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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세상의 혼돈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는 유일한 것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by 조하나


조하나의 아일랜드 ▶️팟캐스트로 듣기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입니다. 이 영화가 사람이었다면, 양 볼을 살짝 꼬집어 잡아당기며 뽀뽀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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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개봉한 <에에올>은 성공적인 영화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영화계의 다이나믹 듀오, 다니엘 콴과 다니엘 샤이너트 감독(이하 ‘다니엘스’)이 연출한 이 작품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철학적 깊이를 담아내며, 관객과 평단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죠. <에에올>은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만연한 허무주의에 대한 심오하고 일관된,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발칙하고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인본주의적 응답입니다.


이 영화의 핵심 논지는 장르를 넘나드는 맥시멀리즘의 혼돈스러운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실존적 절망에 맞서는 급진적 공감, 즉 ‘친절함(Be Kind)’을 수동적 감정이 아닌 능동적이고 용기 있는, 그리고 전략적인 형태의 반란으로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에 이민 온 중년 여성 에블린 왕(양자경)이 세무 조사를 받던 중, 자신이 다중우주를 구할 유일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황당한 설정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혼돈의 스펙터클 속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절실한 인간적 가치를 탐구하죠.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덮쳐오는 혼돈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가장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인간적 연결과 다정함이라는 진리를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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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창세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성공은 우연이 아닙니다. 영화의 제작 과정 자체가 작품의 주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불가능해 보였던 여정 속에서 창의성과 협업, 그리고 인간적 가치가 어떻게 위대한 결과물을 낳을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놀랍게도, 영화의 초기 구상은 남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작진의 첫 번째 선택은 무술계의 전설적인 배우 성룡(Jackie Chan)이었죠. 만약 이 캐스팅이 성사되었다면, 영화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성룡의 캐스팅이 불발되면서 다니엘스 감독은 각본을 전면 수정하여 말레이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양자경(Michelle Yeoh)을 위한 여성 주인공 서사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캐스팅 변경이 아닌, 영화의 정서적 핵을 완전히 재구성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의 어머니와 딸 사이의 복잡 미묘한 관계, 세대 간의 트라우마, 그리고 여성이 겪는 중년의 위기라는 훨씬 더 섬세하고 다층적인 주제를 탐구하게 되었죠. 캐스팅 디렉터 사라 할리 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양자경)를 캐스팅하고 난 후, 나머지는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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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양자경에게 에블링 왕 역할은 그녀가 가진 능력의 모든 스펙트럼, 즉 코미디, 드라마, 액션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녀 스스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기회”라고 표현할 만큼 이 역할은 그녀의 연기 인생에 새로운 정점을 찍게 했습니다. 영화는 심지어 그녀의 실제 레드카펫 참석 영상을 삽입하여 배우 양자경과 극중 ‘영화배우’ 버전의 에블린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독창적인 연출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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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먼드 왕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서사를 지니죠.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과 <구니스>의 아역 스타로 전 세계에 얼굴을 알렸던 그는 성인이 된 후 아시아계 배우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부재로 인해 연기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수십 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는 다정하고 소심한 남편 웨이먼드와, 유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알파 웨이먼드’를 완벽하게 오가며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숨겨진 잠재력을 발현한다’는 영화의 주제는 그의 성공적인 복귀라는 현실과 맞물려 더욱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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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왕/조부 투파키 역의 스테파니 수는 두 캐릭터의 복합적인 이중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녀는 캐릭터가 지닌 철학적 고뇌와 정서적 핵심을 꿰뚫어 보는 놀라운 통찰력을 영화 내내 보여줍니다. 그녀의 연기는 파괴적인 빌런과 사랑을 갈구하는 딸의 모습을 넘나들며 영화의 중심 갈등을 훌륭하게 이끌죠.








