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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Mar 28. 2022

어느 날의 일기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노력하는 과정은 힘들다. 돌려받을 수 있는 노력은 없다. 나는 꿈, 열정, 사랑, 남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낭만적인 비현실을 좇고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마냥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원래 행복하지 않았던 건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랬다. 매번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내 안에 숨겨진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재능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애매한 사람이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을뿐더러 못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못해서 자꾸 두드러진다. 센스가 뛰어난 편도 아니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잘 캐치하지도 않는다. 내 삶은 근본적으로 그랬다. 나는 배척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줄곧 생각했었다.



다행히 내 안에는 사랑이 너무 많았고 나한테 향할 일부의 사랑도 있었다. 나에게 사랑의 방향을 돌리는 걸 그나마 일찍 알았다. 조금만 더 늦게 알았더라면 지금 글을 쓰고 있을 일도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의 나는 내가 잘하는 걸 딱 두 개 알았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다들 보면 잘한다, 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지만 우와! 하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평균보다는 높고 이상보다는 낮았다. 잘하는 건 또 있었다. 발표. 말하는 걸 좋아했다. 남들은 다 떨리고 무서워하는 발표를, 나는 사실 제일 좋아한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 내 얘기에 집중하는 게 좋다. 약한 성대결절이 오기 전에는 목소리도 컸다. 발표에 딱 맞는 체질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글쓰기 조금, 그림 그리기 조금, 발표 조금을 잘한다고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고등학생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요소는 아니었다. 그리고 내 성적은, 공부를 잘하는 부류였지만 미래가 기대될 정도로 특출 난 부류는 아니었다. 글을 쓰는 거나 그림을 그리는 건 전문적으로 배운 애들 한 두명만 있어도 쉽게 사라질 재능이었다. 재능이라 부르기도 묘하다.



중학생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 내가 적었던 소설에는 소설가가 된 26살의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26살쯤 되면 팬이 한 두 명 정도는 있는 소설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미대가 가고 싶기도 했다. 그건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내 어중간한 능력이 재능처럼 보일 수 있는 것도 조금 독특한 사고방식 덕분이었다. 의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남들은 독특하다고 했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만든 작품들이 날 미술을 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 몇 번이나 미대 진학을 고민했다. 하지만 난 수학을 너무 좋아했고,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일만큼 미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미대를 나오면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어중간했다. 다행히 도피할 만큼 좋아하는 분야가 있었고 그를 위해 공부를 했다. 성인을 위한 미술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세 달인가, 네 달인가. 재미가 없었다. 정확하게는 시간이 아까웠다. 결국 그만뒀다. 입시미술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난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매일매일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일러스트들을 그린다. 다시 시작할 계기는 뜬금없는 곳에서 찾아왔다. 알바에 로망이 있던 나는 매번 알바 사이트를 전전하다가 10월이 되어서야 첫 알바를 시작했다. 화상과외 알바였다. 나는 수학을 가르쳤는데, 수학은 다른 과목에 비해 쓸 게 많았다. 태블릿으로 쓰고, 쓰고, 또 쓰다가 태블릿 사용법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문득 그림 하나를 그렸고 재미가 있었다. 혼자서 계정을 만들고 그림을 그려 올렸다. 그게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혼자 그림을 그리고 놀던 시기에 지원하고 싶던 대외활동 모집글이 올라왔고, 내 마스코트를 그려 카드 뉴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마스코트를 디자인했다. 열 시간 동안 만든 카드 뉴스는 만족스러웠다. 대외활동에서는 탈락했지만 나에게는 마스코트가 남았다. 그 친구와 나는 새로운 시작을 했다. 지금은 열심히 달려 나가는 중이다.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실력이지만 여전히 애매한 실력이다. 내가 조금만 더 잘 그렸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왜 다들 내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 객관적인 것 같은 생각들이 쭉 늘어진다. 갈 길이 너무 멀다. 힘낼 기운도 남아있지 않다. 지금은 무너졌다. 그려야 할 것들이 많은데 아무것도 그리고 싶지 않다. 울고 싶다. 다 포기하고 싶다.










글을 쓰는 건 즐거웠다. 어쩌면 날 유일하게 지탱해주는 게 글이다. 글이 아니었다면 더 빨리, 더 많이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고 싶다는 것도 행복한 기분이다. 개연성도 내용도 시점도 애매한 글들을 마구 휘갈겼다. 쓰는 거에만 집중을 했다. 지지해준 독자가 있어서 계속 쓸 수 있었다. 글을 쓰고 또 쓰고. 나는 살아온 시간이 적어서 할 수 있는 얘기가 한정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추천을 받아 청년을 위한 글을 쓰기로 했다. 이것저것 수업을 알아보고 친구의 도움으로 청소년 소설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달에 14만 원. 알바도 하지 않는 대학생에게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래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이 수업이 가을의 나를,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누군가 내가 재능 있다고 했다. 잘 쓴다고 했다. 너무 재밌다고, 글이 톡톡 튄다고 했다. 덕분에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다. 수업 때마다 들은 칭찬들은 잔뜩 모아놨다가 힘들 때면 다시 떠올리고 떠올린다. 힘이 들면 써둔 말들을 읽었다. 그러면 살고 싶어졌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계속 써야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나를 의심했다. 3년 안에 등단하겠다는 무모한 목표를 세워두고, 쓰지 않고 의심했다. 등단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내가 쓴 인물들은 비슷하다고 했는데 괜찮을까? 앞으로 취준을 하게 되면 시간이 더 부족할 텐데..... 그때까지 등단할 수 있을까? 난, 진짜 잘 쓰는 사람이 맞을까? 사실 다 거짓말이 아닐까? 나에게 찾아올 등단의 기회가 10년 뒤라고 해도 지금처럼 쓸 수 있을까?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글을 쓰면서 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서있는 곳은 나침반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다. 가야 할 곳이 있으면 어디로든 발을 옮길 텐데 가고 싶은 곳이 없는 게 문제다. 휩쓸려가지만 않으려고 발을 붙이고 서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봄바람 속에서 또 무너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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