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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는 어디로 사라졌나

어른들의 인질극에 유린당한 ‘뉴진스’라는 꿈

by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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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에는 두 개의 상반된 ‘압수수색’이 기이하게 교차한다. 하나는 금융감독원 특사경이 사상 초유의 강도로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자택과 집무실을 덮친 ‘공권력의 집행’이었고, 다른 하나는 언론이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사생활과 사적 대화 내용을 만천하에 전시하며 그녀의 존엄을 침해한 ‘여론의 압수수색’이었다.


이 기이하고도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얼마나 비열한지를 보여준다. 저울의 한쪽에는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해 수천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방시혁)이, 반대쪽에는 한 여성 경영인의 사생활과 태도 검열(민희진)이 올려져 있다. 상식적인 사회라면 전자에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후자를 가십으로 소비하며 소모적인 논쟁에 골몰했다.


그러나 이 싸움의 본질을 꿰뚫는 ‘스모킹 건’은 의외로 서울이 아닌 미국 법원에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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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날아온 나비효과


2024년 여름 할리우드 영화〈우리가 끝이야(It Ends With Us)를 둘러싼 주연 배우와 감독 간 갈등이 이후 이들을 대리하던 홍보 라인 간의 법적 분쟁으로 확대됐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대형 홍보 대행사 존스웍스(Jonesworks LLC)는 전 직원 제니퍼 아벨(Jennifer Abel)과 영화 제작사 웨이퍼러 스튜디오(Wayfarer Studios) 측과 연관된 일부 PR 인물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존스웍스의 소장에 따르면, 분쟁의 핵심 상대는 웨이퍼러 스튜디오 측을 대리하거나 협력한 PR 네트워크다. 존스웍스는 제니퍼 아벨이 회사를 떠난 이후 웨이퍼러 측 이해관계자들과 연계돼 온라인상에서 존스웍스를 공격·비방하는 활동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태그 PR(Tag PR)은 웨이퍼러 측과 연결된 관련자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존스웍스는 수정 소장에서, 웨이퍼러 측과 연관된 홍보 인물로 태그 PR 설립자 멜리사 네이선(Melissa Nathan)을 언급하며, 이 인물의 활동 맥락 속에서 온라인 공격 사례들이 제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태그 PR은 이 소송에서 직접적인 제작사 당사자가 아니지만, 웨이퍼러 측 PR 네트워크와 연계된 주체로 언급되고 있다.


존스웍스가 법원에 제출한 수정 소장에는 이러한 온라인 공격 사례의 설명 과정에서 ‘민희진’이라는 이름과 특정 웹사이트(minheejin.net)가 하나의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존스웍스는 피고 측이 검색 엔진 노출을 활용해 부정적 콘텐츠의 확산을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공격 방식의 예시로 제시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소송 문서는 존스웍스 측의 주장과 사례 제시에 해당하는 자료로, 피고와 태그 PR의 정확한 관계, 태그 PR의 내부 문건이나 조직적 실행 여부, 웨이퍼러 스튜디오의 지휘·관여 여부가 법원 판단으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 개시) 절차를 통해 관련 자료가 단계적으로 제출되고 있으므로, 이 사건에서 태그 PR의 정확한 역할과 책임 범위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하이브는 국내 법정에서 민희진이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다”고 주장하며 별도의 법적 분쟁을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존스웍스 소송과 관련해 하이브 측에서는 “하이브 또는 하이브 아메리카와 무관한 사안이며, 소장에 담긴 내용은 일방 당사자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민희진 전 대표는 유튜브 방송에서 미국에서 소송을 할 것을 권유받기도 했으나 당장 급한 게 아니어서 일단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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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범에게 허락된 ‘관대한 추상성’


이처럼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은 국경을 넘나들며 시스템을 동원해 개인을 공격했다. 정작 방 의장 본인의 혐의 앞에서는 철저히 시스템 뒤로 숨으려 했으나,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며 그 견고하던 요새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2025년 12월 현재, 검찰과 금융당국이 밝혀낸 방 의장의 혐의는 단순한 배임이 아닌 ‘자본시장법 제178조(부정거래행위 금지) 위반’이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방 의장은 하이브 상장을 준비하던 중 초기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허위 정보를 흘려 투자 회수를 압박했다. 상장 무산의 공포를 느낀 초기 투자자들은 압박에 못 이겨 지분을 내놓았고, 이 물량은 고스란히 방 의장과 이면 계약을 맺은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특정 사모펀드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작동한 ‘이면 계약’의 실체는 가히 충격적이다. 방 의장은 해당 사모펀드들과 “상장 후 주식을 매각해 원금 대비 초과 수익이 발생할 경우, 그 차익의 30%를 방시혁 개인에게 현금으로 정산한다”는 비밀 약정을 맺었다.


