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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Apr 24. 2022

사랑이 사람을 살린다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

태어나서부터 줄곧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투디(2D)를 좋아한다. 쓰리디(3D : 실존 인물)보다 투디(2D : 가상 인물) 파다. 누군가에게 덕질을 배우지도, 누군가의 덕질을 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덕질하게 됐다.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이, 인물들이 나를 지탱해줄 때가 있다. 나를 기쁘게 만들고, 슬프게 하고, 일으켜 세울 때가 있다. 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나 인생을 사랑해와서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도 몇몇 실존 인물들을 사랑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다. 내가 좋아한 건 크로스오버 그룹이었다.










무언가를 덕질하게 되는 과정은 간단하다. 관심을 갖고-> 접하고-> 사랑에 빠지고-> 절정에 달하고-> 사랑하지 않게 되거나 적당히 사랑하게 된다. 고등학교 3학년, 집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던 때였다. 그때는 더 이상 사랑할 게 없었다. 좋아하는 것들이 많아도 콘텐츠 사이의 공백기가 겹칠 때가 있다. 그때가 딱 그랬다. 스트레스 풀 곳이 없는 공백기에 JTBC에서 방송하는 팬텀 싱어를 보게 되었다. 원래 클래식 쪽은 관심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봤었는데,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사람을 만났다. 내 최애는 화학회사에 다니던 일반인이었다. 그는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가 예선에서 부른 The phatom of the opera는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는 남자와 여자를 오가며 자유자재로 노래를 불렀고 나는 바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다음 노래가 궁금해졌다. 



8월에 시작한 방송은 11월까지 이어졌다. 나는 매일 금요일 밤마다, 혹은 재방송을 하는 주말마다 티비 앞에 앉아서 그의 노래를 들었다. 공부할 때마다 힘들면 그의 영상을 보곤 했다. 학교에서는 몰래 그가 부른 노래를 들었다. 그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면 우울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11월, 그가 속한 팀이 우승했다. 나도 그날 엉엉 울고 말았다. 혹여나 해체될까, 더 이상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 그는 우승했고 나는 그의 미래를 지켜볼 수 있었다. 수능을 2주 정도 앞둔 날이었다. 




다음 해 1월에는 팬미팅이 있었다. 티켓팅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었던 난 다른 팬의 도움으로 간신히 팬미팅에 갈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티켓을 구하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실제로 나의 최애를 보고, 그룹 멤버들을 보면서 누구보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팬미팅을 계기로 최애를 제외한 그룹 멤버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다. 알면 알수록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누가 미워할 수 있겠는가. 언제나 노래를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고 그들의 노력이 와닿았다. 결국 그들 모두를 사랑하게 됐다.




재수를 하면서도 그들의 활동은 모두 챙겨봤다. 라디오에 출연할 때도, 라이브 방송을 할 때도, 열린 음악회에 출연할 때도, 모두 빠짐없이 챙겨봤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투디를 덕질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4월 모의고사를 칠 때쯤 어떤 사이트에서 사연을 남기면 추첨으로 그들의 싸인 CD를 선물한다는 글을 보았다. 싸인이라니! 몇 자 안 되는 사연을 적으면서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재수 생활에 그들은 나에게 기적과 같다고. 그들 덕분에 지금도 살아갈 수 있다고. 기적처럼 난 싸인 CD에 당첨됐다. 그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 인생이 이제야 잘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부드러운 크림처럼 감미로운 그들의 노래는 언제나 사람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주력 방송사도 아닌, 아마도 클래식 분야인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중성이 부족했다. 그래도 그들은 대중을 사로잡을 실력이 있었다. 매번 방송 대신 무대에만 서던 그들이 처음으로 방송에 등장했을 때, 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팬텀 싱어 외에 첫 TV 프로그램이었다. 그들의 꿈이 점점 이루어지고 있었다. 








