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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자존감’이라는 신화 너머의 ‘자기 자비’

3부. 혐오를 넘어서

by 조하나


우리는 앞선 장에서 혐오의 감옥을 탈출한 사람들의 용기 있는 선택을 목격했다. 그들은 모두 어느 순간, 타인을 향해 있던 맹렬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직시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질문이 남는다. 그들은 어떻게 그럴 힘을 얻었을까? 자기혐오라는 깊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현대 사회는 ‘자존감(Self-esteem)을 높여라’는 주문을 쉴 새 없이 외운다. 자존감은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하고 폭력적인 신(神)이다. 우리는 이 신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며, 타인보다 우월해야만 한다. 성과 사회는 이 자존감이라는 제단 위에 우리의 모든 것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 잠시 반짝이다 실패의 파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이 모래 위의 성, 이 위태로운 신에게 우리의 영혼을 맡겨도 괜찮은 것일까? 이 책은 단언한다. 우리를 구원할 것은 자존감이라는 신화가 아니라, 그 신화 너머에 있는 가장 오래되고 위대한 지혜, ‘자기 자비(Self-Compassion)’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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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비는 현대 심리학의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탐구해 온 고대의 지혜다. 불교 철학은 세상의 본질이 고통(苦, Dukkha)임을 직시하고, 그 고통받는 모든 존재—나 자신을 포함하여—를 향해 차별 없는 사랑과 연민(慈悲)을 보내라고 가르친다. ‘나’라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집착(我相)이 자기 비난의 근원임을 꿰뚫어 보고, 그 집착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또한 로마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평가나 실패에 연연하는 대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의 덕(arete)과 평정심(apatheia)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과업임을 역설했다. 자기 자비는 바로 이 위대한 철학들의 현대적 계승이다. 그것은 실패와 고통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혐오가 아닌 이해로, 비난이 아닌 친절로 마주하는 가장 성숙한 정신적 태도다.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자기 자비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급진적인 사회적 저항 행위다. ‘너의 가치는 너의 성공으로 증명된다’고 외치는 성과 사회의 한복판에서, ‘나는 나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내면의 독립 선언이다. 즉각적인 반응과 자극적인 조롱이 화폐가 된 디지털 광장에서, 잠시 멈추어 자신의 고통을 먼저 돌보는 행위는, 속도와 효율만을 숭배하는 기술 자본주의에 맞서는 ‘느림의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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