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다소 적나라합니다
나는 늘 진통의 느낌이 뭘까 궁금했다.
생리통의 아픔일까? 아니면 뼈가 벌어지는 통증일까? 그것도 아니면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고통일까? 결론적으로 내가 겪은 진통은 아주아주 강한 정도의 생리통이었고, 이 통증의 크기에 묻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뼈가 벌어지는 느낌 같은 것은 딱히 받지 못했다. 하여튼 진통이라는 것은 본래의 모습에서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자궁이 엄청난 강도로 다시 수축을 하는, 자궁근육(이 맞는 표현일까?)에서 오는 통증이었다. 근본적으로 자궁의 수축으로 인한 통증이라는 점에서 생리통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하여튼 그보다는 훨씬 아팠다. 어마어마하게....
진통이 강해지자 유튜브에서 배운 호흡법을 따라해보기 시작했다. 수차례 등록해놓고 며칠 나가지도 않았던 요가 수업에서 배운 복식호흡이 얼렁뚱땅 몸에 배어버려서 막상 흉식으로 심호흡을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다들 맨날 복식 호흡하라고 성화더니, 아기 낳을 땐 흉식호흡을 하라니 너무 헷갈리잖아! 딱히 향할 곳 없는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천천히 호흡에 집중했다.
진통의 좋은 점은(그나마 따지자면) 파도처럼 왔다가 간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한 순간은 죽을 만큼 아프지만 잠시 후엔 언제 그랬냐는 듯한 휴식의 시간이 와준다. 그 사이엔 농담도 하고 좀 졸기도 하고 아까 좀 아팠나? 웃으며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다시 진통이 오면 복식호흡과 흉식호흡 사이에서 헷갈려하면서 큰 숨을 몇 번 쉬어 준다. 그러면 또 아픔이 멎는 순간이 온다. 이런 식으로 진통의 리듬을 타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고통의 파도가 화산처럼 폭발하며 (체감상)쉼없이 밀려오는 순간이 오고, 소심한 성격에 이거 미안해서 못 누르겠는데, 싶었던 호출벨을 사정없이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 무통... 무통이요!!!!
나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무통주사를 찾았다. 비급여인데다, 부작용을 우려하여 맞기를 거부하는 산모도 있어 출산 전 상담을 할 때나, 입원 수속할 때 병원에서 몇 번이나 산모의 의사를 물어보는 진통제인 무통주사 Epidural.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통 천국을 맞이하겠노라고 말씀드렸다(애초에 자연분만을 고려할 수 있었던 건, 이 무통주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지와는 상관없이, 이 진통제를 맞으려면 출산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상태여야 한다. 그러니까 자궁경부가 최소한 4cm 정도는 열려있어야 한다고(10cm까지 열려야 출산이 가능하다. 아기의 평균 머리 지름이 그 정도라고 함). 눈치 없는 나의 자궁경부는 진통 간격이 몇 분 간격으로 꽤 짧아졌음에도 3cm 정도였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엄살쟁이임) 선생님께서 그냥 놔주셨다. 그리고 얼마 뒤, 정말로 거짓말처럼 진통이 사라졌다(현대의학 만세!). 나는 다시 TV를 보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130 전후를 유지하던 아기의 심박수가 한 번씩 100 근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모니터 하시던 간호사 선생님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병실에 들어오셨다.
-음, 무통주사 때문에 이럴 수 있어서요. 주사 끊고 괜찮아지는지 볼게요.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아기의 심박수가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니 등골이 서늘해지며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아기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데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나의 무통주사의 밸브는 잠겼고, 진통은 곧 주사 맞기 전보다 훨씬 강해진 세기로 사정없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기의 심박수는 곧 안정을 찾았다.
한 시간 정도 지켜보시던 간호사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무통 주사액을 새 걸로 다시 연결해 드리겠다 하셨고, 나는 내장을 쥐어짜이는 고통 속에서도 선생님보다 더 활짝 웃으며 제발 당장 달아달라 말씀드렸다. 그러나 손가락을 넣어(진행경과 확인을 위해 출산과정 내내 끊임없이 넣으신다ㅠ) 내진하시던 간호사 선생님의 표정이 순간 굳는 것을 보았고, 맞은편 선생님께 조용히 말씀하셨다.
-Full인데?
