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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로켓의 인질이 된 우리들

우리는 왜 ‘괴물’이 된 편의주의 앞에서 분노할 수 없는가

by 조하나


해외에서 생활할 때였다. 가끔 “한국에 살면 어떤 게 좋아?” 하고 묻는 유러피언 친구들이 있었다. 한국에 잠시 살았던 경험을 가진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한국 생활의 압도적인 ‘편리함’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묘한 애국심에 고무되어 이렇게 자랑했다. “맞아! 한국은 정말 다이내믹한 곳이지. 밤 11시에 뭔가를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눈 뜨기도 전에 현관 앞에 와 있어.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거든.”


나는 그것이 대한민국의 기동성과 에너지를 증명하는 훈장이라 믿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유럽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들은 감탄 대신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래? 그럼 그걸 배송하는 사람들은 언제 쉬어? 그런 시스템이 정말 가능하다고?”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화려한 시스템이 굴러가기 위해 그 안을 채우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해외에서의 삶은 초반엔 매우 불편했다. 온라인 주문은 일주일이 기본이었고, 주말에는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그 덕분에 나는 중고 물품을 사서 쓰고, 생필품이 떨어지면 시장에 가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이웃에게 빌리고 또 빌려주는 삶을 살았다. 역설적이게도 그 ‘불편함’ 속에 사람 냄새가 났고 연대가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한국이 자랑하는 ‘효율’과 ‘혁신’이라는 미명은, 사실 밤새도록 누군가의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어 유지되는 가혹한 기적이었음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는 더 이상 ‘빠른 배송’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로켓 배송’이 필요한 적도, 아쉬운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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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 기형적인 속도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수한 환경 덕분에 가능했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성냥갑처럼 쌓아 올린 아파트 단지가 숲을 이룬 나라. 트럭 한 대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만 오르내리면 수십 가구에 물건을 뿌릴 수 있는 이 ‘아파트 공화국’의 높은 밀도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물류 효율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효율의 대가는 참혹했다.


언론과 노동계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쿠팡과 관련된 업무를 하다 과로사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수십 명에 이른다. 심야 노동과 살인적인 배송 물량을 감당하다 쓰러진 이들, ‘클렌징’이라 불리는 사실상의 해고 위협 속에서 쉬지 않고 달린 이들의 부고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이 순직하고 물류센터가 전소되는 참사 앞에서도, 그리고 노동자들의 취업을 방해하기 위해 조직적인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 앞에서도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들은 ‘혁신 기업’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문제가 터지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미국 기업이라는 점을 이용해 한국의 규제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 사람을 숫자로 치환하고, 시스템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이 거대한 ‘로켓’은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누군가의 현관 앞에 잿빛 상자를 내려놓았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국민 세 명 중 한 명인 수천만 명의 가장 내밀한 정보가 유출된 이번 사태 앞에서도 한국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거리는 평온하고, 국회는 무기력하며, 언론은 점잖다. 나는 이 섬뜩한 침묵이 소비자의 무관심이나 비겁함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시민들을 구조적인 인질로 잡아버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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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 괴물의 탄생: 미국식 방패와 한국식 창

우리가 마주한 쿠팡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플랫폼 기업이 아니다. 겉모습은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입었으되, 속내는 구시대적 재벌의 탐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혼종 괴물’이다.


CEO는 한국계 미국인, 소위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막대한 수익은 한국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빨아들이지만, 책임의 순간이 오면 그는 델라웨어주 법인의 장막 뒤로 숨는다. 국회 소환장 앞에서는 “글로벌 경영의 바쁨”을 핑계 대고, 대신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임원들을 내세워 “미국 기준으론 별일 아니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돈은 한국에서, 책임은 미국에서’라는 이 철저한 규제 차익 전략 앞에서 대한민국 공권력은 조롱당했다.