마블보다는 고스트버스터즈에 가깝게


이 영화는 독창적이고 감독 중심적인 작품으로 명성이 높은 제작사 A24 작품입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1,430만 달러에서 2,500만 달러 사이의 예산으로 이토록 야심 찬 시각적 스펙터클을 구현한 것은 영화계의 기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재정적 제약은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혁신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영화의 약 500개에 달하는 야심 찬 시각 효과(VFX)는 대부분 단 5명에서 9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핵심 팀에 의해 완성되었습니다. 이들 중 다수는 감독들의 오랜 친구들이었죠. 이 작고 기민한 팀은 팬데믹 기간 동안 각자의 집에서 원격으로 작업했으며, 일반 소비자용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작업 방식은 ‘마블보다는 고스트버스터즈에 가깝게’라는 철학으로 요약됩니다. 즉,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CGI보다는 실용적이고, 카메라 내에서 구현되며, 사진과 같은 질감을 지닌 효과를 선호했다는 의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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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작 방식은 영화의 철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데요.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힘(국세청, 우주적 허무주의)에 맞서 평범한 것들 속에서 의미와 연결을 찾는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소수의 친구들이 제한된 자원과 협업을 통해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제작 과정, 그 자체에 투영되어 있습니다. 이는 영화 제작 방식(how)과 영화의 메시지(what)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자기 강화적인 천재성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모델의 성공은 독립 영화 제작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죠.









흥행 돌풍과 비평가들의 찬사, 그리고 눈물의 시상식


<에에올>은 전 세계적으로 1억 4,341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A24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 되었고, 스튜디오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독창적이고 비상업적으로 보이는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관객들이 독창성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였죠.


비평가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 93-94%, 메타크리틱에서 81/10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습니다. 평론가들은 영화의 독창성, 대담한 장르 혼합, 그리고 복잡한 철학적 주제를 능숙하게 다루는 방식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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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 영화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말 그대로 휩쓸었습니다. 총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주요 7개 부문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죠. 수상 소감들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되며 영화의 주제를 현실 세계로 확장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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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자경은 “누구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게 두지 마세요”라는 수상 소감으로 여성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고, “나처럼 생긴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이것이 희망의 불꽃이 되길 바랍니다”라며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역사적인 순간을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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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조연상을 받은 키 호이 콴은 난민 캠프에서 시작해 오스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하며 ‘아메리칸드림’과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생생하게 구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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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스 감독들은 “천재성은 집단으로부터 나온다”며 창작의 공동체적 가치를 강조하고, “이 미친 세상의 혼돈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해 주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죠.








무정부 상태의 맥시멀리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기술적 ‘혼돈’은 무작위적인 나열이 아니라, 정서적이고 철학적인 서사를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된 언어 체계입니다. 영화의 모든 기술적 요소는 관객을 압도하는 동시에 그 혼돈 속에서 명확한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죠.


다니엘스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초현실적 코미디, SF, 무술, 가족 드라마 등 여러 장르가 무정부적으로 뒤섞인 ‘맥시멀리즘’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스타일 과시가 아니라 현대인의 분열된 의식과 삶의 압도적인 본질을 반영하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입니다. 엉덩이 플러그나 핫도그 손가락 같은 유치한 유머와 세대 간 트라우마에 대한 숨 막히는 진지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능력은 그들만의 독보적인 시그니처입니다. 이들은 관객을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동시에 그 혼란의 중심에 있는 가족의 이야기에 깊이 몰입하게 만드는 놀라운 균형 감각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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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언어는 영화사에 대한 풍부한 오마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는 관객에게 일종의 ‘감정적 단축키’를 제공합니다. <에에올>은 아나모픽 렌즈와 채도 높은 네온 색감, 안개 낀 듯한 조명을 사용하여 <화양연화>를 연상시키는 애틋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왕가위 유니버스’를 재현하고, <다이하드>와 같은 1990년대 액션 영화의 느낌을 살리기도 하죠.


또한, 영화는 1.85:1, 2.39:1, 4:3 등 다양한 화면비를 역동적으로 전환하며 현실, 기억, 장르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명시합니다. 예를 들어, 에블린의 첫 번째 ‘버스 점프’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화면을 압축하는 효과로 표현되며, 과거 회상 장면은 기억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4:3 비율로 제시되죠.


이러한 촬영 전략의 핵심은 다른 영화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습니다. 촬영감독 라킨 사이플은 <에에올>의 ‘왕가위 유니버스’가 실제 왕가위 영화보다 채도가 더 높은 이유에 대해 우리의 뇌가 그 영화의 가장 다채로운 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영화의 미학이 단순한 참조를 넘어 다중우주를 ‘집단적 영화 체험의 풍경’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심오한 접근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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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를 수상한 편집자 폴 로저스는 현란하고 정신없는 ‘버스 점프’ 시퀀스와 왕씨 가족의 명확한 감정선을 병치시키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줍니다. 로저스는 “최고의 편집은 눈에 띄지 않는 편집”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하죠. <에에올>의 편집은 매우 가시적이며, 그 자체로 스펙터클이자 스토리텔링의 핵심 요소입니다. 그는 편집이 촬영만큼이나 표현적인 예술 형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촬영과 동시에 편집을 진행하며 감독들과 긴밀하게 소통했고, 첫 편집본이 최종본과 3분밖에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초기부터 명확한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편집 과정의 가장 큰 과제는 폭발적인 미학과 감정적 핵심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었으며, 초기 버전에서 너무 많은 농담과 시각적 기교에 치중했을 때 가족의 이야기가 힘을 잃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끊임없이 조율했다고 합니다.


