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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때깔을 한 지옥, 달콤 살벌한 윤리학 수업

넷플릭스 시리즈 추천작 <굿 플레이스>

by 조하나


넷플릭스 시리즈 <굿 플레이스>는 시트콤 역사상 가장 화사하고 달콤한 미장센을 하고서 가장 지적이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걸작입니다. <오피스>, <파크 앤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낙관적 휴머니즘’의 세계를 구축해 온 마이클 슈어는 이 작품에서 '사후 세계'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빌려, 인류의 영원한 난제인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4 시즌에 걸친 방대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이야기는 생전에 온갖 비도덕적 행위를 일삼았던 주인공 엘레노어(크리스틴 벨)가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천국인 ‘굿 플레이스(천국)’에 떨어지며 시작됩니다. 정체가 탄로 나 ‘배드 플레이스(지옥)’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그녀는, 윤리학 교수 출신의 소울메이트 치디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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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의 가장 탁월한 점은 ‘철학의 시트콤화’입니다. 칸트의 의무론, 공리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트롤리 딜레마 같은 딱딱한 철학적 개념들이 이 드라마에서는 배꼽 잡는 코미디의 소재이자 생존을 위한 절박한 도구로 변모합니다.


이러한 독창성과 완성도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피바디상 수상은 물론 SF/판타지 장르 최고 권위인 휴고상을 4회 연속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이어지며, 이 작품이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완벽한 세계관을 갖춘 '사변 소설'임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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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주제 의식은 독보적인 미술과 의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완성됩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원색과 파스텔 톤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아름답지만, 그 완벽한 대칭과 인공적인 밝음은 어딘가 기이한 불안감을 조성합니다. ‘파스텔 톤의 감옥’이라 불릴 만한 이 이중적인 미장센은 “천국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시스템의 모순으로 가득 찬” 드라마의 반전을 암시하는 가장 훌륭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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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의상 디자인 또한 탁월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집착하는 타하니의 화려하고 과장된 드레스, 우유부단한 윤리학 교수 치디의 답답하리만큼 정직한 스웨터 조끼, 그리고 인간인 척 연기하는 악마 마이클의 엉뚱한 나비넥타이 등. 의상은 단순한 패션을 넘어 인물의 결핍과 욕망을 드러내는 제2의 피부로 기능합니다. 특히 AI 비서 '자넷'의 의상이 그녀가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이 시리즈의 또 다른 시각적 즐거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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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핵심은 ‘시스템의 모순과 관계의 구원’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점수 시스템의 허점을 뚫고 나오는 것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입니다. 이기적인 엘레노어, 우유부단한 치디, 허영심 많은 타하니, 그리고 철없는 제이슨. 결함투성이인 네 사람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부대끼며 아주 조금씩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 어떤 영웅 서사보다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굿 플레이스>는 묻습니다. 우리는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눈 시리게 아름다운 파스텔 톤의 화면 속에 숨겨진 이 날카롭고도 다정한 윤리학 수업은 냉소적인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함을 믿고 싶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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