힘들 때는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나와 문제밖에 남지 않는 생활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빛이자 활력이었다. 날 어둠에서도 굳건하게 서있게 만든 건 그들의 노래였다. 그들의 수많은 노래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팬들을 생각하며 부른다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처음 듣고 가슴이 찡했다. 내가 앞으로 그들을 열심히 응원해야겠다, 언제나 그들을 믿고 사랑하는 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꾸던 날들을 기억해

보잘것없었던 내 모습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나

그 위에 영원을 머금은 것 같은

꿈에 본 것 같은 별빛

너무 지쳐 사라지고만 싶을 때

날 지켜준 건 baby you are my star

수놓아진 길 따라서

계속 걸어갈 수 있으니

꺼지지 않을 baby you are my star

언제까지나 I pray for

너를 위해서 난 계속 노래할게





이 노래는 어쩐지 들을수록 눈물이 났다. 이때쯤 나는 묘한 우울감을 겪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지고 어디론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자꾸 눈물이 쏟아져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들은 게 이 노래였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가사를 곱씹으면서 그냥 울었던 것 같다. 그들은 우리가 빛을 내고 있다고 했지만 나에겐 그들이 빛이었다. 큰 뜻이 있는 가사도 아니고, 가슴이 절절해지는 아름다운 문구도 아니었지만 저 글자들이 날 위로했다. 노래 가사를 머릿속으로 계속 떠올리다 보면 언젠가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6월, 독서실에 다니던 시절은 가끔씩 몰래 노래방에 갔다. 친구도 못 만나고 만화를 보는 것 말고 원래 별다른 취미가 없던 나에게 노래방은 특이한 취미였다. 그들의 노래가 처음으로 노래방에 들어오고 얼마나 뛸 듯이 기뻤는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지만 언젠가 마음이 답답한 날이 있었다. 그날도 노래방을 갔었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들이 너무 좋아서, 그들이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워서,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하는 게 슬퍼서. 실연당한 사람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노래를 불렀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애절한 기분이 든다.





그들을 좋아하면서 소박하지만 조공도 넣어봤다. 편지를 잔뜩 쓰고, 직접 만든 선물들을 넣고. 그걸 들고 콘서트장에 가던 길에 얼마나 설레던지!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당신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살아갈 수가 있다고. 내가 가진 사랑은 언제나 한정되어있었고 그 사실을 난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애정은 표현해야 한다는 걸, 표현하지도 못하고 사라져 버린 애정은 이 세상에 없던 것처럼 돼버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마음이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쓰는 순간도 행복했다.






9월쯤에 그들이 우리 지역에 온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기차로는 2시간 45분, 비행기로 1시간이나 걸리는 우리 지역에 오다니! 우리 지역에 이름만 거창한 건물이나 행사가 많아서 다행이었다. 축하 공연이었나 기념공연이었나. 공식적인 공연이 아니어서 티켓팅도 없었고 결국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마냥 놀 수는 없어서 사회문화 교재를 들고 공연 장소로 갔다.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공연 장소 앞에서 하루 종일 기다려야만 했다. 그 사이에서 사회문화 교재를 보겠다고 꾸역꾸역 자리를 잡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나마 가까운 자리에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가슴이 설렜다. 짧은 공연이었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난 되게 행복한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아무런 신호도 없이 내 애정은 끝이 나버렸다. 재수생활이 끝남과 동시에 내 애정도 사라졌다. 그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노래를 했고, 여전히 노력했다. 하지만 내 사랑이 여전하지 않았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빨리 알아챘지만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구나.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노래가 좋지만 예전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그걸 믿고 싶지 않았다. 내 사랑은 유한하고 끝이 온다는 걸. 끝이 있는 걸 알아서 열렬하게 사랑할 수 있었지만 막상 끝이라는 걸 알고 나니 외면하고 싶었다. 몇 번을 외면하고 도망가다가 결국 인정하고 말았다. 이제 내가 그들을 가장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지금도 여전히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이 누구보다 잘되길 바라고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탈덕한 마당에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외롭고 고독한데 말할 사람 하나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던 스무 살에 그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그들이 위로해주지 않았다면 적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나에게 스무네 살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미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어떤 종류의, 형태의 사랑이든 항상 우리를 뒷받침해준다.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하고, 사람을 살린다. 앞으로도 난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구원받을 것이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들이라도 그들이 나에게 준 구원은 내 안에 쭉 남아서 나의 일부가 된다. 이 삶에서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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