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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겨울 속에서도 봄을 사는 법을 배우는 것

X세대의 상실과 불안에 대하여|넷플릭스 시리즈 <우리들의 사계절>

by 조하나



우리 삶이 내내 화려하고 뜨거운 여름이라면, 무슨 재미일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우리들의 사계절>을 보고 나니 10년 전에 본 노아 바움백 감독의 <위아영>이 떠오르더군요. 그 영화 속에서 40대였던 조쉬와 코넬리아가 지금쯤 <우리들의 사계절>에 등장하는 이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겠구나,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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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노아 바움백 감독의 <위아영> (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우리들의 사계절>(The Four Seasons)





두 작품 모두 ‘나이가 들어가는 것’ ‘늙어가는 것’이라는 위태로운 영토를 탐사하지만, 그 지도를 그리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바움백의 <위아영>이 브루클린의 지적 불안과 날 선 위트로 세대 간의 균열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봤다면, 티나 페이의 <우리들의 사계절>이 그려낸 세계는 더 넓고, 따뜻하며, 애상적인 시선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집니다.


바움백의 인물들은 문화적 유효성과 정체성이 결부된 예술가들입니다. 그들의 불안은 지적이고 실존적입니다. 반면 티나 페이가 그린 <우리들의 사계절>의 인물들은 헤지펀드 매니저, 건축가와 같은 전문직 부유층으로 그들의 위기는 더 내밀하고 관계 중심적입니다. 그리고 우정과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의 지형에 초점을 맞추죠. 즉, 이 시리즈는 ‘쿨’하게 보이는 것보다 ‘괜찮아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움백의 신랄함은 페이의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대체되었고, 늙어감의 공포와 잘려나간 젊음의 환상통, 그리고 세대교체의 당혹스러운 과정을 바라보는 그 눈길은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한편, <우리들의 사계절>은 X세대, 현대 인구 통계학에서 ‘잊힌 세대’, ‘방치된 둘째 아이’라 불리는 이들의 결정적인 문화적 초상화입니다. 영원한 ‘대안(alternative)’으로 자신들을 규정했던 한 세대가, 이제는 자신들이 그토록 저항했던 기성세대의 얼굴을 하고 거울 앞에 서게 되는 그 아이러니한 과정을 포착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냉소와 반항으로 무장했던 청춘들이 죽음, 연약함, 그리고 연결에 대한 갈망이라는 지극히 비(非) 아이러니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 바로 <우리들의 사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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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의 시차를 뛰어넘은 리메이크



이 시리즈의 크리에이터이자 주연, 티나 페이는 <30 Rock> 시절부터 함께 일해온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인 랭 피셔, 트레이시 위그필드와 함께 이전의 날카로운 코미디와는 다른 결의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어른들을 위한, 어른들의 문제를 다루는”더 현실적이고 따뜻한 쇼를 만드는 것이었죠. 제작진은 오늘날 많은 TV 쇼가 주는 “강렬하고 불안을 유발하는” 경험 대신, 시청자가 “따뜻한 욕조에 친구들과 함께 들어가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아늑한 작품”을 의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작가들로 구성된 작가실에서 자신들의 결혼과 우정에 대한 실제 경험을 편안하게 작품에 녹여냈고, 이를 통해 인물들의 갈등을 인간적인 규모로 그려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사계절>은 단순한 리메이크를 넘어, X세대의 문턱을 함께 넘어온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성찰하며 동세대의 시청자들에게 건네는 따뜻하고 진솔한 위로와 같습니다.


<우리들의 사계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영감의 원천이자 40여 년 전의 원형인 앨런 알다의 1981년 동명 영화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알다가 직접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세 쌍의 중년 부부가 사계절에 걸쳐 함께 휴가를 보내며 겪는 관계의 시험을 그린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한 친구(닉)가 갑작스레 이혼을 선언하고 젊은 연인을 데려오면서 그룹의 평온한 일상이 깨지는 설정은, 2025년 시리즈가 그대로 가져온 기본 골격입니다. 할리우드의 전설, 앨런 알다는 <우리들의 사계절>에 앤의 아버지로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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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의 작품은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원작의 설정을 빌려와 중년의 불안이 44년 동안 어떻게 변했고 또 어떻게 그대로 남아 있는지를 탐구하는 시대적 재해석에 가깝습니다. 두 작품을 나란히 놓는 것은 지난 40여 년간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표가 됩니다.