<에에올>의 시각 효과팀의 목표는 화려한 스펙터클이 아닌,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듯한 사진적 질감이었습니다. 실사 효과, 그린 스크린, CGI를 인위적으로 덧씌운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렌즈로 함께 촬영된 것처럼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 중점을 두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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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는 황홀합니다. 양자경의 에블린은 지칠 대로 지친 세탁소 주인, 화려한 영화배우, 쿵후 마스터, 그리고 말하는 돌멩이를 넘나들며 경이로운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녀는 영화의 흔들리지 않는 정서적, 신체적 닻의 역할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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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호이 콴의 웨이먼드는 다정하지만 무기력해 보이는 남편, 세련되고 유능한 알파 웨이먼드, 비극적인 낭만주의자 CEO 웨이먼드라는 세 가지 버전을 완벽하게 소화합니다. 특히 ‘약한’ 웨이먼드의 친절함이 사실은 허무주의에 맞서는 전략적인 싸움 방식임을 섬세하게 표현해 내며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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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수의 조이/조부 투파키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신적인 존재와 엄마의 인정을 갈망하는 딸의 모습을 넘나들며 숨 막히는 연기를 펼칩니다. 그녀는 한 장면 안에서도 무시무시한 악당에서 상처받기 쉬운 아이로 돌변하며, 영화의 중심적인 철학적 갈등을 온몸으로 구현합니다.







비관과 낙관 사이, Just Be Kind


<에에올>은 현란한 시각적 유희를 넘어,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실존적 질문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비관적 허무주의의 심연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실존주의와 부조리주의, 그리고 동양 철학의 지혜를 통해 ‘친절함’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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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베이글: 비관적 허무주의와의 대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상징인 ‘에브리씽 베이글’은 모든 것이 담겨 있기에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의미의 블랙홀입니다. 이는 ‘비관적 허무주의’에 대한 완벽한 시각적 은유입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정보의 과잉이 해방이 아닌 마비로 이어지고, 결국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공허한 결론에 도달하는 상태를 상징하죠.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이 파괴적인 형태로 뒤틀린 모습과도 같습니다. 조부 투파키는 이 베이글을 통해 자신과 에블린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소멸시키려 합니다.


조부 투파키는 이 허무주의의 인간적 현신입니다. 모든 것을,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 경험한 그녀의 정신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소멸, 즉 의미 없음의 견딜 수 없는 무게로부터의 탈출입니다. 그녀는 디지털 과포화와 실존적 불안에 시달리는 현세대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단순한 철학적 유희를 넘어 현대 사회의 심리적, 영적 질병을 진단합니다. 인터넷 시대에 우리는 모두 ‘모든 것, 모든 곳, 한꺼번에’라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 수도 있었을 무수한 삶의 가능성, 끝없는 정보의 홍수,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는 선택의 마비와 개인적 무가치함을 낳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부 투파키를 탄생시킨 조건이죠. 영화의 ‘빌런’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현대적 현실에서 비롯된 철학적 질병,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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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리 아이’의 반란: 부조리주의와 실존주의적 선택


장난감 눈알, 즉 ‘구글리 아이(Googly Eye)’는 베이글과 시각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완벽한 대척점에 있습니다. 검은 원 안의 흰 구멍인 베이글과 달리, 구글리 아이는 흰 원 안의 검은 동공이죠. 이는 공허함 속에서도 초점을 맞출 지점, 즉 어리석음과 즐거움을 찾아내려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이는 허무주의에 대한 부조리주의 및 실존주의적 응답입니다.


