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무례한 경건에서 걸어 나와 광야에 서다
나는 평생을 이른바 ‘정통’이라 자부하는
보수적인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성경 중심, 말씀 중심이라는 엄격한 교리가 내 삶의 뼈대였고,
주의 종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 것이
지고지순한 예의라 배웠다.
하지만
그 견고한 성벽 안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슬프게도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민낯이었다.
처음 균열이 간 곳은
신앙의 심장부라 불리는 신학의 전당이었다.
그곳의 스승들이 논문을 빌미로
서로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내뱉는
광경을 보았을 때,
내 안의 순수한 신뢰는 비명을 질렀다.
'그저 한때의 갈등이겠지' 하며
눈을 감았던 나의 인내가
어쩌면 가장 큰 방관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비극은 더 가까운 곳에서, 더 은밀하게 찾아왔다.
마음의 짐을 털어놓고자 상담을 요청했던 어느 날,
기도의 동역자라 믿었던
한 목회자는 나를 조용한 차 안으로 이끌었다.
간절히 위로받고 싶어 내 아픈 고민들을 털어놓던 그 순간,
내 손등 위로 그의 무례하고 끈적한 손길이 스쳤다.
당황과 수치심에 후다닥 차 문을 열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그날의 공포.
‘주의 종’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학습된 순종이 내 입을 막았고,
나는 따져 묻는 대신 홀로 삭이는 길을 택했다.
몇 년 뒤, 그는 결국 자신의 일탈로 파멸했지만,
내 영혼에 새겨진 그 서늘한 배신감은
치유되지 않은 채 흉터로 남았다.
강단 위는 더욱 가관이었다.
유명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내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의 분노보다
더 저급한 폭언이 설교라는 이름으로 쏟아졌다.
누군가를 죽이고 밟으라며 선동하는 광기 어린 외침에
회중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참함에 몸을 떨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은 성전이 아니라,
자기 확신에 찬 괴물들의 시장바닥이었다.
결정적인 증명은 가장 아픈 순간에 찾아왔다.
아버지와 시동생을 연달아 보냈을 때,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으며 가족이라 불렀던 이들 중
단 한 명도 위로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교회를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이웃의 죽음조차
'계산서' 밖의 일로 치부했다.
관계는 필요에 의해 묶여 있었을 뿐,
사랑이라는 이름의 본질은 처음부터 부재했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린다.
지금의 나는 교회를 버린 것이 아니라,
'가짜 성전'에서 걸어 나와 '진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광야에 서 있는 것이라고.
성경 속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이들을 보며 상을 뒤엎으셨다.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이들을 향한 거룩한 분노였다.
나 또한 내 안의 강도 소굴을 허물고
다시 '진짜 성전'을 짓기 위해 이 낯선 광야를 걷는다.
아직은 새로운 공동체를 찾을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내 영혼이 다시 단단해질 때까지
나는 이 고독 속에서 정결한 예배를 회복해갈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