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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비 Mar 05. 2021

자연분만, 궁금하니까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aka. 콧구멍에서 수박 꺼내기

이 망할 놈의 호기심.




아기를 낳는 느낌은 어떤 걸까? 무섭지만 솔직히 좀 궁금했다. 세상에 궁금할 게 없어서 출산하는 느낌이 궁금하다니. 진통은 말 그대로 통증인데! 그런데 하여튼 그게 그렇게 궁금하더라.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한계, 라는 것도 궁금하고, 분만 후에 느껴진다는 시원함(?)도 너무너무 궁금했다. 무엇보다 내가, 저질체력에 엄살쟁이인 내가,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궁금했고.


나는 고통을 즐기는 변태인 걸까?


글쎄, 평소의 나는 조금의 통증도 지레 겁먹고 피하는 스타일이다. 매달 생리기간엔 내성이 생기거나 어쩌거나 거르지 않고 진통제를 챙겨 먹었고. 내시경은 한 번도 고민하지 않고 수면으로만 받아온 나다. 아픈 거 너무 싫다. 그럼에도 출산은 그랬다. 아기의 면역력을 위해서라던가, 성스러운 행위라는 등의 가치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도대체 그게 뭔지 알고 싶은, 말 그대로 '호기심'이었다. 이런 마음이 드는 내가 나조차 곤혹스러웠다.

 





내 주변의 선배맘들은 80%의 비율로 수술을 권했다.


진통은 엄청나게 아프니까. 물론 수술도 아프지만 진통은 말도 못 한단다. 왜 아니겠는가. 콧구멍으로 수박을 꺼내야 하는데. 출산 후의 여자의 몸을 생각해도, 자연분만보단 수술이 더 낫다고들 했다(노산이라서. 젊으면 괜찮음). 다들 맞는 말이었다. 다행히 회사 보험에서 제왕절개 수술비까지 커버되었다. 여러모로 수술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수술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머리론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아, 이번에 못하면 자연분만 평생 못해볼 텐데 너무 아쉽다(?),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한데(??), 하며 자연분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딱히 갖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한정판이라는 단어에 열리고야 마는 호구의 지갑처럼. 더구나 제왕절개 또한 배를 가르는 대수술이다. 통증과 신체 회복 속도의 측면에서 결코 진통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아기가 역아이기를 바랐다. 도저히 나 스스로 수술을 하자는 결심은 서지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를. 우리 아기는 임신 중반까지도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앉아있었기에 여기에 희망을 걸었지만, 이 겸손한 유교걸 베이비는 7-8개월쯤 되자 나의 반항은 이만하면 됐다는 듯 고개를 아래 방향으로 살포시 바꾸어 주었다. 역아니까 수술하라면 수술해야지, 정도로 안일하게 생각하다 임신 막바지가 되어 선택권이 다시 나의 손안에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양가에선 어느 누구도 출산 방법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으셨고, 남편 또한 "네 맘대로"의 기조에 변함이 없었다(이 인간은 매사가 이렇다. 좋기도 하고 짜증 날 때도 있다.). 오로지 나의 선택이었다.




-음, 자연 분만하기에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골반이네요.


38주에 진행되는 막달 검사 시간, 의사 선생님께서 내 골반에 손을 넣어 휘적(?)이며 말씀하셨다. 38주, 그러니까 후기의 후기가 되도록 마음을 확고히 정하지 못했던 나는, 오늘 내진 결과를 듣고 조금이라도 낌새가 좋지 않다 싶으면 수술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지도,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니. 아픈 것 생각하면 통증이 할부로 느껴진다는 제왕절개가 나을 것 같지만 개복 수술이라 내키지 않고, 자연분만을 하고 싶긴 한데 나의 의지와는 달리 노쇠한 몸뚱아리가 받쳐줄지 자신이 없고... 우유부단한 나의 마음만큼이나 애매한 결과였다. 의사 선생님께선 안 되겠다 싶으면 진통 중에라도 수술이 가능하니 일단 자연분만을 목표로 하자고 하셨다. 아니 선생님, 그럼 진통은 진통대로 느끼고 개복은 개복대로 하는 거잖아요. 순산이라면 자연 분만이 낫고, 난산이라면 수술이 나은데 문제는 직접 낳아보기 전까지 내가 순산이 될지, 난산이 될지는 알 수 없다는 들으나 마나 한 조언을 끝으로 진료는 끝이 났다.



