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세상의 전부가 아닙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표면, 찰랑이는 파도는 바다라는 거대한 책의 표지에 불과합니다. 진짜 이야기는 빛이 닿지 않는 저 깊고 푸른 심연 속에 숨겨져 있지요. 우리는 그곳에 직접 가볼 수 없기에, 오히려 더 강력하게 그 세계를 상상합니다.
미지의 영역을 향한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두 갈래로 나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물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원초적인 ‘두려움’, 그리고 그곳에 어떤 신비로운 풍경과 생명이 숨겨져 있을지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19세기의 소설가 쥘 베른(Jules Verne)은 이 호기심의 위대함을 그의 소설 <해저 2만리>에서 멋지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려움과 호기심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여기서 생활 철학자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은 내 안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회피하는지, 어떤 기억을 묻어두었는지, 어떤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하는지 정직하게 알려주는 지표가 됩니다. 그리고 호기심은 그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잠수정의 동력’입니다. 이 두 감정의 팽팽한 긴장감을 탐험의 에너지로 삼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내면의 심해를 항해하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가지고 우리의 상상력이라는 잠수정을 타고, 그 깊은 바닷속으로 천천히 하강해 봅시다. 햇빛이 희미해지고 완벽한 어둠과 고요가 찾아오는 곳. 이곳은 놀랍게도 우리 마음의 풍경과 꼭 닮아 있습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건넵니다. 그에게 인간의 마음은 의식이라는 작은 섬과, 그 아래에 펼쳐진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심해의 괴물은 무엇일까요? 융은 그것이 바로 우리 각자의 ‘그림자(Shadow)’라고 말합니다. 그림자란, 단순히 ‘나의 어두운 면’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식적인 나’, 즉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과 어울리지 않아서 스스로가 외면하고 억압해 온 모든 것들의 총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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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