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첫째 주, 우리는 스크린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상반된 서사를 동시에 목격하고 있습니다. 극장에서는 10년을 풍미한 거대 공포 프랜차이즈가 장엄한 마지막 의식을 치르고, 그 옆에서는 가장 작지만 가장 날카로운 목소리를 가진 독립영화들이 조용히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소란 너머, 베니스에서는 한 거장의 영화가 '한국 영화 위기론'을 무색하게 하는 압도적인 찬사를 받습니다.
프랜차이즈의 대미: <컨저링: 마지막 의식>이 택한 길
'컨저링' 유니버스의 핵심 서사를 마무리하는 <컨저링: 마지막 의식>은 흥미로운 전략적 전환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마케팅과 서사는 단순히 '전편보다 더 무서운 영화'를 약속하는 대신, 10년간 캐릭터와 함께한 관객들에게 감정적으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제공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는 하드코어 공포 팬을 넘어, 오랫동안 워렌 부부의 여정을 따라온 광범위한 관객층까지 포용하려는 시도입니다.
제작사는 주인공들의 감정적 유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영화를 하나의 장르물을 넘어, 마치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의 피날레와 같은 '시네마틱 이벤트'로 격상시키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피로감'이라는 가장 큰 적에 맞서, 서사의 힘으로 정면 돌파하려는 이 시도는 향후 거대 IP들이 생존하기 위한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가장 지금의 목소리: <3학년 2학기>와 <3670>의 시선
거대 자본의 공세 속에서도, 이번 주 한국 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두 편의 독립영화에서 발견됩니다.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는 <다음 소희>가 다루었던 청년 실습생의 산업 재해라는 민감한 주제를, 단순한 고발을 넘어 시스템 속 모든 인물에게 입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한 단계 진화시킵니다. 분노보다는 공감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보게 만드는 이 인간적인 시선은, 한국 사회 리얼리즘 영화의 서사 방식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박준호 감독의 <3670>은 '탈북민'과 '퀴어'라는 두 소수자 정체성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한국 퀴어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엽니다. 사회적 편견과의 투쟁에 집중했던 기존 서사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수용한 인물들이 겪는 외로움과 연결에 대한 갈망 같은 보편적인 경험을 다룹니다. 이는 투쟁 이후의 삶을 그리는 '포스트-스트러글(post-struggle)' 서사로, 한국 독립영화의 주제적 깊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스크린 너머의 진짜 주인공: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이번 주 영화계를 움직이는 가장 거대한 서사는 극장 안이 아닌, 베니스와 부산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에 비견되는 걸작'이라는 압도적인 찬사를 받으며 황금사자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쾌거는 '한국 영화 위기론'이 팽배한 국내 시장 상황에 대한 강력한 반박 서사를 제공합니다. 내수 시장의 침체와는 별개로, '한국 영화'라는 브랜드 가치와 창의적 역량은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막강하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BIFF가 30주년 개막작으로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작품의 세계적인 화제성을 활용하여 영화제의 전략적 진화를 전 세계에 알리려는 탁월한 결정입니다.
공존의 시대, 각자의 길
2025년 9월 첫째 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비평적으로 인정받은 국내 독립영화,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찬사받는 거장의 작품이 공존할 수 있을 만큼 시장이 견고하고 또 다변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텐트폴 <웬즈데이>가 화제성을 독점하는 가운데, 국내 플랫폼들은 콘텐츠 라이브러리 강화를 통해 방어적 해자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의 성공은 국제 영화제에서의 인정이 여전히 한국 영화 산업 전체의 문화적, 상업적 가치를 견인하는 강력한 엔진임을 증명했습니다. 결국 이번 주의 풍경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하고 또 성취하는 현대 콘텐츠 산업의 복합적인 생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