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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잊힌 미국 대통령 암살 실화

넷플릭스 정치역사물 <죽음은 섬광처럼>이 파헤친 감염 시대

by 조하나

역사에 잊힌 미국 대통령 암살 실화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4부작 미니시리즈 <죽음은 섬광처럼>(Death by Lightning).


이는 미국의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 4개월이 채 되지 않아 암살당한 제임스 A. 가필드 대통령이 남긴 말입니다. 대통령 당선 이후 암살 위협을 당하자 가필드 대통령은 “그것은 번개에 맞아 죽는 것(death by lightning)만큼이나 막을 수 없는 것”이라는 체념 섞인 통찰을 보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캔디스 밀러드의 저명한 논픽션 <공화국의 운명(Destiny of the Republic)>을 원작으로 한, 미국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도 비극적인,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잊힌 한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조명합니다.






<왕좌의 게임> 제작진에 <캡틴 판타스틱>으로 호평받은 맷 로스가 감독하고, 마이크 마코스키가 각본을 쓴 이 시리즈는 잊힌 역사를 박제된 시대극으로 되살리는 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블랙 코미디’라는 가장 현대적인 현미경을 통해 가필드 대통령이 두려워했던 그 ‘번개’가 과연 무작위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였는지, 아니면 한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병폐가 응축되어 만들어 낸 ‘필연적 기상 이변’이었는지를 집요하게 묻습니다.


1880년대 미국 ‘도금 시대’, 즉 남북전쟁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기였지만, 그 이면에는 극심한 물질주의와 정치적 부패가 공존했던 시대의 부조리를 통해 <죽음은 섬광처럼>은 2025년 현대 사회의 정치적 분열, 리더십의 위기, 그리고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라는 사회적 질병까지 신랄하게 풍자합니다.


그리고 가필드 대통령의 죽음이 ‘번개’와 같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음을 증명합니다. 부패한 정치 시스템이 암살자를 잉태했고, 오만한 지적 시스템이 그의 죽음을 완성한 것. 가필드가 말했던 ‘번개’는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전선이 합선된 필연적 결과였다고 말이죠.











잊힌 초상과 뒤틀린 욕망: 두 남자의 평행선


시리즈는 제임스 가필드와 찰스 기토라는, 한 명은 역사에서 잊혔고 다른 한 명은 제대로 알려진 적 없는 두 인물의 평행선 같은 이야기를 추적하며 그들의 운명적인 교차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우리가 몰랐던 대통령, 우리가 필요했던 지도자: 제임스 가필드


제임스 A. 가필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만약(What If)’의 주인공 중 하나입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를 원치 않았지만 ‘마지못해’ 지도자가 된 사람이었죠. 1880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후보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분열된 당을 향해 원칙을 고수하는 단 한 번의 연설만으로 예상 밖의 후보가 됩니다.


(좌) 실제 인물 가필드 대통령 (우) <죽음은 섬광처럼> 속 가필드 대통령




이처럼 강렬한 내적 신념을 지닌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맨 오브 스틸>의 ‘조드 장군’이나 <셰이프 오브 워터>의 냉혹한 ‘리처드 스트릭랜드’처럼 강렬한 악역으로 유명한 마이클 섀넌입니다. 이 ‘예상과는 반대되는 캐스팅’은 시리즈에서 신의 한 수로 꼽힙니다. 섀넌은 특유의 불안정성을 억누르고, 가필드라는 인물을 연민으로 가득하며 조용한 품위를 지닌 복합적인 인물로 재해석합니다. 그는 권력을 갈망하는 대신 오하이오 농장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지식인이자 ‘도금 시대’의 만연한 부패에 맞서 ‘반부패’와 ‘시민권 옹호’라는 진보적 입장을 가졌던 개혁가였습니다.


만약 그가 200일 남짓한 재임 기간을 넘어 임기를 완수했다면,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평등을 위한 그의 헌신이 남북전쟁 재건 시대 이후 미국의 궤적을 긍정적으로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역사적 아쉬움은 짙게 남습니다. 섀넌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가필드에 대해 배우는 것은 대통령이 실제로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방법”이며 “우리는 지금 그것을 잊어버린 것 같다”라는 말은 이 시리즈가 현대에 던지는 가장 묵직한 질문입니다.





‘한심한 인간’이라는 이름의 위협: 찰스 기토


가필드의 반대편 평행선에는 암살자 찰스 기토가 있습니다. <석세션>의 ‘톰’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은 매튜 맥퍼딘은 ‘역사상 가장 한심한 암살자’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배우처럼 보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의 연기에서 ‘톰’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은 당연하죠.


