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를 기다리던 소녀는 스스로 구원자가 되었다
2024년 8월, 파리의 태양은 뜨거웠으나 안세영의 눈물은 씁쓸했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터져 나온 그녀의 절규는 축제의 흥을 깬 파열음이 아니라, 곪기 직전의 환부를 겨냥한 메스였다. 당시 나는 금메달을 따자마자 터뜨린 안세영의 폭로를 보고 "피는 잔칫집에서 흘려라"라고 썼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고립무원의 코트 위에 선 청년이 단 한 명의 '진짜 어른'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제는 어른들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고.
2025년의 끝자락에 서서, 나는 1년 전의 내 문장이 일종의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른의 섣부른 시혜적 시선이었다. 내가 연민했던 그 '어린 선수'는 사실, 나보다 훨씬 단단하고 거대한 내면의 성채를 짓고 있었다.
지난 1년 4개월은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체육계 카르텔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로 채워졌다. "나 때도 다 겪은 일이다"라며 부조리를 관행이라 우기던 과거의 유령들은 시대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안세영의 방식을 '서툰 반항'이라 폄하했던 권력자들은 연임 실패와 비리 수사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고, 그 폐허 위에는 '선수 중심'을 기치로 내건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섰다.
변화의 파동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이어졌다. 안세영이 피물집과 맞바꾸며 지적했던 신발 문제는 해결되었고, 국가대표가 아니면 국제대회 출전조차 막았던 '현대판 노예 계약'과도 같은 독소 조항들은 폐기되었다. 심지어 전근대적 군대 문화를 방불케 했던 선수촌 내의 악습들마저 금지되었다. 안세영의 용기가 없었다면, 앞으로도 수십 년간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대물림되었을 고통들이다.
그러나 이 사태를 관통하는 가장 지독한 역설은, 이 모든 개혁이 기득권의 도덕적 각성이 아닌 오직 안세영의 '압도적인 실력'에 의해 강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시스템이 그녀를 흔들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코트 위에서 보란 듯이 증명했다. 2025년 시즌 11회 우승, 세계 랭킹 1위 독주, 사상 유례없는 상금 기록. 그녀는 언어가 아닌 라켓으로 웅변했다.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라고 묻는 대신, "당신들이 없어도 나는 완벽하다"는 것을 성적으로 입증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통쾌함 뒤에 오는 부끄러운 질문과 마주한다. 그렇다면 금메달이라는 면죄부가 없는 미생(未生)들은, 세계 1등이 아닌 평범한 선수들은 자신의 부당함에 대해 말할 자격조차 없다는 말인가? 만약 안세영이 파리에서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져 메달을 놓쳤다면, 세상은 그녀의 절규에 귀를 기울였을까?
아마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성적 부진을 핑계 대는 패배자의 투정"이라며 냉소했을 것이다. 그녀가 목에 건 금메달은 영광의 증표이기 이전에, 기득권의 견고한 귀를 억지로라도 열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마이크 사용권'이었던 셈이다.
압도적인 실력을 증명해야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요구할 자격이 주어지는 사회. 정의가 그 자체로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보증수표가 붙어야만 유효해지는 이 조건부 정의의 현실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능력주의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 아래 놓여 있음을 방증한다.
1년 전, 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가 경이롭다. 안세영은 '피해자 서사'를 거부하고 스스로 '영웅의 서사'를 썼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비겁한 룰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룰을 썼다. 덕분에 그녀의 뒤를 따르는 후배들은 더 이상 "금메달이 아니라 죄송합니다"라며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
세상은 요지경이고, 인간은 여전히 모순덩어리다. 내일이면 또 다른 부조리가 고개를 들 것이고, 또 다른 권력이 그 자리를 채울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서 '안세영 이전'과 '안세영 이후'의 지평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녀는 어른을 기다리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동화 속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 성벽을 부수고 나온 전사(戰士)였으며, 시스템의 비호는커녕 첩첩산중의 방해와 위협마저 홀로 뚫고 나가야 하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주인공 '윌라' 그 자체였다. 자신을 지켜줘야 할 어른이자 아버지인 '밥'이 무력감에 빠져 숨어 지내는 동안, 탐욕스러운 권력자 '락조'의 표적이 되어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도, 끝내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핸들을 잡고 추격자들을 따돌리던 그 강인한 눈빛 말이다.
오랜 시간 안세영이 기다렸던 구원자는 오지 않았고, 이제 그녀 스스로 그 구원자가 되었다. 묵묵히 라켓을 휘두르며 자신의 길을 가는 자가 결국 스스로를 구원하고, 마침내 세상을 바꾼다.
안세영이 쏘아 올린 그 작은 공은 견고한 세상의 한 귀퉁이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깃발을 꽂았다. 피는 잔칫집에서 흘렀으되, 그 피가 거름이 되어 마침내 새로운 시대의 꽃이 피었다.
상처는 깊었고, 그것을 증명해야만 했던 현실은 쓰라리지만, 그 끝은 더없이 통쾌하고 우아한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