계급과 열망의 변화: 알다의 인물들이 변호사, 편집자 등 상류 중산층이었다면, 페이의 인물들은 ‘헤지펀드 왕’과 같은 초부유층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위기의 본질을 중산층의 권태에서, 모든 것을 가졌기에 역설적으로 더 공허한 엘리트의 실존적 고뇌로 바꾸어 놓습니다.


젠더 역학의 진보: 1981년 영화는 당대 기준으로는 진보적이었지만, 여성 인물의 주체성이 부족했습니다. 샌디 데니스가 연기한 원작의 앤은 이혼 후 까다롭고 우울한 신경증 환자로 묘사되며 서사에서 거의 사라져 버리죠. 반면 케리 케니실버가 연기한 새로운 앤은 시리즈 내내 중심을 잃지 않는 회복력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는 40여 년간의 페미니즘적 진보가 서사 속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포용성의 확장과 그늘: 가장 명백한 변화는 백인 이성애자 세 커플 중 하나를 동성 커플(대니와 클로드)로 대체한 것입니다. 이는 시리즈가 사랑과 헌신의 모델을 더 폭넓게 탐구하게 해 주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유일한 유색인종 배우에게 이중의 역할을 부여했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니는 흑인이자 게이, 클로드는 이탈리아인이자 게이로 나오니까요.


감성의 온도차: 알다의 영화가 드라마적으로 가볍고 편안한 코미디 드라마로 묘사된다면, 페이의 버전은 더 많은 코미디 인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더 우울하고 감정적으로 강렬합니다. 인물들이 겪는 위기의 고통과 혼란을 더 깊이 파고들며, 삶의 희극성과 비극성 사이를 더욱 위태롭게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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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025년의 <우리들의 사계절>은 40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원작이라는 메아리에 응답하며, 시대의 변화를 투영하고 현재 우리의 자화상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작품으로 태어났습니다.







인생은 비발디 변주곡처럼


이 시리즈의 구조는 비발디의 동명 협주곡을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서사를 이끄는 엔진으로 삼습니다. 각 계절이 어떻게 협주곡의 감정적 궤적을 반영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이 작품의 건축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죠.


봄 (1-2화): 위기의 탄생. 닉의 충격적인 이혼 발표는 비발디의 새소리와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와 맞물려 애처로운 아이러니를 자아냅니다. 재생의 계절은 그렇게 파열의 계절이 됩니다.


여름 (3-4화): 갈등의 열기. 에코 리조트의 어색함과 새 연인 지니의 등장, 해변에서의 취중 다툼은 비발디 여름 협주곡의 찌는 듯한 분노와 천둥 번개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가을 (5-6화): 우수와 성찰. 모교 방문과 딸의 원망이 담긴 연극, 식어가는 관계들은 수확과 낙엽, 즉 축제와 쇠락이 공존하는 가을의 정서를 완벽히 구현합니다.


겨울 (7-8화): 죽음과 재생의 약속. 눈 속에서 벌어진 닉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겨울의 얼어붙은 정적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시리즈는 지니의 임신 소식으로 막을 내리며, 음악과 계절 자체에 내재된 순환적 약속, 즉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서사 위에서, 한때 날카로운 풍자로 시대를 휘어잡았던 티나 페이는 이제 감정적 리얼리즘과 인물의 깊이를 우선시하는 ‘드라메디(드라마 + 코메디)’의 품으로 안착합니다. “놀라울 정도로 웃음이 적다”는 일부의 비평은 실패가 아니라, 황당무계한 개그 대신 현실의 어색함과 실망 속에서 피어나는 고통스러운 자기 비하적 유머를 택하겠다는 의도된 선언에 가깝죠.


