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욕망, 그리고 여성적 시선의 에로티시즘 <베이비걸>
10월 29일 개봉하는 <베이비걸>은 <블라인드> <바디스 바디스 바디스>로 주목받은 네덜란드 출신 감독 할리너 레인이 연출하고 ‘A24’가 제작한 에로틱 스릴러입니다.
영화는 유능한 CEO(니콜 키드먼)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인턴(해리스 디킨슨)과 위험한 관계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해리스 디킨슨은 <슬픔의 삼각형>에서 ‘모델’로 나왔던 배우죠. 이 작품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연기로 니콜 키드먼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베이비걸>은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주로 남성적 시선에 의해 정의되었던 ‘에로틱 스릴러’ 장르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 관습을 전복합니다.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할리너 레인 감독은 이 장르적 공간을 재전유하여, ‘여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금기의 환상과 취약성, 그리고 권력과 욕망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습니다.
베니스 심사위원장이 “대담하다”고 평한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이러한 주제 의식을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키드먼 스스로 “매우 노출된 기분이었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다”고 밝힌 소회는, 영화가 권력과 욕망의 모순 속에서 흔들리는 여성의 심리를 얼마나 깊이 파고드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포스트 미투 시대의 가장 시의적절한 텍스트입니다. 직장 내에서 상당한 권력과 나이 차이가 있는 인물 간의 관계를 다루면서도, 전형적인 젠더 역학을 뒤집어 여성을 권력자의 위치에 놓음으로써, 영화는 관객이 가진 권력, 주체성, 피해자성에 대한 선입견에 균열을 내고 착취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베니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이 영화의 결말이 참신하며 20~30년 전의 영화들과는 매우 다를 것”이라고 언급한 점은, 영화가 여주인공의 월권을 단순히 처벌하는 식의 손쉬운 도덕적 결론을 피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베이비걸>은 에로틱 스릴러의 외피를 빌려, 권력이 불균등할 때 ‘동의’의 본질은 무엇인지, 관습적 규범을 벗어난 여성의 욕망은 타당한지,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틀이 이러한 복잡성을 다룰 만큼 충분히 섬세한지에 대해 정교한 질문을 던집니다.
현실의 잿더미 속에서 마법을 찾다, <베일리와 버드>
10월 29일 개봉하는 <베일리와 버드>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의 최신작입니다.
<레드 로드>, <피쉬 탱크>, <아메리칸 허니>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그는 소외된 삶을 날것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는데요. 영화는 열두 살 소녀 ‘베일리’(니키야 애덤스)가 철없는 아빠 ‘버그’(배리 키오건)와 방황하는 오빠 사이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중 기이하고 자유로운 낯선 이 ‘버드’(프란츠 로고스키)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이 영화에는 아놀드의 감독적 인장이 선명합니다.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인물과의 친밀감과 현장감을 극대화하고, 비전문 배우나 신인 배우를 기용하여 꾸밈없는 진정성을 확보하며, 사회의 변두리에 선 인물들을 향한 깊은 공감의 시선을 유지하죠. 감독이 평생 탐구해 온 “어른이 되기엔 너무 이르고, 아이로 남기엔 세상이 벅찬” 성장기의 혼란과 고통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회적 리얼리즘의 대가로 알려진 아놀드가 이번 작품에서 ‘버드’라는 인물과 ‘비행’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환상적 요소를 도입한 것은 주목할 만한 스타일의 진화입니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기 위한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죠.
사회적 리얼리즘은 인물이 처한 외부의 물질적 고난을 묘사하는 데 뛰어나지만, 때로는 노골적인 설명 없이는 내면의 심리적 현실을 전달하는 데 한계에 부딪히곤 합니다. 여기서 ‘마법적’ 요소의 도입은 베일리의 내면세계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버드’라는 인물과 ‘비행’의 이미지는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자유에의 갈망,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소망 등 그녀의 심리적 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즉, ‘마법’은 그녀 내면의 진실이 외부로 발현된 것입니다. 결국 이는 리얼리즘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닌 ‘확장’입니다.
아놀드 감독은 순수한 사회적 리얼리즘만으로는 시적으로 포착하기 힘든 심리적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판타지의 언어를 빌려옵니다. 영화는 가장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의 상상력은 여전히 강력하고 초월적인 힘으로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웃음으로 대동단결! <퍼스트 라이드>
전작인 코미디 영화 <30일>을 성공시키며 대중적인 웃음 코드를 짚어낼 줄 아는 감독임을 입증한 남대중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끝을 보는 놈’ 강하늘, ‘해맑은 놈’ 김영광, 그리고 ‘잘생긴 놈’ 차은우의 조합은 검증된 코믹 연기력과 아이돌급 스타 파워를 결합해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관객층에 어필합니다.