진료실을 나오며 더 혼란스러워진 나를 보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자연 분만하세요. 하실 수 있어요. 생각보다 별 거 아니에요.

라고 웃으며 응원해 주셨다. 본인도 아기 둘 다 자연 분만으로 낳으셨다면서. 선생님은 몸집이 작고 왜소한 편이셨다. 나는 선생님보다 덩치도 좋고 살도 착실히 잘 찌워놨으니 못할 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38주였다. 사실 수술 날짜를 잡으려면 애저녁에 잡았어야 했다.





혼란의 막달 내진을 받은 바로 다음날, 양수가 터져버렸다.



진료 후 의사 선생님은 분명 아직 출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고 최소한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처구니없게도 하루 만에 양수가 터져버렸다. 진통이 없는 상태였으므로 어쩌다 실수로(?) 터진 것이었을까? 당시 나는 산책 겸 집을 나섰다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장바구니가 약간 무겁기는 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아파트 정문을 지나는 길에 뽀록, 하는 작은 방귀 소리가 났고 아이고 이거 참, 하면서 누가 들었을까 부끄러워하며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장본 것들을 냉장고에 넣으려고 팔을 뻗자 주르륵, 뭔가가 쏟아지는 느낌이 났다. 막달이 되어갈수록 재채기만으로도 찔끔 나오던 요실금이야 익숙했지만(ㅠㅠ) 이건 좀 느낌이 달랐다. 이상했다. 물건을 정리할 틈도 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앉자마자 물이 왈칵 쏟아지다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변기가 쌀뜨물처럼 뿌얬다. 휴지에는 옅은 핑크빛 피도 비쳤다. 서둘러 맘까페에 "양수"를 검색했다. 약간 뿌연 물, 영락없이 양수가 맞단다. 올 것이 왔구나.




-양수가 터지면 24시간 안에 무조건 분만하셔야 해요.

분만병원 응급실에 전화하니 간호사 선생님이 당장 입원하러 오라고 하셨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인가. 손이 벌벌 떨렸다. 불쌍하게도 휴일까지 출근해 일하고 있는 신랑을 서둘러 부르고, 아까 넣다 만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곧 죄다 음쓰가 되겠지), 개수대에 담긴 컵들을 설거지하고(지금 안 하면 애 데리고 퇴원할 때까지 그대로일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샤워를 했다. 출산하러 가면 오랫동안 씻지 못한다기에...  


씻고 나오니 나보다 더 놀란듯한 개미씨가 왜 전화 안받냐고 성을 내며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이제 아기 낳아야 한다고 하니까 짐 싸서 병원 가자고 차분하게 달랬다. 나도 손 떨려 죽겠는데... 힘내서 아기 낳으려면 뭘 좀 먹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긴장이 되어 어떤 것도 들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덕분에 나의 출산 전 마지막 만찬은 남은 어묵탕에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떡국떡을 넣어 끓인 잔반 처리 괴식이 되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병실을 배정받아 빠르게 입원 수속을 하고, 결코 쉽지 않았던 관장과 제모까지 마치고 나니 8시가 되었다. 가족분만실이라 신랑과 나, 단 둘이 남겨졌다. 조명을 어둡게 낮추고 TV를 틀었다. 마침 무한도전 재방송이 방영 중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TV를 보며 웃었다. 양수가 터진 후 폭풍 같던 3시간이 지나 드디어 만끽하는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생리통처럼 싸르르한 정도이던 통증이 9시가 되자 본격적인 진통으로 바뀌었다. 무한도전은 언제 다시 보아도 재밌었지만 나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아주 강한 생리통의 느낌인데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강도의 세기가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것이구나. 이것이 진통이구나.

알겠으니까 이제 저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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