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쓰기의 역사2

‘글쓰기’와 관련해 잊을 수 없었던 순간들

by 딜레탕트 줌마

돌이켜 보면 내가 글쓰기에 흥미를 잃지 않게 된 포인트가 곳곳에 있었다.


첫 번째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시절 무슨 일이었는지 학교 시험에 주관식이 꽤나 큰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고,

중학교 3학년 중간고사쯤이었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시험이 치러졌다.

국어 선생님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국어시험에 자기 이름을 소재로 짧은 글짓기를 포함시켰다.

우리 학교가 공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는지,

지금처럼 시험성적에 예민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실험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파격적인 시험에 아이들은 모두 당황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글쓰기에 나름 자신감이 넘쳤던 난, 나름 수월하게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시험결과 발표 날.

아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선생님에게 100점이 가능한 시험이었냐

불만 어린 항의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교에서 단 1명 100점이 나왔고, 그게 바로 나였다.

그 일은 철없는 사춘기 소녀에게 자만심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 글을 모아 기념 문집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 시절엔 그런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난 편집위원으로 뽑혀 선생님과 함께 반 아이들이 제출한 글을 읽고

문집을 꾸미는 일을 맡게 됐다. 아이들은 대부분 성의 없이 숙제처럼 글을 냈기에

내용은 거기서 거기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설렁설렁 아이들의 글을 읽어 갔다.

그런데 한 친구의 글을 마주하고 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적당히 얌전하고 적당히 유쾌했으면 성적도 고만고만해서

평소엔 큰 존재감이 없었던 아이.

그 아이의 글엔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장례를 치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내 글이 기승전결에 맞춰 얘기를 조리 있게 펼치는 정도라면

그 아이의 글은 내 눈에도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고,

그 아이가 아버지가 흙에 묻히는 것을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선 같이 울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물론 그 나이에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 그 아이의 마음을, 글을 깊게 만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읽었던 많은 책 속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후로 고등학생이 됐고,

여전히 학교에서 소소하게 주최하는 글짓기에서 수상을 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교과서가 아닌 책들을 파고들 수 없었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짝사랑을 시작하면서 일기장에나 적는 잔뜩 과장되고, 멋을 부린

남이 볼까 부끄러운 그런 것들 정도에 그쳤다.


그렇게 다시 몇 년. 대학생이 됐고,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숙제처럼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고,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하는데 몰두하느라 문학적인 관심은 저 멀리

던져져 버렸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이 됐고, 취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마주하게 됐다

내가 1순위로 생각한 건 언론사 기자였다.

어릴 적 꿈처럼 프리랜서는 아니지만 글로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은 여전히 내게 매력적이었고,

사회과학을 전공한 나와 많은 친구들이 기자를 꿈꿨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기자는 꽤나 인기직종이었고, 기자가 되기 위해 치르는 입사시험은 ‘언론고시’라고 불릴 만큼 어렵다고 소문나 있었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삼삼오오 스터디를 조직했고, 친구들을 통해 다양한 소문과

정보들이 귀에 들려오곤 했다.


그때 들었던 얘기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사실인지 떠도는 ‘ ~ 카더라’ 식 풍문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얘길 들었을 때 느꼈던 가벼운 충격은 아직도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소문은 이랬다.


4대 중앙일간지 중 한 곳의 입사시험에서 논술 문제로 ‘땅’이라는 한 글자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걸로 뭘 구체적으로 쓰라고 했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자를 꿈꾸던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부동산 문제를 주제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1등을 한 응시자는 이런 식으로 썼다고 한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이랬다)


“땅!”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불라 불라 불라’


그저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겐 좀 충격이었다.

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부동산 문제라고 생각하는 축에 속했고,

창의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특출 난 인재는 아니구나 하는 현타가 왔달까....

아무튼 그래서, 같은 글쓰기라도 창작보다는 있는 사실을 제대로 옮기고, 주장하는

글을 쓰는 게 내 적성에 맞겠단 생각으로 언론사 입사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언론고시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1차 필기시험조차 합격하기 힘들었고,

보다 쉬운 취업을 위해 여성 월간지 기자 모집에 눈을 돌렸다.

거긴 필기시험이 없었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기소개서.

인터넷은커녕 컴퓨터도 흔하지 않던 시절, 그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함에 같이 지원하기로 했던 친구와 같이 서로 어떻게 썼는지 피드백을 주고받기로 했다

그런데.. 난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다시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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