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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Jan 17. 2022

87일차 육아일기

개힘들다

아기를 낳은지 석 달이 되어간다.




기다림을 넘은 간절함으로 얻은 딸임에도 육아는 듣던 대로 쉽지 않다. 끝없는 인내심과 체력을 요구하는데 나는 그 둘 다 부족한 사람이다.



가장 힘든 것은 밤중 수유. 다행히도 두 시간마다 울리는 울음 알람에 맞춰 비몽사몽간에 분유를 손으로 타는지 발로 타는지 모르던 신생아 시기는 지나갔다. 요즘은 그나마 4-5시간씩 자주기에 밤중 수유(밤 9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는 한두 번으로 줄기는 했으나, 새벽 3시 자다 깬 상태로 귓전을 때리는 아기 울음 공격을 받으며 분유 타는 일은 여전히 힘이 든다. 틈틈이 조각조각 꽤 자더라도 한 번에 쭉 자는 것보다 훨씬 피곤하고 졸리다.



그럼에도 아기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작고 소중하다. 존재 자체에서 오는 감동이 있다. 저것이 정말 아홉 달간 내 뱃속에 있었던 게 맞나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렇게 보다가 청승으로 눈물이 나오는 적도 있다. 저 작은 것이 울면 품에 폭 안아주고 싶고 웃으면 마음이 녹아내린다. 나를 포함하여 조금은 우습게 여기기도 했던 인간이라는 존재가 부모의 눈엔 이토록 귀한 것이었구나 하며 없던 인류애마저 생길 지경이다.



그럼에도 하루는 너무 길고 시간은 너무 빠르다. 종일 먹고 보채고 싸는, 혼자서 앉지조차 못하는 후들후들 무력한 6kg짜리 생물 하고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공허함이 생긴다. 하루하루를 치르듯 보내며 주말만을 기다리다 문득 날짜를 깨닫고 깜짝 놀라는 날의 연속이다. 육아는 물론 사람을 길러내는 훌륭한 일이지만, 그건 멀리 보았을 때고 나같이 생각이 짧은 근시안의 입장에선 이렇게 흘러가버리는 하루가 상당히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느껴지는 걸 부인할 수가 없다. 거기에 따르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덤.



나는 왜 아이를 원했나..

나에겐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줄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래야 세상을 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제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무언가 삶을 관통하는 진정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탓도 있다. 바꿔 말하면 지금 내 삶 속에 가장 큰 부분이 일이자 회사라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도 아이를 낳나? 암튼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해, 내 행복(혹은 만족?)을 위해 아이를 가졌다.



아무리 주위에서 힘들다 쉽지 않다 들어 알아도 기어이 해보고야 마는 아둔한 성격 탓에 끝내 저지르고 말았다.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었고 쥐뿔 가진 것도 없이 덜컥 세상에 내어놓은 아이에겐 미안함만이 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고 보살피는 게 이 아이에게 삶이란 짐짝을 억지로 들려준 죄를 조금이나마 갚는 일이겠지.



그럼에도 육아는 피곤하고 그 피곤이 사람의 밑바닥을 긁어 드러낸다. 그럼에도 아이는 이제껏 알던 어떤 것보다 큰 행복이자 축복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럼에도... 끝없는 기쁨과 불안의 전환... 이게 내가 겪은 지난 두 달여간을 압축하는 말이다. 이제 겨우 시작점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솔직히 가늠도 되지 않는다. 아마 더 많은 감정의 파도가 오가고, 피로가 쌓이고, 부부싸움은 잦아지고, 나는 점점 더 늙어가겠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잘 해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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