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혐오라는 거대한 건축물이 어떻게 설계되고, 우리 시대라는 토양 위에서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한번 ‘우리 편’이라는 따뜻한 갑옷을 입은 자가, 스스로 그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가? 자기혐오라는 거울은 산산조각 나 파편이 될 운명뿐인가?
여기, 그렇지 않다고 온몸으로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증오를 외쳤던 가해자들과, 그 증오의 칼날에 가장 깊이 베였던 피해자들.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던 그들이지만, 혐오의 거울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서 놀랍도록 비슷한 깨달음의 순간을 마주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혐오를 넘어서는 길이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내면을 향한 여정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미국의 흑인 재즈 뮤지션이었던 데릴 데이비스의 이야기는, 물리적 만남이 가진 기적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는 KKK단의 집회에 직접 찾아가 대화를 시도했다. 수십 년간 ‘흑인은 열등하다’는 신념을 가졌던 KKK단 리더는, 데이비스라는 한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 앞에서 자신의 믿음에 균열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미워했던 것은 눈앞의 흑인 개인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과 공포가 만들어낸 ‘흑인이라는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은 논쟁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KKK단원’이라는 추상적인 낙인 뒤에 숨어 있던, 한 명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인간’을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혐오는 종종 구체적인 ‘만남’과 ‘접촉’ 앞에서 힘을 잃는다. 추상적인 관념의 갑옷은, 한 인간의 체온 앞에서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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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