실제로 2020년 하이브 상장 직후, 사모펀드들은 약속이나 한 듯 주식을 대량 매도하여 약 1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차익을 남기고 시장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오버행(대량 대기 매물) 이슈로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 폭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지만, 방 의장은 그 대가로 약 4,000억 원의 현금을 리워드로 정산받았다.


문제는 이 결정적인 주주 간 계약이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증권신고서 어디에도 기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투자자의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해관계자 거래를 고의로 은폐한 것은 명백한 ‘사기적 부정거래’다.


방 의장 측은 “4,000억 원에 대한 세금 2,000억 원을 납부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으나, 금융범죄합동수사단은 이를 “범죄 수익을 합법적인 배당소득으로 가장한 전형적인 자금 세탁”으로 규정했다.


이에 법원은 방시혁 의장에 대해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전격적인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고, 검찰은 추징 보전을 위해 그가 보유한 하이브 지분에 대한 자산 동결을 집행한 상태다. 이제 그는 피할 수 없이 법의 심판대 위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득권 언론은 이 명백한 대국민 금융 사기를 ‘성공 보수’라 포장하고, 그의 구속이 K-팝 산업에 미칠 파장을 부풀리며 마지막까지 그를 비호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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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라는 요새 속 투명 인간


민희진과 하이브의 법정 다툼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잔인한 지점은 권력의 ‘비가시성’과 ‘과잉 가시성’의 비대칭이다.


방시혁 의장은 한국 권력의 정점이자 최대 로펌인 ‘김앤장’ 뒤에, 미국에서는 ‘태그 PR’이라는 청부 업자 뒤에 철저히 몸을 숨겼다. 그는 법정에 출석하지도, 국감장에 서지도, 언론의 카메라 앞에 서지도 않는다. 그의 모든 의사는 김앤장의 세련된 법률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되며, 그의 공격은 알고리즘과 댓글 부대를 통해 ‘익명’으로 수행된다. 대중에게 방시혁은 분노할 대상이 아닌, 그저 거대하고 모호한 ‘시스템 그 자체’로 인식되어 책임론에서 증발해 버린다.


반면, 민희진이 서 있는 곳은 황량한 광장이다. 그녀 역시 한국의 유력 로펌인 ‘법무법인 세종’을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상식적인 법치 국가라면 법적 공방은 ‘김앤장 대 세종’의 대리전으로 치러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하이브와 언론은 의도적으로 ‘세종’이라는 법적 방패를 무시하고, 민희진이라는 ‘자연인’을 광장 한복판으로 끌어냈다. 언론은 세종이 제출한 준비서면의 법리보다, 민희진이 기자회견에서 입은 옷, 카카오톡 속의 사적인 말투, 격앙된 표정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방시혁이 수천억 원의 배임 혐의에도 ‘경영적 판단’이라는 막 뒤에서 보호받는 동안, 민희진은 방어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만으로 “기가 세다”, “성격이 이상하다”는 식의 원색적인 품평의 대상이 된다.


남성 오너는 변호사 뒤에 숨어 ‘존엄’을 유지하고, 여성 경영인은 변호사를 두고도 직접 마이크를 잡고 처절하게 싸워야만 자신의 목소리가 왜곡되지 않는 이 기울어진 운동장.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권력’과 ‘여성’을 다루는 이중적인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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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인형’으로 만드는 사회와 솔로몬의 재판


하이브와 김앤장, 그리고 방시혁 의장은 입을 모아 말한다. 뉴진스를 망친 것은 민희진의 ‘가스라이팅’ 때문이라고. 뉴진스 멤버들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눈물로 호소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부당함을 알린 것조차 “민희진이 뒤에서 시킨 일”이라고 여론을 호도한다.


