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참 긍정적이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내가 사실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기대에 젖어있다. 여태껏 실패하기만 했는데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한다. 바보인 건지 학습 능력이 없는 건지. 어쨌든 그렇다.
이런 긍정적인 사고에 비해 항상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기억이 시작하는 무렵부터 중학생 때까지 줄곧 그랬다. 나는 나를 만사에 부정적이고 자신이 없고 우울해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히려 고등학생이 되고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바뀌게 된 거라고 믿고 살았다.
최근 가장 즐거운 걸 꼽자면 단연컨대 테니스이다. 라켓에 공이 맞으면 팡, 하고 날아가는 게 속이 시원해진다. 몸을 마구 움직이면 땀이 흥건한데 그것마저 기분이 좋다. 제대로 뛰었다는 기분이 든다.
이번 주 화요일부터 갑자기 공이 안 맞기 시작했다. 자세를 새로 배웠는데 아무래도 맞지 않은 것 같았다. 10개 중에 기껏 2개가 맞아서, 선생님도 나도 화가 났다. 화요일에는 웃어넘긴 선생님이 금요일에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이상하게 예리해서 남의 표정이 너무 쉽게 보인다. 내가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화가 나고, 이 상황이 답답한 표정. 나는 그 표정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었다.
테니스를 치는 내내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왜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운동신경이 없을까. 나도 힘이 있으면 좋을 텐데. 선생님도 화나겠지? 눈치를 봤다. 보고, 또 보고.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끝나고서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화를 낼 줄 알았다. 아니면 지친 듯이 말하거나, 운동에 소질이 없다고 말할 줄 알았다.
"자세는 하나도 안 중요해요. 나중에 나가면 어차피 다 다시 배워야 돼. 지금처럼 치기 좋게 공을 안 준단말이야. 중요한 게 뭔 줄 알아요? 맞추는 거예요. 맞추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이 안돼요. 지금 보면 열 개 중에 다섯 개는 맞아야 하는데 두 개밖에 안 맞잖아. 그러면 맞추는 것부터 다시 해야지. 원래 테니스가 기복이 심해. 기분이나 날씨에도 영향을 많이 받고. 맞을 때는 잘 맞는데 안 맞을 때는 또 하나도 안 맞고. 처음에는 더 그래. 지금은 기복이 심한 시기일 뿐이야. 원래 그런 거야. 공이랑 많이 친해져야 돼. 주말 동안 그것만 연습해봐."
정말 울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못하면 비웃음 당하고 무시당하면 당연한 곳에 오랫동안 있었다. 뭐가 어떻든, 이렇게 다정을 베풀어주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엄마 아빠도 운동을 잘해서 날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정을 베풀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혼날 거라 생각해 주눅 든 내가 슬펐고 그렇게 말해주는 선생님에게 고마웠다.
내가 울 것 같은 얼굴이었을까? 눈 앞에 흐려지는 걸 안간힘을 쓰고 참았다. 누구든 재밌고 쉽게 테니스를 치자는 슬로건을 내건 이 곳은 언제나 그 말대로 행동했다.
예전에도 말한 적 있듯이 운동에는 소질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간 이후로는 매번 깎아내려졌다. 못한다고 면박 주고 비웃는 선생님도 많았고 나 빼고 모든 아이들을 앉혀두고서 나만 연습을 시키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어떻게든 내 기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한 검도 수업은 더 심했다. 몇 달 내내 혼나기만 했다. 체육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누군가 비아냥거릴 수 있지만 그 자체도 잘못된 일인 걸 모르는 걸까? 열세 살은 그곳에서도 깎여나갔다. 몇 달 전 관장님을 만났을 때도 내 떨림이 느껴졌을 정도이니 말이 필요 없었다.
중학생 때 겪은 건 거의 모욕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기상천외할 일들 뿐이다. 관현악부에 들어가 금관 악기를 배우게 됐었다. 매주 한 번이었나 두 번이었나, 레슨 선생님에게 수업을 받았었는데 그 시간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트라우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잘못이 있다면 못했을 뿐이다. 그저 못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야속할 정도로 늘지 않았다.
그래서 혼을 냈다. 내가 닳고 닳아서 나에 대해 단 한 톨의 애정을 남기지 못할 정도로 혼을 냈다. 소리를 지르고 면박을 주고, 한숨을 쉬고. 그 경멸하는 눈빛은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날 깔보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감정에 예민했고 타인의 감정에는 더 예민했다. 모든 종류의 혐오가 그 안에 담겨있었다. 못한다고 매번 화를 내고 소질이 없다고 다그쳤다. 나를 앞에 두고 지휘자 선생님과 논의를 했다. 얘는 너무 못한다고, 아예 소질이 없다고. 욕을 해야만 욕인가. 평생 씻지 못할 치욕이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는데, 고작 그 금속 덩어리 악기 하나 못 분다고 나는 그런 취급을 받았다. 고작 그 나무 검 하나를 제대로 못 휘둔다고 그런 취급을 받았다. 줄을 못 넘는다고, 뜀틀을 못 넘는다고그런 취급을 받았다.
레슨 선생님한테 1년 동안, 매주 한 번씩 혼이 났다.-혼이 났다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대체할 표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나는 이상함조차 느끼지 못했다. 내가 못하는 건 당연했고 못해서 혼나는 건 더 당연했다. 수치스러움도, 부끄러움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을 때까지 나는 왜 방치됐을까.
왜 포기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가기에는 선배들이 내는 악기 소리가 너무 예뻤고 언젠가 나도 그런 소리를 내고 싶었고. 도망갔다는 기억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3월의 라이온에서 본 표현이다- 물론 선생님 번호는 3학년 마지막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차단해버렸다. 돌이켜보니 지금의 나보다는 그때의 내가 오히려 더 강한 것 같다.
그래도 난 너무 많이 깎여서 회복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생이 되면서 없어진 자존감은 이제 플러스가 되었다. 못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사람이 못할 수도 있지. 실수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그저 못하는 것뿐이다. 남들보다 느리고 더딘 것이다. 그게 잘못이 돼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못해도 괜찮아,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으면서 정작 실수가 아닌 못하는 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물론 일에서는 잘해야겠지만 살아가는 데에는 못해도 되지 않은가. 왜 내가 금요일 겪은 그 다정의 말에 눈물이 나올뻔했는지만 생각해봐도 답은 쉽게 알 수 있다.
못하는 걸 잘못이라 몰아붙이고 깎아내리고 모욕을 주고. 그 사람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라고 하는 소리인지 몰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알고 있다. 못해도 괜찮다는 말 대신 다른 말들을 해주고 싶다. 못한다고 큰 일 안 나요. 지금은 그저 그런 시기인 거예요. 못하는 건 잘못이 아니니까 기죽지 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