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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혐오의 거울을 깨고 나온 사람들

3부. 혐오를 넘어서

by 조하나


우리는 지금까지 혐오라는 거대한 건축물이 어떻게 설계되고, 우리 시대라는 토양 위에서 얼마나 견고하게 지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한번 ‘우리 편’이라는 따뜻한 갑옷을 입은 자가, 스스로 그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가? 자기혐오라는 거울은 산산조각 나 파편이 될 운명뿐인가?


여기, 그렇지 않다고 온몸으로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증오를 외쳤던 가해자들과, 그 증오의 칼날에 가장 깊이 베였던 피해자들.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던 그들이지만, 혐오의 거울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서 놀랍도록 비슷한 깨달음의 순간을 마주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혐오를 넘어서는 길이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내면을 향한 여정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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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흑인 재즈 뮤지션이었던 데릴 데이비스의 이야기는, 물리적 만남이 가진 기적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는 KKK단의 집회에 직접 찾아가 대화를 시도했다. 수십 년간 ‘흑인은 열등하다’는 신념을 가졌던 KKK단 리더는, 데이비스라는 한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 앞에서 자신의 믿음에 균열이 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미워했던 것은 눈앞의 흑인 개인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과 공포가 만들어낸 ‘흑인이라는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은 논쟁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KKK단원’이라는 추상적인 낙인 뒤에 숨어 있던, 한 명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인간’을 끄집어내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혐오는 종종 구체적인 ‘만남’과 ‘접촉’ 앞에서 힘을 잃는다. 추상적인 관념의 갑옷은, 한 인간의 체온 앞에서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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