의학적 지식은 1도 없는 나이지만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그 단어, full. 그렇다. 그새 나의 자궁 경부가 활짝 벌어진 것이다. 자궁경부가 다 열렸으면 언제든 출산이 임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무통주사는 더 이상 맞을 수 없다고 한다. 진통이 오는 때에 맞춰 힘을 줘야 하는데 감각이 살아있어야 타이밍에 맞게 아기를 잘 밀어낼 수 있으니까. 두 번째 무통을 맞고 잠깐 잠이라도 잘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기가 이제 밖으로 나오겠다는데, 엄마가 도와줘야지.
이제부턴 진통이 올 때마다 힘을 주라고 간호사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뱃속의 아기를 아래로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큰 볼일 보듯이 항문 쪽에 힘을 주되, 길고 충분한 호흡으로 끄응! 하면 된다고. 힘을 주다가 놓치게 되면 아기가 밖으로 나오다가 다시 쏙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힘을 제대로 주기 위해서는 집중이 필요했다.
끄응차, 끄응차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뭔가 덜컥 나올 것 같은, 뭔가가(이를테면 큰 ㄸ?) 걸려있는 느낌이 났다. 나는 다급하게 간호사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저 응가가 나올 것 같아요ㅠ
-바로 그 느낌이 맞아요. 계속 힘주시면 돼요.
-아니 선생님, 그러다 진짜 싸면 어떡해요.
-싸시면 되죠. 괜찮아요. 싸세요.
너무나 쿨하신 간호사 선생님의 대답.
그치만 선생님, 선생님은 이해해 주시겠지만 지금 저 옆에 있는 신랑도 괜찮을까요? 우리 사이에 평생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 건 아닐까요? 하는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방법이 없었다. 고통은 점점 더 심각해져 갔고 나는 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가능한 한 빨리 끝마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X이야 나오던 말던 계속 힘을 줬다(감사하게도 끝까지 나오지는 않았다).
이제 정말 위험했다.
엉덩이에 변이 가득 차 있어서 막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점점 강해졌고 나는 본능적으로 힘을 주어 밀어냈다. 배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뭐가 엄청난 게(?) 걸려 있는 느낌에 미칠 것만 같았다. 아아아아악! 괴성이 내 목을 뚫고 나왔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진해 보시더니 곧 아기가 나올 거라고 하셨다.
진행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었다. 초산모는 경부가 열리고 나서도 두세시간은 걸린다고 하셨는데 어찌 된 게 나는 30분 만에 아기가 다 내려왔다. 개미씨를 잠시 병실 밖으로 보내고 본격적으로 분만 준비에 들어갔다. 사실 나는 진통 때문에 아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 겨를이 없어서 자세한 기억은 안나지만, 침대 발치의 구조가 바뀌고 의사 선생님을 호출하라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대화가 들렸다(아직까지 안불렀다고???).
보호자분 옆에 계시는 게 좋으세요, 아님 나가 있으라 할까요?라고 여쭤보셔서 살짝 망설이다 옆에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개미씨 손이라도 잡고 있는 것이 심적으로 더 나았다. 남자에게 약간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도 여기에 혼자 있기엔 너무 무서웠다.
-산모님, 선생님 오고 계시니까 이제부턴 힘주지 마세요.
네??????!!???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마치 관장 후 화장실 가지 말고 참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엉덩이가 가득 차서 배 아파 죽겠는데 싸지 말고 참으라니. 이 상황에선 힘을 주지 않는 게 훨씬 더 어려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본능이 진통이 올 때마다 힘을 주어 아이를 밀어내고 있었다.
호출한 지 한참 만에야 (내 느낌상)느릿느릿 병실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질입구를 째는 등의 선처치를 하시느라 (내 체감상)시간을 또 엄청 잡아먹어서 막상 진짜로 힘을 주려고 자세를 잡고 나니 벌써 아기 머리가 보인다며,
-이거 힘 한 번만 주면 나오겠는데?
하셨고 정말로 딱 한 번 힘을 주자 머리가 나와 버렸다. 이제 힘을 빼야 아기 몸을 뺀다는데 한참을 힘만 주고 있었다 보니 오히려 힘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 모두가 나에게 “산모님!! 힘 빼세요! 힘주지 마세요!” 하며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마치 꿈처럼 아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철썩,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나왔다.
**노산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