<퍼스트 라이드>는 현재 한국 영화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흥행 공식, 즉 ‘스타 배우 중심의 하이 콘셉트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첫 해외여행’이라는 단순하고 매력적인 콘셉트와 대중적 호감도가 높은 스타 배우들의 조합은 영화의 흥행 리스크를 최소화합니다. 스타 파워는 개봉 초반의 높은 관심(높은 예매율)을 보장하고, 가볍고 공감대 높은 이야기는 복잡한 현실에 지친 관객들에게 부담 없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 모아야 하는 영화관 입장에서 <퍼스트 라이드>와 같은 영화는 어느 정도의 관객 동원력을 보장합니다.
11월 5일 공개, 디즈니+ <조각도시>
배우 지창욱과 도경수(엑소 디오)가 주연을 맡은 처절한 복수극입니다. 특히 도경수가 데뷔 후 처음으로 빌런 역할에 도전하며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핏빛이 짙다”는 표현처럼, 강렬한 스토리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11월 6일 공개, 티빙 <친애하는 X>
배우 김유정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악녀로 파격 변신하는 서스펜스 멜로드라마입니다. 국민 여동생 이미지의 배우가 선보일 가면을 쓴 팜므파탈 연기는 벌써부터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OTT 플랫폼들은 이처럼 어둡고 장르적 특성이 강한 K-드라마를 핵심적인 차별화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 드라마는 폭넓은 시청층을 고려해야 하기에 폭력성이나 선정성 등 소재 표현에 제약이 따르는 경우가 많죠. 반면, OTT 플랫폼은 이러한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조각도시>나 <친애하는 X>와 같은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의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수위 높은 웹툰 원작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도덕적으로 모호한 캐릭터를 통해 더 복잡하고 깊이 있는 서사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는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고,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오징어 게임>이나 <더 글로리>처럼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된 정주행 콘텐츠로 어필합니다. 결과적으로 지상파는 로맨스나 가족 드라마에 집중하고, OTT는 스릴러, 호러, 범죄물 등 장르물의 본거지가 되는 ‘콘텐츠 양분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박스오피스로 본 극장가
현재 한국 박스오피스 1위는 단연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영화가 북미에서도 개봉 첫 주 1위를 차지했으며, 전 세계 박스오피스 차트까지 석권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흥행이 아닌, 거대한 글로벌 문화 현상입니다.
영화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팬덤을 확보한 인기 만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는 개봉 전부터 강력한 코어 팬층을 관객으로 확보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영화의 성공 뒤에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습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전 세계에 동시 방영되면서, <체인소 맨>은 소수의 마니아를 위한 콘텐츠에서 주류 문화 현상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거대한 글로벌 팬덤이 극장판 개봉 소식에 폭발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영화는 강렬한 액션뿐만 아니라, 주인공 덴지와 레제의 비극적인 로맨스를 중심으로 관객의 감정선을 강하게 자극하며 깊은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체인소 맨>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더 이상 서브컬처가 아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류 엔터테인먼트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현재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바로 이 영화입니다. <8번 출구>는 바이럴 인디 비디오게임을 원작으로 한 저예산 공포 영화죠. 영화의 설정은 단순하지만 극도로 공포스럽습니다. 당신은 무한히 반복되는 지하철 통로에 갇혔고, 아주 미세한 ‘이상 현상’을 발견해야만 탈출할 수 있습니다.
<8번 출구>의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은 영화화될 수 있는 지식 재산권(IP)의 범위가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과거에는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인기 만화가 영화의 주요 원작 공급원이었습니다. 하지만 <8번 출구>의 성공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도시괴담이나 바이럴 인디 게임 같은 새로운 형태의 IP가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 게임의 인기는 유명 스트리머들의 플레이 영상과 ‘리미널 스페이스(어딘가 기묘하고 불안한 공간)’ 미학에 열광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커뮤니티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영화는 바로 이 기존의 팬덤을 그대로 흡수하며, 막대한 마케팅 비용 없이도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강력하고 독창적인 콘셉트가 때로는 거대한 자본이나 톱스타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으로 우리는 인기 인디 게임, 웹 기반 공포 이야기, 심지어 온라인 밈(meme)에서 영감을 얻은 더 많은 영화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