(좌) 찰리 가토 실제 인물 (우) <죽음은 섬광처럼> 속 찰리 가토




맥퍼딘만큼 ‘한심함(pathetic)’을 잘 표현하는 배우는 없습니다. 그가 연기하는 기토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힌 인물로 권력에 접근하려는 그의 비굴한 애원은 우스꽝스럽고 기이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기토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실패자’였습니다. 그는 실패한 변호사이자 신문 편집자였고, 심지어 자유연애를 표방한 기독교 공동체 ‘오네이다 코뮌’에서 여성들의 거부로 쫓겨난 이력이 있죠.


그의 심리는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 위에 과대망상과 편집증이라는 뒤틀린 성을 쌓아 올린 형태였습니다. 그는 가필드의 선거 운동을 위해 자신이 쓴 연설문이 가필드의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망상에 빠집니다. 그의 연설에 청중은 12명에 불과했죠. 하지만 그는 당대 부패의 산물인 ‘엽관제(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에 따라 공직자를 임명하는 인사제도)’에 따라 자신에게 파리 영사직 같은 고위 관직이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믿었습니다.






이 시리즈가 탁월한 블랙 코미디로 작동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이 ‘암살자의 인간화’, 특히 그의 ‘한심함’을 극대화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기토를 악마나 광신자가 아니라 <석세션>의 톰이나 현대의 사기꾼처럼 동정심과 경멸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비극적인 광대’처럼 봅니다. 우리는 그의 끝없는 실패담과 우스꽝스러운 말과 행동에 실소를 터뜨리게 되고, 그 웃음은 그가 마침내 총을 드는 순간에야 충격과 공포, 부조리로 전환됩니다.


이러한 극명한 대조는 두 인물의 운명적 충돌이 단순한 선악의 대결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오히려 이는,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맡을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그 자리를 원치 않았던 ‘마지못한 지도자’의 건강한 신념과 아무런 실체적 자격 없이 오직 인정받고 싶은 뒤틀린 욕망과 망상적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관직을 갈망했던 ‘병적인 추종자’의 파괴적인 욕망 사이의 충돌이었습니다.







가필드는 국가 개혁(반부패, 시민권)이라는 공적 목표를 지녔으나 대통령직 자체는 원치 않았던 ‘마지못한 지도자’였습니다. 반면 기토는 오직 관직 임명이라는 개인적 이득만을 좇는 ‘망상에 빠진 추종자’였죠. 빈곤을 딛고 자수성가한 가필드는 겸손함과 연민, 품위를 지닌 채 사적 이익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에 실패한 사기꾼이었던 기토는 자신이 권력을 빚졌다고 느끼며 한심함과 비굴함,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연기 톤에서도 명확히 대비됩니다. 섀넌의 가필드가 따뜻함과 차분함, 한 국가 지도자로서의 내적 고뇌를 표현한다면, 맥퍼딘의 기토는 불안정하고 강박적인 다크 코미디를 완성합니다.





이 두 인물의 대조는 시리즈 후반부, 가필드의 미망인 루크레시아(베티 길핀)가 암살로 감옥에 갇힌 기토를 찾아간 장면에서 극적으로 완성됩니다. 기토의 암살 동기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뒤틀린 욕망이었음을 간파한 그녀는 기토에게 “당신은 절대로 역사에 기억되지 못할 것”이라 말하죠. 이것은 기토에게 교수형보다 더한 형벌, 즉 ‘역사적 망각’을 선고하는 장면입니다.







시대의 거울: 1880년과 2025년의 기시감


부패와 배제, 혐오의 시대


시리즈의 무대인 1880년대, 미국의 ‘도금 시대’는 이름처럼 겉은 화려했으나 속은 부패로 썩어 있던 시대였습니다. 남북전쟁의 상처 위에서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적 팽창을 이뤘지만, 그 이면은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분열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잠시 열렸던 ‘재건 시대’는 1877년 막을 내렸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평등을 위한 희망은 ‘짐 크로우 법’의 등장과 함께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흑인들은 다시금 정치적 권리와 투표권을 박탈당했죠. 시리즈에서 가필드가 흑인 참정권을 옹호하고 그들의 완전한 시민권을 주장하는 모습은 이러한 시대적 퇴행에 맞선 것이었으나 결국 그의 죽음으로 좌절됩니다.





동시에 여성들은 여전히 투표장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피켓 시위는 당시 수전 B. 앤서니,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튼 등이 이끌던 여성참정권협회의 치열한 투쟁을 반영합니다. 당시 여성들은 재산권 등 일부 권리를 획득했지만, 완전한 참정권은 1919년에야 겨우 얻어낼 수 있었죠.