이는 마치 패전 후 해체된 일본의 ‘자이바츠(재벌)’가 교묘한 상호출자의 고리로 엮인 ‘게이레츠’로 부활해 시장을 지배했던 역사를 연상케 한다. 쿠팡은 미국 기업이 누리는 법적 보호막과, 한국 재벌이 누려온 문어발식 시장 장악력이라는 두 세계의 ‘가장 나쁜 점’만을 취해 진화했다. 이것은 규제의 허점을 파고든 명백한 ‘제도적 약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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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의 비극: ‘슈퍼 앱’의 저주와 뒤틀린 ‘국민’ 타이틀


미국의 글로벌 기업 아마존이나 구글도 독점 기업이다. 하지만 한국의 독과점은 그 결이 다르다. 미국은 쇼핑, 택시, 메신저가 각각 전문화된 서비스로 분리되어 있지만, 한국은 기형적인 ‘문어발식 슈퍼 앱’ 구조를 띤다.


‘국민 메신저앱’으로 시작한 카카오톡이 은행과 택시를 삼키고, 쇼핑으로 시작한 쿠팡은 음식 배달과 방송(OTT)까지 장악한다. 이는 과거 “간장부터 반도체까지 다 한다”던 한국 재벌의 문어발 DNA가 IT 기술을 만나 ‘디지털 식민지’로 재현된 것이다. 앱 하나가 멈추면 전 국민의 금융, 교통, 물류가 마비되는 이 기형적 구조 속에서 소비자는 선택권을 잃었다.


특히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는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방패다. 유독 우리는 ‘국민 기업’, ‘국민 메신저’, ‘국민 배달앱’ 같은 수식어에 약하다. ‘남들이 다 쓰는 서비스를 쓰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집단적 불안감과, ‘우리가 키워준 토종 기업’이라는 ‘정(情)’에 기반한 심리적 동질감은 독점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기업들은 이 지점을 파고들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마치 ‘국익’인 양 포장한다.


정부가 이들의 폭주를 방치할 수 있었던 명분도 여기에 있다. 바로 기업들이 내세운 “우리를 규제하면 해외 거대 자본이 한국 시장을 잠식한다”는 ‘가짜 애국 마케팅’ 때문이다. 우리는 ‘디지털 주권’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토종(혹은 토종인 척하는) 괴물들이 우리 삶의 모든 혈관을 장악하도록 허락했다. 그 결과, 우리는 그들이 가격을 올리고 정보를 흘려도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는 철저한 인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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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의 요새: 법조, 언론, 그리고 여의도의 공범들

이 오만한 괴물을 단죄해야 할 시스템은 이미 ‘부패의 사슬’로 묶여 있다. 자본, 언론, 법조, 정치가 얽힌 ‘침묵의 카르텔’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법조의 타락

대한민국 법조계의 정점에는 소수의 ‘초대형 로펌’들이 있다. 그들은 전직 대법관, 검찰총장, 공정위원장 등 최고위직 관료를 영입해 강력한 ‘전관예우’ 팀을 꾸린다. 이들은 영향력을 행사해 위법의 경계에 있는 행위를 합법으로 포장하고,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위헌 소지”를 운운하며 법안을 무력화한다. 한국에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거대 로펌을 선임할 수 있는 자본에게만 관대하다.



언론의 침묵

언론은 이미 자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기업에 불리한 기사는 광고비와 맞바꿔 삭제되기도 한다. 더 치명적인 것은 ‘인적 카르텔’이다. 언론사 간부들은 퇴직 후 대기업의 대관·홍보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회전문 인사’를 통해 후배 기자들을 관리한다. 포털 사이트에 기업 찬양 기사가 도배되는 것은 이들의 합작품이다.