화려한 캐스팅은 이 세대적 자화상을 위한 신의 한 수입니다. 티나 페이, 스티브 카렐, 윌 포테이 등 당대 코미디의 지형을 그렸던 배우들은 이제 자신들이 속한 세대의 ‘불안’이라는 극적인 심연을 탐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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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베테랑 코미디언 배우들은 각자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합니다. 스티브 카렐은 이기적일 수 있는 ‘닉’의 행동에 연약함과 진지함을 불어넣어 공감을 자아내고, 콜먼 도밍고의 ‘대니’는 재치와 감정적 깊이를 겸비해 시리즈의 백미로 꼽힙니다. 케리 케니실버는 원작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변모한 ‘앤’의 회복력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고, 작가이자 감독으로 주로 활동해 온 마르코 칼바니의 연기 역시 능청스럽고 사랑스러우며 훌륭합니다. 이처럼 배우들의 열연은 각 인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며 시청자들이 그들의 여정에 깊이 몰입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쟁쟁한 배우들의 앙상블은 마치 오랜 시간 이미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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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세대, 이도 저도 아닌 ‘기성세대’가 되다



등장인물들은 아날로그의 유년기와 디지털의 여명을 모두 겪은 X세대(1965-1980년생)의 전형입니다. 그런지 록과 독립 영화, 그리고 만연한 아이러니로 정의되던 그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나이 든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책임을 지는 ‘샌드위치 세대’이자, 경제적 풍요 속에서 영적 공허를 느끼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사계절>은 순수 코미디라기엔 너무 우울하고, 무거운 드라마라기엔 너무 가볍습니다. 이 중간적 위상은 바로 작중 중년 인물들의 경계적 상태, 즉 젊음과 늙음, 책임과 욕망, 과거의 자아와 미래의 운명 사이에 끼어 있는 그들의 상태를 완벽하게 반영합니다.


제작진과 배우들을 보고 시트콤을 기대한 이는 드라마에 실망하고, 정통 드라마를 기대한 이는 가볍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는 작품의 전략이기도 하죠. 90년대식 아이러니로 정의된 X세대가 이제는 삶과 죽음이라는 진지하고 비(非) 아이러니한 문제에 직면한 것처럼 이 시리즈의 모호한 톤은 ‘중년’이라는 경험 자체를 구현합니다.


중년은 더 이상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정의되지 않는, 과거의 코미디적 부조리와 미래의 드라마적 무게가 뒤섞인 상태인 것이죠. 이 쇼의 장르는 그 인물들의 삶만큼이나 ‘중간’에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세대적 모순을 파고드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대안’과 ‘반(反) 기성’ 문화를 정의했던 세대입니다. 그러나 작품 속 그들은 헤지펀드 매니저와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호화로운 휴가를 즐기는 기성세대 그 자체입니다. 중심 갈등은, 젊은 시절의 반항적인 자아상과 현재의 안락하지만 어딘가 실망스러운 부르주아적 현실을 조화시키려는 분투에서 비롯됩니다. 젊은 시절의 기준으로 보면 명백히 ‘변절자’가 된 그들. 닉의 중년 위기는 단순히 늙어감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자신이 쌓아 올린 예측 가능한 안락함으로부터의 탈출 욕구이며, 한때 자신들에게 의미를 부여했던 반문화적 정체성의 상실에서 오는 심오한 정체성 위기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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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해체하고, 우정을 재건하다


시리즈는 닉과 앤의 이혼을 촉매제로 사용하여 모든 인물이 자신의 삶의 선택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중년에게 결혼은 더 이상 사적인 계약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이라는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한 지점이라는 현대 사회학적 이해를 탐구하는 서사 장치로 작동합니다. 한 결혼이 깨지면, 그 충격파는 전체 ‘관계 공동체’를 뒤흔듭니다.


