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 Jan 08. 2022

독일 인종차별의 민낯

코로나가 남긴 그림자


코로나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20년 2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앉을자리를 찾아서 통로를 지나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뒤돌아서 한마디 할까 고민하다가, 늦은 시간이라 분명 그 사람이 한 잔 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안전을 위해 무시하고 그냥 갔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몇 주가 지난 후에도 자꾸 그 상황이 생각나고, 아마도 청소년이었을 그 아이에게 뭐라고 했어야 참 교육이 되었을까, 대화가 흘러감에 따라 그다음엔 어떻게 대응해야 좋았을까 계속 곱씹게 되었다. 이것도 일종의 트라우마인지 길에서 십 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왠지 저 멀리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몇몇 동양인 지인들은 본인을 보고 코를 막고 피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어른들에게 대체 무엇을 듣고 배운 것일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바이러스는 이겨내겠지만, 그 뒤에 오래 남아있을 그림자들이 무섭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외국인을 탓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인종을 기반으로 판단하는 흑백논리가 두렵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늘 인종차별은 있어왔다. 니하오 곤니치와 칭챙총 따위의 말을 들을 때마다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고,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뭐라고 쏘아붙인 들 조그마한 동양 여자가 이야기하는 게 들리기나 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더 재밌어하는 것 같기도 해서, 내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이런 노골적이고 무례한 차별뿐만 아니라 무의식 중에 뿌리 깊게 내려진 선입견이나 편견도 많이 마주한다. 한 독일인이 나에게 '너는 불교신자잖아, 그럼 부활절에 뭐해?'라고 물은 적도 있었다. 나는 불교신자가 아닐뿐더러, 그 사람은 나에게 종교가 무엇인지 물은 적도 없는데, 내가 불교신자라는 결론은 어떻게 나온 걸까? 아시아인은 모두 불교신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밖에도

'너희 중국에서도 맥주 많이 마시니?'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물어본 적 없음)

'한국에서도 설날에 베트남처럼 보내니?'

  (베트남에서 어떻게 보내는지 한국인인 나는 모름)

'나 옛날에 베트남인 친구 있었어!

   (so what? 나도 포르투갈에 친구 있어.)

등등 일상에서 들 수 있는 예는 무수히 많다.


나름의 관심의 표현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소소한 편견이나 차별을 마주할 때는 오히려 더 무기력해진다. 인종적인 측면에서 아시아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겠지만, 여기에 속한 수많은 국가들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고, 생김새도, 언어도 다 다른데, 이런 차이에 대한 존중도 없이 한 번에 뭉뚱그려 아시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어떤 선입견들을 갖고 있는 걸까? 독일과 프랑스와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다르듯이, 아시아의 국가들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언제쯤 이해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나라를 떠나 사는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해도 나는 늘 이방인임을. 차별과 편견의 날카로운 단면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살고 있는 것은, 이런 일들에 대해 사과하고, 좀 더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는 독일에도 자동차가 있냐고 물어보는 덜 떨어진(?) 애도 있었어.' 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전기 신청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