영화의 전환점은 에블린의 깨달음에서 옵니다. 만약 허무주의를 전제로 ‘객관적으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면, 바로 그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를 ‘주관적으로 선택할 자유’를 준다는, 실존주의적 결론 말입니다. 영화는, 의미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연결, 친절과 같은 행위를 통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주의 철학과 일맥상통합니다. 의미 없는 우주에 반항하는 방법은, 그 부조리를 끌어안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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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싸움의 핵: 모녀 관계와 세대 간 트라우마


다중우주의 현란한 혼돈은 사실상 한 가족, 특히 이민자 어머니와 딸 사이의 복잡하고 아픈 관계를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한 거대한 은유입니다. 영화의 진정한 서사적, 감정적 핵은 에블린과 조이, 엄마와 딸의 갈등이며, 이는 세대 간 트라우마의 대물림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에블린의 양육 방식은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남편 웨이먼드와의 사랑을 위해 가족에게서 도망쳤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경험은 그녀에게 성공만이 안정과 인정을 보장한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죠. 그녀는 딸 조이를 사랑하기에, 자신이 겪었던 실패와 실망을 물려주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너, 살쪘다”, “네 여자친구를 할아버지께 뭐라고 소개해야 하니?”와 같은 비판과 통제로 표현됩니다. 에블린은 이를 보호라고 생각하지만, 딸 조이에게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스러운 족쇄로 느껴집니다. 이는 생존을 위해 자녀의 감정적 필요를 돌볼 여유가 없었던 많은 이민자 가정의 딜레마를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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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 투파키의 탄생은 이 갈등의 필연적 귀결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결코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딸의 고통이 우주적 규모로 폭발한 현상입니다. 그녀가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이유는 악의가 아니라, “내가 보는 것을 봐주고, 내가 느끼는 것을 느껴줄 유일한 사람”, 즉 ‘엄마’를 찾기 위함입니다. ‘에브리씽 베이글’은 바로 이 끝없는 공허함과 인정받지 못한 사랑의 상징입니다. 조이는 어머니의 과도한 기대로 인해 한계를 넘어섰고, 그 결과 모든 가능성을 경험하며 역설적으로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전투가 아닌 화해의 과정입니다. 에블린은 조부 투파키를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같은 허무의 심연을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됩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에블린이 딸의 모든 결점—“고집 세고, 방향도 없고, 엉망진창인, 꼭 자기 엄마 같은”—을 열거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언제나 너와 여기 함께 있고 싶어”라고 고백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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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비판을 통한 조건부 사랑에서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무조건적인 수용으로의 전환입니다. 에블린은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 줌으로써, 대물림되던 트라우마의 고리를 끊어냅니다. 이 서사는 아시아계 이민자 가정의 특수성을 넘어 모든 부모와 자식 관계에 내재된 사랑과 오해, 그리고 화해의 가능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민자와 퀴어의 ‘만약에’


<에에올>의 다층적인 서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다니엘스 감독, 특히 대만계 미국인인 다니엘 콴의 개인적 경험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이민자 서사와 퀴어 정체성은 단순한 배경 설정이 아니라, 영화의 철학적 질문을 구체화하고 감정적 깊이를 더하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버스 점핑’은 이민자들이 여러 문화적, 언어적 공간을 오가며 겪는 끊임없는 ‘코드 스위칭’을 반영합니다. 영화 속에서 영어, 광둥어, 만다린어가 자연스럽게 혼용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죠.


다니엘 콴 감독은 이민자의 삶이 본질적으로 ‘만약에(What if)’라는 질문과 함께한다고 설명합니다.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선택은 필연적으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무수한 상상을 낳습니다. 다중우주는 이러한 이민자의 심리적 상태를 탐구하기 위한 ‘완벽한 장소’입니다. 에블린이 쿵후 스타나 요리사가 된 다른 삶을 엿보는 것은, 이민자들이 겪는 정체성의 파편화와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에 대한 상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에블린이 모든 우주 중에서 가장 ‘최악’의 버전인 이유는, 바로 그녀가 실현되지 못한 모든 가능성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주 배경인 세탁소 역시 콴 감독의 할아버지가 실제로 운영했던 공간으로, ‘아메리칸드림’의 고단한 현실을 반영하며 이야기에 진정성을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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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의 퀴어 정체성은 영화의 서사를 이끄는 핵심 동력입니다. 다니엘스 감독은 이 서사가 영화에 필수적이며, 중국과 같은 주요 시장에서의 검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이 영화는 (퀴어 서사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라는 콴 감독의 말처럼, 조이의 정체성은 영화의 중심 갈등, 즉 ‘수용’과 ‘인정’에 대한 투쟁을 촉발하는 기폭제입니다.


