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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열음 Jul 16. 2022

어쩌다 보니 오버 워크다

힘내주세요 아드레날린!

스포츠물을 보면 꼭 한 번씩 등장하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부상과 오버 워크(overwork)다. 내가 부상에 예민해지게 된 건 아무래도 내가 가장 처음으로 접했던 만화의 영향인 것 같다. 일본 역사에서도 유명한 야구 만화, 메이저이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지나치게 자기 파괴적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쉬는 법을 모르는 탓에 6학년 때 오른쪽 어깨를 잃고 좌투로 전향, 결국 그 왼쪽 어깨마저 망가져 타자로 전향하게 된다.



만화에서는 '어깨를 잃더라도 끝까지 던져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끝없이 언급한다. 그런 경기가, 순간이 존재한다고 주인공은 계속 이야기한다. 그걸 보고서 나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작중에서 모두가 주인공을 부러워하고 존경하며 그를 라이벌로 여긴다. 최고의 재능을 가졌음을, 그를 향한 수많은 응원과 찬사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완벽한 먼치킨 주인공은 독자와 동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무리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쉬면 낫는다는 걸 알면서도, 도무지 쉬지 못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나는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들어 크로스핏을 시작했다는 걸 얘기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재밌었지만 힘들었고 그래서 가끔은 가기 싫었고. 토할 정도로 운동을 하고 있으면 이걸 왜 하고 있지? 싶은 의문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 좋아지고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서 재미가 생겼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육체가 느끼는 피로가 적어지자 쾌감이 커진 것이다. 이전에는 워낙 극단적인 체력과 근육량이었으니 조금만 늘어도 차이가 확연해졌다.


이전까지 밴드 3개를 달고 하던 풀업은 이제 밴드 2개를 달고 한다. 얼마 전에는 이전에는 상체와 하체 힘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월워크도 했다. 처음에 왔던, 혹은 기존에 알고 있던 나와 비교해 점점 성장해나가는 나의 모습은 쾌감을 불렀다. 바를 드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최대 30파운드를 올릴 수 있다. 10파운드도 힘들었던 게 엊그제였다.


눈에 띄는 성취가 있으니 더욱 운동에 매진하게 됐다. 내 크로스핏의 궁극적인 목표는 '토투바'를 하는 건데 이전에는 팔에 근력이 부족해서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게 힘들었다. 오래 매달려야 스윙을 하고 스윙에 익숙해지면 복근으로 하체를 들어 올리는 게 토투바인데 시작부터 글러먹었다. 한동안 철봉 연습은 안 하고 팔의 근력을 키울 수 있는 푸시업과 풀업을 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철봉에 매달렸는데 놀랍게도 이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어떤 부분은 굳은살이 생겼지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 점프 박스 오버를 했다. 20인치의 상자를 뛰어넘는 운동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점프를 했다. 점프가 익숙하지 않아서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하고 말았다. 결국 허리가 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는 말이 맞는지 모르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 허리 근육이 없는 것처럼 아팠으니까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양말도 신지 못할 지경이 되는 바람에 무려 이틀이나 운동을 쉬었다.


원래는 화요일 저녁에 운동을 가려했지만 가족들의 만류로 그러지 못했고 수요일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동안 얼마나 분했는지 모른다. 이 정도면 가도 되지 않나? 별로 아픈 것도 아닌데. 운동을 못하니 짜증이 자꾸 치밀었다. 이제 제대로 시작했는데. 이제야 이것저것 할 수 있게 됐는데.



매일 밤 올라오는 다음날 와드를 몇 번이나 읽었다. 이건 이제 할 수 있는데. 저번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새로 보는 운동이 있네? 재밌어 보인다. 나도 버피 좋아하는데! 운동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게 되자 하루하루 시간이 아까웠다. 게다가 9월에 출국해야 하는 나에게 크로스핏을 할 시간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하지 못한 와드들이 얼마나 아깝던지.




습관적으로 운동을 못 가서 우울하다고 징징거렸다. 조금만 안 아프면 운동 갈 생각을 했다. 그런 날 보며 가족들이 운동에 미쳤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게 메이저의 주인공이었다. 그 애도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도 쉬지 않았다.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피곤한 건 피곤한 게 아니다. 운동을 했으니 피곤한 건 당연한 거고 피곤할수록 운동을 열심히 한 것 같아 뿌듯했다.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 건 게으르다고 생각됐다. 아무래도 아픔은 주관적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아픈 것도 아닌데 운동을 쉰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쉬는 것도 필요하다는 건 사실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괜찮은데 왜? 뭐가 문제야? 오히려 매일매일이 즐겁다. 포기하는 건 나약하게 느껴진다. 매일 내가 성장한다고 생각하니까. 쉬면 성장할 기회를 놓치는 거다. 근육이 죽을 거다. 뒤처질 거다.



바보 같겠지만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당장 눈앞의 하루가 아까워 미칠 것 같아서 훨씬 먼 미래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데 집중해서 나중 같은 건 생각하지 않게 된다. 이대로 가면 내가 성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삼일 내내 꼼짝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다. 결국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나름 충격적인 소릴 들었다. 애초에 태생부터 허리가 약해서 자주 아플 수밖에 없다고. 이놈의 몸뚱이가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나아져서 목요일에는 운동을 갔다. 오랜만에 간 운동은 얼마나 상쾌하던지! 물론 금요일에는 상태가 나빠져서 주말 운동을 쉬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온몸이 답답해서 결국 뭐든 하게 되는 마음을 알아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보면서 너 지금 오버 워크야! 정신 좀 차려! 하고 소리쳤던 게 옛날 일 같다. 허리가 아파서 쉬는 내내 부상을 당했던 캐릭터 생각을 했다. 2주를 참지 못하고 답답하다며 날뛰던 애들이 마냥 철없게 느껴졌는데 걔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나도 삼일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도 병원을 갔다가 2주 동안 운동을 금지당했지만 월요일부터 가겠다고 생각했다. 무게야 더 낮추면 되니 더 쉴 수는 없었다. 목요일 배운 스윙 연습을 더 하고 싶었고 풀업도 더 연습해야만 했다. 다음 달까지 밴드 한 개를 위해 매일 푸시업을 60개씩 한다.



무리하는 건 알지만 멈출 수가 없다. 내 몸을 내가 망치는 걸까? 한 편으로 알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다. 다음날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욱신거리면 기쁘고 손바닥에 꽉 찬 굳은살과 찢어진 상처가 자랑스럽다. 허리가 아픈 동안 숙이지 못해서 스쿼트를 했더니 단단한 허벅지를 얻게 돼서 기쁘다. 시합이 시작되면 아드레날린이 나와.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가 했던 말이다. 나도 어쩌면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것 같다. 미친 것 같지만 행복하다. 내 사랑은 자기 파괴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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