정치의 매수

국회는 기업의 로비장이 되었다. 기업들은 임원들의 명의를 빌린 ‘쪼개기 후원’으로 감시망을 피하고, 추적 불가능한 현금 봉투가 오가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의원들을 관리한다. 무엇보다 낙선한 국회의원들에게 대기업 ‘사외이사’ 자리는 거부할 수 없는 노후 보험이다. 미래의 고용주인 기업에게 칼을 겨눌 의원은 여의도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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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저항하지 못하는가: 시스템이 만든 무력감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에게 “왜 불매운동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잔인하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미 그들이 설계한 ‘편리함’이라는 덫에 갇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창기 ‘계획된 적자’를 통해 경쟁자들을 고사(枯死)시켰고,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후 우리를 가두는 ‘락인(Lock-in)’ 감옥을 완성했다.


당장 내일 아침의 배송이 끊길까 두려워하는 우리는, 멤버십 요금이 오르고 개인정보가 유출되어도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여기에는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재벌의 비리를 눈감아주던 산업화 시대의 낡은 집단 무의식이, 대상만 바꾸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저항할 수 있는 수단도 봉쇄되었다. 미국은 내부 고발자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주며 영웅 대우를 하지만, 한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는 법 조항으로 진실을 말한 자를 위협한다. 기업의 비리를 고발했던 이들이 ‘조직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현실을 목격한 직장인들은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연대 또한 정치적 양극화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심리에 가로막혀 길을 잃었다. 시스템이 개인을 철저히 고립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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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상자가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


이번 쿠팡의 대규모 정보 유출 사태는 단순한 해킹 사고가 아니다. 미국식 자본의 탐욕, 일본식 재벌 구조의 폐해, 그리고 한국 특유의 정경유착 카르텔이 결합하여 시민을 무력화시킨 총체적 비극이다.


개인에게 “애국심을 가져라”, “불매를 해라” 하며 도덕적 책임을 전가하는 무능하고 감정적인 프레임을 걷어치우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짜 책임은 독점을 방치하고, 로비에 눈감으며, 전관예우로 법치를 무너뜨린 부패한 시스템에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거대 자본의 로비에 취해 직무를 유기했던 국회의원들이, 사태가 터지자 면피용으로 부랴부랴 ‘졸속 입법’에 나서는 촌극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솜방망이’가 아닌 ‘철퇴’를 들어야 한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거대 플랫폼의 폭주를 막기 위한 법적 전쟁을 시작했다.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통해 위반 기업에게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의 4%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한국처럼 ‘관련 매출’이나 ‘순이익’을 기준으로 깎아주는 꼼수는 통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최근 시행된 ‘디지털 시장법(DMA)’은 거대 플랫폼을 ‘게이트키퍼’로 규정하고, 자사 상품 우대나 타 서비스 이용 방해를 원천적으로 금지했다. 이를 어길 시 과징금은 매출의 10%까지 치솟는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통해 기업이 불법 행위로 얻은 이익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큰 배상금을 물리게 함으로써 “법을 어기면 회사가 망한다”는 공포를 심어준다. 또한, 소송 과정에서 기업 내부의 은밀한 문서와 이메일을 강제로 공개하게 하는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 제도는 정보의 비대칭을 깨뜨려 소비자가 거대 로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심판과 선수’의 분리다. 플랫폼(심판)이 자사 브랜드(PB) 상품(선수)을 팔며 심판 노릇까지 하는 ‘겸업’을 구조적으로 막아야 한다. 아마존이 타사 판매 데이터를 훔쳐 카피 제품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 미 의회가 추진 중인 반독점 법안들이 그 예시다. 한국 국회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막는 본질적이고 강력한 입법에 나서야 한다. 이 약탈을 멈추게 할 힘은 기업의 선의가 아니라, 서슬 퍼런 법의 지배에서 나온다. 돈으로 흥하면 돈으로 망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현관 앞의 상자는 죄가 없다. 하지만 그 상자를 볼모로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이 거대한 카르텔은 유죄다. 편리함이라는 인질극에서 늘 피해자는 우리다. 우리는 ‘데이터’가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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