이 시대의 배타성은 인종 문제로도 확장되었습니다. 시리즈에서 스치는 “차이나 아웃(China Out)”이라는 구호는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죠. 당시 미국, 특히 서부 해안에서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임금을 하락시킨다는 경제적 불만과 인종적 편견이 결합되어 격렬한 ‘반중’ 정서가 만연했습니다. 이러한 혐오 여론은 결국 1882년, 가필드의 후임자인 체스터 A. 아서 대통령이 서명한 ‘중국인 배척법’이라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이민법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이처럼 ‘도금 시대’는 내부적으로 부패했을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혐오함으로써 유지되는 시스템이기도 했습니다.



‘엽관제’라는 부패한 신


그리고 그 부패의 중심에는 이 연극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엽관제’가 있습니다. ‘전리품은 승자의 것(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이라는 노골적인 문구에서 유래한 이 시스템은 대통령이 선거 승리의 대가로 자신을 지지한 이들에게 정부 관직을 나눠주는 정치적 관행이었습니다. ‘능력’이 아닌 ‘정치적 충성도’가 임명의 유일한 기준이었으며 이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심화시켰습니다.




가필드가 속한 공화당은 이 문제로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었죠. 엽관제를 옹호하며 기득권을 지키려 한 ‘스톨워트’ 파와 가필드처럼 공무원 제도 개혁을 주장한 ‘하프브리드’ 파의 갈등이 깊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자 찰스 기토는 바로 이러한 시스템이 낳은 괴물이자 가장 광신적인 추종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필드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으므로 시스템의 논리에 따라 관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가 백악관에서 거절당했을 때 그는 이를 이념적 배신이 아닌,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한 개인적 모욕으로 받아들였죠. 그의 암살은 거창한 이념이나 신념이 아닌, 실망한 구직자의 분노였습니다.



비극의 아이러니, 개혁의 패러독스


이 지점에서 이 시리즈가 담고 있는 핵심적인 정치학적 통찰, 즉 ‘시스템의 역설’이 드러납니다. 개혁가였던 가필드 대통령은 엽관제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바꾸는 데 실패합니다. 가필드 자신이 취임 4개월 만에 총을 맞았고, 200일 남짓한 재임 기간의 대부분은 개혁에 반대하는 부패 정치인들을 상대하는 데 써버렸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시민권과 평등을 옹호하려 했던 그의 의지가 실현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가 살아서 이루려 했던 것보다 더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즉, 그 시스템이 낳은 가장 기괴한 산물인 찰스 기토가 가필드를 암살하자 이 충격적인 사건이 전국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공무원 제도 개혁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로 이어진 거죠.



(좌) 실제 인물 체스터 아서 대통령 / (우) <죽음은 섬광처럼> 속 체스터 아서



비극의 정점은 그다음입니다. 엽관제의 화신이자 ‘스톨워트’ 파의 거두였던 부통령 체스터 A. 아서(닉 오퍼맨)가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됩니다. 모두가 엽관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 절망했지만, 아서는 돌연 개혁의 옹호자로 변신하여 1883년 ‘펜들턴 공무원법’에 서명합니다. 현 미국 행정부의 뼈대를 갖춘 아주 중요한 법이었습니다.


결국 진정한 변화는 단 한 명의 선한 지도자의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모순이 극에 달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스스로 폭발할 때(암살) 비로소 일어난다는, 냉소적이고도 현실적인 정치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150년 전의 미국 ‘도금 시대’는 2025년의 ‘신(新) 도금 시대’와 소름 끼치도록 닮아있습니다. 찰스 기토는 실력은 없지만 자신이 위대한 신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믿으며, 정치 지도자에게 맹목적 충성을 보이면 보상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고 망상하는 현대의 정치적 사기꾼들의 완벽한 원형입니다. 오로지 권력자에 대한 충성도로 권력을 거래하고, 또 그 권력에 기생하려는 우리 시대 광신도적 추종자들에게서 우리는 찰스 기토의 모습을 봅니다.








죽음의 부조리극


이 시리즈의 블랙 코미디는 암살자 찰스 기토의 ‘한심함’이나 부통령 체스터 아서의 ‘아이러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한 무대는 가필드가 총에 맞은 이후, 그가 죽기까지 고통스럽게 버틴 80일간(정확히는 79일)의 기록입니다.