닉과 앤의 이혼은 시리즈에서 클라이맥스가 아닌 촉매제 역할을 하며, 이후의 드라마는 “이제 휴가 여행은 어떻게 하지?” “휴가 여행에 누가 와야 하지?” “닉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앤을 어떻게 지지하지?”와 같은, 그룹의 현실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닉의 이혼과 함께 등장하는 32세의 치과 위생사 ‘지니’는 새로운 연인을 넘어, 시리즈의 핵심 주제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녀는 중년의 친구 그룹에게 ‘젊음’이라는 관념 그 자체를 상징하며, 그들의 불안, 질투, 그리고 자기기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촉매제 역할을 하죠. 다른 인물들은 그녀를 경계하며 ‘요가 바비’라는 경멸적인 딱지를 붙입니다. 그녀는 그들이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모든 것—자발성, 신체적 활력, 미래에 대한 낙관—을 상징하기 때문이죠.


닉에게 그녀는 자신의 필멸성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판타지’이고, 앤에게는 ‘굴욕’이자 ‘성장’의 계기입니다. 그러나 시리즈가 훌륭한 점은, 앤이 지니를 극복하는 대신 그녀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성숙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낸다는 점입니다. 닉의 죽음 후, 앤이 슬픔에 잠긴 지니를 위로하는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 상처를 넘어 타인을 포용하는 숭고한 순간입니다.


궁극적으로 지니는 파괴(이혼)의 상징에서 재생(임신)의 상징으로 전환됩니다. 그녀는 그룹의 균열을 초래했지만, 닉의 아이를 임신함으로써 그룹에 새로운 생명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이 순환적 역할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계절의 순환’이라는 주제와 완벽하게 맞물리며, 상실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합니다.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열정적인 사랑의 잔해가 아니라, 묵묵히 서로의 곁을 지켜온 우정이라는 단단한 땅입니다. 가장 심오한 관계는 종종 케이트와 대니의 플라토닉한 우정에서 발견됩니다. 마지막 장면이 낭만적 재결합이 아니라, 닉을 기리며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지니의 임신을 그들의 집단적 미래로 흡수하는 모습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때 결혼에 부여되었던 정서적 지지와 연속성을 이제는 우정이 제공하고 있음을, 이 ‘선택된 가족’이야말로 진정한 불변의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겨울 속에서 봄을 사는 법


<우리들의 사계절>은 냉소와 아이러니를 갑옷처럼 둘렀던 한 세대가 마침내 그 갑옷을 내려놓고 삶의 맨얼굴—사랑, 상실, 배신, 그리고 필연적인 죽음—과 마주하는 중년의 성장 드라마입니다. 그들의 ‘웃픈’ 현실은 더 이상 젊음을 모방하려는 처절한 몸짓이 아니라, 희극과 비극이 뒤섞인 삶 자체의 본질을 긍정하는 성숙의 증거입니다. 젊음의 열병 같던 여름이 지나고 모든 것이 스러지는 가을을 거쳐, 혹독한 겨울의 한복판에서 이들은 깨닫습니다. 진정한 비극은 겨울이 온다는 사실이 아니라, 함께 웅크려 온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임을 말이죠.


모든 계절은 지나가지만, 그 흔적은 우리 안에 남아 다음 계절을 맞이하는 우리를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이 작품이 건네는 위로는, 모든 잎이 떨어진 겨울에도 우리는 ‘만날 봄인 듯 살 수 있다’라는 가능성과 희망입니다. 그 봄은 과거의 화려함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의 아픔과 다가올 소멸의 불안 속에서도 기꺼이 서로의 손을 잡고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는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잘 산 삶이란 모든 계절을 여름처럼 뜨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서로에게 따뜻한 봄이 되어주는 법을 배우는 것. 이 애틋하고 너그러운 진실이야말로, 티나 페이와 그의 동료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가장 진솔한 연서(戀書) 일 것입니다.


공개 2주 만에 시즌 2 제작이 확정된 <우리들의 사계절>, 남겨진 이들이 또 다른 사계절을 어떻게 통과해 나갈지, 그들의 다음 여정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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