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나에겐, 늘, 다가갈 수 없는 태양이었다. 그럼에도 태양으로 돌진하는 이카루스처럼 나는 서울을 욕망하고 달려들었다. 서울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면, 나는 또다시 터덜터덜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인 집으로 돌아갔다.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살던 시절,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재개발과 상업화로 위성도시로 밀려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인천으로 대학을 다니면서도 수업만 끝나면 1호선에 뛰어들어 집으로 가는 역을 지나쳐 신도림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홍대역으로 향했다. 밤새 홍대 클럽에서 알바를 하고 다시 2호선 첫차에 몸을 싣고는 1호선을 갈아타 집으로 돌아갔다.
잡지사 에디터가 되어 강남으로 통근할 때도 퇴근만 하면 홍대에 들러 강남의 때를 씻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빽빽한 시루 속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콩나물 중 하나가 되어 하루에 왕복 4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수년간 지하철에서 서서 보냈다.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잠깐 지상으로 존재감을 내보이는 지하철이 당산철교를 지나며 아름다운 노을과 서울의 야경을 보여줬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그 모습에 매료되어 언젠가 내 삶도 언젠가 한강 변을 수놓은 불빛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낭만에 빠졌다. 서울은 요망했다.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구워삶으며 내 삶에서 서울을 필수불가결의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 동조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지속하기엔 나는 너무 예민하고 공감을 잘하면서도 시니컬했다. 나처럼 서울을 욕망하며 모여든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에는 사기와 정치와 비열함이 가득했다. 잘못된 일에 대해 분노하고 당하고만 사는 사람들의 편을 들자 서울은 나에게 더 계산적이고 냉철해지고 정치적이 되어야 한다고 훈계했다. 그것이 마치 대단한 깨우침이라도 되는 듯 적당히 타협하고 애교도 좀 부리고 턱을 내리고 눈을 깔라며 어기적거리는 걸음과 음흉하고 오만한 미소로 나에게 합류를 권했다.
일찌감치 서울에서 자취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건 내가 언제까지 서울을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겐 서울, 그리고 그보다 못하지 않은 온갖 욕망과 환락의 찌꺼기들이 고여있는 위성도시에서의 경험이 삶의 전부였다. 도시가 싫은 건지, 그 도시를 채운 사람들이 싫은 건지, 아니면 그 도시에 있는 나 자신이 싫은 건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도시의 규율에 따르며 서로를 감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그리고 사회가 공식적으로 서로의 삶을 훔쳐보라 공인한 SNS로 서로의 삶을 훔쳐보며 끝없이 반복되는 자기혐오와 자격지심, 피해의식과 싸우는 삶은 결국 겉으로 다른 이들에게 좋아 보이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단 한 번도 내 삶에서 무언가를 선택해 보지 못했다. 선택을 학습해 본 적이 없으니 삶에서 이따금 마주하는 선택은 늘 주저됐고, 실패했고, 움츠러들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더, 더, 더’ 끊임없이 나를 채근하며 종착역 없이 순환반복되는 지하철 2호선처럼 살았다. 자신의 내면을 더 채우지는 못할망정 스스로 갉아먹고 착취하는 생활이 지속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대학을 갔고, 대학을 졸업했으니 취업을 했고, 취업을 했으니 결혼을 해야 할 거고, 결혼을 하니 애를 낳고, 그러려면 대출을 받을 테니 앞으로 영원히 열심히 일해야겠지.
내 안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공허함을 감추기 위해 자존심만 강해졌다. 상대적으로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높은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 그 사이의 간극의 모순을 스스로 알아챌수록 자기혐오는 더 극단으로 치닫았다. 도시는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의 콤플렉스가 충돌할 때 더욱더 비대해지는 나르시시스트로 가득하다. 모두들 아닌 척하고는 있지만 나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래도 다들 티 안 내고 잘 해내고 있는 듯 보였다.
거대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서울에서의 모순되고도 외로운 방황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내가 두 발 벗고 찾아가 만난 예술가들이었다. 나처럼 정치적이고 교활하지 못했던 사람들, 하지만 예술로 자신만의 작은 방패를 삼는 사람들. 하지만 예술가가 될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작은 방패마저도 없다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몇 년 후, 내가 열렬히 추앙하던 브리티시 록 밴드의 아이콘, 노엘 갤러거의 단독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옮기는 건.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함께 있던 포토그래퍼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사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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