총알이 아니라 의사가 그를 죽였다


역사적 진실은 충격적입니다. 제임스 가필드의 사인은 암살자의 총알이 아니었죠. 총알은 중요 장기를 비껴갔으며, 현대 의학이라면 일주일 안에 퇴원했을 상처였습니다. 그는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진짜 사인은 ‘의료 과실’로 인한 ‘패혈증’, 즉 감염이었습니다. 당시 주치의 윌러드 블리스를 포함한 19세기 미국 의사들은 이미 유럽에서 보편화되고 있던 조지프 리스터의 ‘세균 이론’과 ‘소독법’을 지적 오만으로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씻지 않은 손가락과 멸균하지 않은 탐침으로 총알을 찾겠다며 대통령의 상처를 매일 같이 반복해서 쑤셔댑니다. 그들은 심지어 수술복에 묻은 피와 고름 냄새를 베테랑의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기죠. 이 끔찍한 치료 과정에서 3인치에 불과했던 총상은 21인치가 넘는 거대한 감염 통로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의료 과실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이 시리즈의 핵심적인 정치적 은유가 됩니다. 가필드의 몸을 탐침한 의사들은 미국의 ‘도금 시대’ 엘리트들의 지적 오만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세균 이론’이라는 새로운 진실을 거부했듯 정치 엘리트들은 ‘공무원 개혁’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거부했습니다. 가필드의 몸을 죽인 것이 ‘세균’이라면, 그의 정치를 죽인 것은 ‘부패’였습니다.




그레이엄 벨의 좌절된 발명


이 죽음의 부조리극은 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개입하며 절정에 달합니다. 그는 대통령의 몸속에 박힌 총알을 찾기 위해 자신의 전화기 기술을 응용하여 세계 최초의 ‘금속 탐지기’를 발명합니다. 인류의 위대한 혁신이 대통령을 구할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죠.


그러나 이 위대한 시도는 두 가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실패합니다. 먼저, 주치의 블리스의 ‘오만’입니다. 블리스는 총알이 있는 곳을 자신이 정확히 안다고 확신하며, 벨이 대통령의 몸 다른 곳을 스캔하는 것을 막았죠. 부검 결과, 총알은 정반대에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가필드가 누워있던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금속 스프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벨의 금속 탐지기는 총알이 아니라 침대 스프링에 반응한 것이었고, 블리스는 이를 자신의 진단이 맞았다는 증거로 확신합니다.


벨의 위대한 발명이 기득권 엘리트의 오만과 무능, 어리석음이라는 최악의 조합 앞에 무너지는 이 순간은 바로 이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압축합니다. 인간의 진보는 거대한 악이 아니라,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결함들 때문에 좌절됩니다.









죽음은 번개가 아닌 감염처럼


감독 맷 로스와 배우들은 이 1880년대의 이야기가 2025년의 현재와 소름 끼치도록 유사하며, “지금 이 순간, 이보다 더 적절한 이야기는 상상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이 초현실적 감각은 시리즈 촬영 중 발생한 실제 정치적 사건들(도널드 트럼프 암살 시도, 1880년 전당대회 장면과 기묘하게 맞물린 조 바이든의 대선 후보 사퇴)과 공명하며 더욱 증폭됐죠. “인간의 행동 양식은 변하지 않는다”는 제작진의 말처럼, ‘도금 시대’는 150년 전에 끝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입니다.


<죽음은 섬광처럼>은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권력을 가장 적게 추구하는 자가 권력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고전적인 명제를 동시에 상기시킵니다. 가필드 대통령은 “한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이 실제로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잊힌 기준을 이 혼란스러운 2025년의 리더십 위기 앞에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최종적인 경고는 망상에 빠진 개인과 그 망상을 정당화하고 보상해 주는 부패한 시스템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파국에 있습니다. 찰스 기토(개인)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엽관제(시스템)은 그 망상을 부추기고 구체화하는 먹이를 제공했죠. 만약 엽관제라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기토의 망상은 개인적 불만으로 남았겠지만, 시스템은 그의 망상을 ‘정치적 배신’이라는 공적 서사로 격상시켰습니다.


시리즈를 끝까지 보고 나면, ‘죽음은 섬광처럼(Death by Lightning)’이라는 제목은 가필드의 예언이 맞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틀렸음을 보여주는 반어법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가필드는 예측 불가능한 재앙인 ‘번개’를 막을 수 없다며 운명에 체념했지만, 정작 그는 예방 가능했던 재앙인 ‘감염’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번개’는 빠르고 극적입니다. 그러나 ‘감염’은 느리고 고통스러우며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가죠. <죽음은 섬광처럼>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협이 ‘번개’처럼 한순간에 찾아오는 극적인 사건(암살 시도, 쿠데타)이 아니라 ‘감염’처럼 시스템 내부에서 천천히 퍼지는 부패와 오만, 무지, 그리고 광신임을 명쾌하게 증명합니다. 이 작품은 사실 ‘죽음은 감염처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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