하지만 우리는 방 의장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5년 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자와 시장을 기만했던 그 비정한 계산법은 이제 대상을 바꿔 소속 아티스트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에게는 초기 투자자도, 현재의 뉴진스도 주체적인 파트너가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통제하에 움직여야 하는 ‘재무제표상의 숫자’이자 ‘예쁜 인형’일 뿐이다. 투자자가 통제를 벗어나려 하자 사모펀드를 동원해 찍어 눌렀듯, 민희진과 뉴진스가 자신의 통제 밖에서 성공을 거두자 가차 없이 시스템을 가동해 짓밟는 것이다.


최근 뉴진스 멤버들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 항소를 포기하고 어도어 복귀를 선언했음에도, 사측이 보여준 기이한 침묵은 이 잔인한 시나리오의 정점이다. 돌아가겠다고 문을 두드리는 아티스트에게 회사는 어떠한 환영의 인사도, 향후 계획에 대한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침묵은 단순한 무대응이 아니다. 자신들의 통제하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철저히 투명 인간 취급하겠다는 심리적 고립 전술이자, ‘복귀’를 ‘화해’가 아닌 굴욕적인 ‘항복’으로 규정하려는 포식자의 오만함이다. 멤버들을 동등한 파트너가 아닌, 언제든 창고에 처박아 둘 수 있는 재고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대우다.


이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뿐 아니라 한국 사회가 아이돌을 바라보는 기형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돌은 주체적 인간이 아니라, 어른들의 각본대로 움직여야 하는 상품일 뿐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진심’ 하나로 세계를 감동시켰던 BTS의 소속사가, 이제는 그 ‘진심’을 외치는 어린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자본으로 짓밟는 괴물이 되어버린 역설이다.


진정으로 하이브가 뉴진스를 ‘아티스트’로서 아꼈다면, 뉴진스가 무대에서 사라진 지 1년이 넘는 이 시간을 설명할 수 없다. 하이브는 골든타임을 고의적으로 흘려보내며 그룹을 고사(枯死)시키고 있다. 오히려 내부에서는 뉴진스를 2인과 3인으로 쪼개어 재편하려 한다는 계획마저 흘러나온다.


여기서 ‘솔로몬의 재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왕이 "아이를 반으로 나누라"고 했을 때, 가짜 엄마는 동의했고 진짜 엄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포기했다. 뉴진스라는 생명력을 죽여서라도 소유권을 주장하는 하이브와, 자신의 명예가 짓밟히는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멤버들을 존중해 달라”며 그룹의 꿈과 생존을 최우선으로 외치는 민희진이 있다.


살아있는 아이를 반으로 가르는 것은 살인이다. 하이브는 거대 자본이라는 칼을 쥐고 뉴진스를 찢으려 하고, 민희진은 온몸으로 그 칼을 받아내고 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포기하려 했던 자와, 아이를 죽여서라도 가지려는 자. 누가 진짜 ‘부모’의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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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꺾지 마라

뉴진스 사태와 방시혁-민희진의 공방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이슈가 아니다. 이것은 ‘돈과 권력,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시스템을 쥔 남성은 한없이 투명해지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은 가혹하게 검열당하는 글로벌 자본 사회의 민낯’이다.


왜 4,000억 원의 금융 범죄 의혹과 여론 조작 의혹을 받는 남성은 보호받고, 그 부당함에 맞선 여성의 사생활과 말투, 태도만이 심판대에 오르는가?


수사 기관과 대중은 김앤장이라는 요새 뒤에 숨은 방시혁 의장을 법의 심판대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자본시장을 교란하고, 자본으로 한 인간의 인격을 말살하려 한 대가가 사생활의 흠결보다 얼마나 혹독한지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K-팝 팬들과 대중은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훔쳐보고 비난하는 즐거움을 위해, 거대 자본이 쳐놓은 ‘역바이럴’이라는 덫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 거대 자본의 구조적 범죄와 뉴진스의 상실을 보지 않고 ‘손가락’, 고발자의 태도와 사생활만 비난할 때, 우리는 뉴진스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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