에블린이 조이의 여자친구 베키를 할아버지에게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 장면은 단순한 편견을 넘어 세대 간의 문화적, 정서적 단절을 상징합니다. 다니엘 콴은 이민자 가정 내 퀴어 자녀가 겪는 고통을 ‘느린 소멸’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이는 한 번의 극적인 갈등이 아니라, 정체성이 계속해서 무시되거나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되며 반복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의미합니다. 조부 투파키의 허무주의적 분노는 바로 이 ‘소멸’에 대한 궁극적인 저항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조건 없이 봐줄 어머니를 갈망하는 절규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민자로서의 트라우마와 퀴어로서의 소외감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가부장적 전통(아버지의 반대)에 맞서 자신의 사랑(웨이먼드)을 선택했던 에블린은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딸에게 이성애 중심적 전통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을 가합니다. 영화는 에블린이 딸을 진정으로 수용하기 위해, 먼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내면을 치유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전략적 무기로서의 ‘친절함’


웨이먼드의 철학,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때일수록, 특히 더 친절해야 해”는 이 영화의 핵심 명제입니다. 이는 순진하거나 단순한 감상주의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적의와 혼돈에 직면했을 때 친절을 선택하는 것은 심오한 용기와 힘을 필요로 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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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먼드의 패니팩 액션 장면은 이 철학의 완벽한 비유입니다. 그는 자신의 평범한 삶의 도구들을 창의적이고 우아하게 사용하여, 비살상적인 방식으로 위협을 무력화시킵니다. 그의 ‘싸움’은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화시키고, 공통점을 찾으며,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는 친절함이 갈등을 헤쳐 나가는 전략적이고 강력한 방식임을 보여주며, 초반 에블린의 무차별적인 폭력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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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철학은 서구 실존주의뿐만 아니라 동양 사상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흰 구멍을 가진 검은 원, 베이글과 검은 동공을 가진 흰 원, 구글리 아이는 음양의 상징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합니다. 이는 허무주의와 희망이라는 상반된 힘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균형을 위해 둘 다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에블린은 베이글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을 초월합니다.


도교는 혼돈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을 강조하죠. 영화의 서사는 마치 기(氣)처럼 흘러, 한 우주에서의 행동이 다른 우주에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칩니다. 해결책은 혼돈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동화되어 균형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완전한 정적 속에서 침묵으로 소통하는 ‘돌멩이 유니버스’는 무위(無爲)와 만물의 상호 연결성을 중시하는 도교적 사유를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에블린의 마지막 싸움은 불교적 자비(慈悲)의 실천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힘을 상대를 해치는 데 쓰지 않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줌으로써 공감으로 그들을 무력화시킵니다. 그녀가 자신의 이마에 구글리 아이를 붙였을 때, 그것은 깨달음과 초월적 이해를 상징하는 제3의 눈(Tika)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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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혼돈 속 찰나의 순간들을 소중히


<에에올>은 B급 영화의 미학과 A급 철학적 탐구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자랑스러울 정도로 유치하면서도, 숨 막힐 정도로 진지하죠.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요소들을 하나의 통일된 비전 안에 완벽하게 녹여냈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은 단지 기술적 성취나 상업적 흥행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핵심에는 현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불안에 대한 깊은 공감과 통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든 것, 모든 곳, 한꺼번에’라는 압도적인 혼돈으로 정의되는 시대에 가장 심오하고 반항적인 행위는 바로 구체적이고, 현재적이며, ‘지금 여기’에 자신을 뿌리내리는 것임을 영화는 역설합니다.


에블린이 조부 투파키의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방식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그 허무의 진실, 즉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끌어안죠.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적인 자유를 발견합니다. 아무것도 정해진 의미를 갖지 않기에,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 의미는 거창한 이념이나 성공이 아니라, 남편의 다정함, 딸과의 화해, 그리고 함께하는 아주 작은 순간들에서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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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철학적 여정의 완벽한 요약입니다. 다시 국세청을 찾은 에블린은 조사관의 말에 집중하다가 잠시 다른 우주의 자신들을 떠올리며 정신이 흐트러집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현재로 돌아오죠. 이것이 바로 영화가 제시하는 최종적인 지혜이자, 힘들게 얻어낸 평화입니다.


혼돈은 사라지지 않아요. 복잡한 삶의 고통은 계속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연결을 위해 싸우고, 친절을 무기로 선택하며, 에블린과 조이가 마침내 동의했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우리에게 그 용기와 희망을 주는, 시대의 걸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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