들을 1000편 넘게 읽었다. 외로울 땐 도서관에 가서 소설을 읽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추천도서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까지 마구마구 읽었다. 만화도 많이 봤다. 만화나 애니, 웹툰까지 가리지 않고 봤다.
나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쾌락만을 위해서 읽은 것들이라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도움이 되고 있다.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내가 넓어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 닮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고 피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었다.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순간 또한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겠다.
이제 내 목표는 실패하지 않는 게 아니라 실패했을 때 지금보다 더 빨리 일어서는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래 넘어져있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후회할 걸 아니까 그러고 싶지 않다. 이미 흘러간 것들은 보내버리자. 나에게는 아직 오늘이 남아있다.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자. 나의 성공에는 언제나 수많은 실패들이 쌓여있었다는 걸 절대 잊지 말자. 난 언제나 실패할 수 있다. 실패해도 내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