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라는 이름의 약탈
12.3 내란의 상처를 딛고 헌정 질서를 회복해 온 2025년의 끝자락, '한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쿠팡에서 회원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다. 이는 한국 전체 인구인 5,100만 명의 약 65%에 해당하며, 사실상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의 정보가 침해당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유출된 정보에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는 물론, 집 주소와 같은 가장 민감한 데이터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태는 단순한 해킹 사고나 보안 실패가 아니다. 현재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고용노동부, 그리고 정보 주권을 되찾으려는 국정원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공권력이 이 하나의 기업을 겨냥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은 '미국 기업' 쿠팡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이윤 채굴을 위한 최적의 식민지'로 타자화했는지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또한 쿠팡의 대대적인 전관 로비로 인해, 지금은 탄핵으로 심판받은 구세력과 결탁하여 오랫동안 외면해 온 '혁신'이라는 가면 쓴 적폐가 마침내 폭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쿠팡은 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에 문 앞에 도착하는 '새벽배송'과 '로켓배송'을 세계가 놀라는 혁신이라 포장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토록 놀라운 혁신을 쿠팡은 왜 본토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도시 구조는 넓은 땅에 단독주택이 퍼져 있는 '수평적 스프롤' 형태다. 배송 트럭이 가구마다 정차하고 다시 이동해야 하는 구조에서 한국식 속도를 내려면 물류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아 파산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세계 유례없는 '아파트 공화국'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국의 환경은 쿠팡에게 기회였다. 배송 기사가 트럭을 세우고 엘리베이터만 타면 한 번에 수십 가구, 수백 개의 물건을 배송할 수 있는 이 '고밀도 수직 도시'는 쿠팡에게 배송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천혜의 자원이었다.
노동 환경의 차이 또한 결정적이다. 미국에는 전미트럭노조와 같은 강력한 노조가 있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존재해 살인적인 심야 노동을 강요하기 어렵다. 결국 쿠팡의 혁신은 AI 기술의 승리가 아니다. 한국의 기형적인 주거 밀집도와, 노동자를 밤새 갈아 넣어도 '산재'가 아닌 '개인 지병'으로 처리하고 넘어가는 느슨한 노동 규제를 파고든 '지리적 착취'에 불과하다.
이러한 물리적 환경 위에, 한국 특유의 문화적 자산인 '신뢰 자본'에 대한 무임승차가 더해졌다. 미국은 현관 앞 택배를 훔쳐 가는 '포치 파이러츠(Porch Pirates)'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마존이 이를 막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들여 '아마존 락커'를 설치하거나 집 안 배송 시스템을 개발하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문 앞에 택배를 며칠씩 둬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 쿠팡은 한국인들의 이 높은 도덕성과 시민의식을 악용했다. 별도의 보안 장치 없이 문 앞에 물건을 두고 가는 방식으로 배송 속도를 높이고 보안 비용은 '0원'으로 만들었다.
쿠팡은 한국 사회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이 시민의식을 공짜로 가져다 수익 모델로 삼았다. 우리는 그들을 믿고 공동현관 비밀번호까지 공유해 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3,370만 명의 개인정보를 지키지 못했다. 문을 열어준 주인인 국민의 가장 사적인 공간을 침해하고도 쿠팡은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신뢰의 배신이다.
이 착취 구조가 1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건, 한국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인 '엘리트 카르텔'이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쿠팡은 '김앤장' 등 한국 최고의 로펌과, 권력 기관의 고위 관료들을 고문으로 대거 영입했다. 이들은 쿠팡의 노동법 위반이나 독과점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막강한 인맥으로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했다.
반면 기업의 지배구조는 철저히 미국식을 따랐다. 김범석 의장은 미국 증시의 차등의결권 제도를 이용해 단 10%의 지분으로 76%의 의결권을 행사하며, 한국 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 '황제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익의 90% 이상은 한국 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와 미국 본사로 송금된다. 반면 노동자의 죽음, 골목상권 파괴,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회적 비용'과 폐기물은 한국 땅에 남겨진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위험은 사회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자본 식민지화다.
이 제국의 정점에 있는 창업자 김범석은 전형적인 '검은 머리 미국인'이다. 그는 한국 이름을 쓰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한국 땅에서 돈을 벌지만, 법적 신분은 엄연한 미국 시민권자다. 그는 이 '국적의 방패' 뒤에 숨어 한국 국회의 거듭된 증인 출석 요구를 수년째 묵살하고 있다. 한국의 법치가 자신에게 닿지 않는다는 오만함의 극치다.
이번 정보 유출 사태 대응은 더욱 가관이다. 사태가 터지자마자 쿠팡은 한국지사 CEO를 돌연 한국인에서 미국인으로 교체했다. 국회의 소환과 언론의 질문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언어의 장벽'을 세운 것이다.
최근 국회 청문회 장면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모욕이었다. 증인석에 앉은 미국인 신임 사장은 시종일관 "한국어를 모른다", "미국 본사의 지침이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한국의 입법부를 무력화시켰다.
압권은 한 국회의원이 그에게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 순간이었다. 그는 태연한 얼굴로 "개인정보라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과연 '프라이버시'의 본고장, 미국 기업다운 태도다. 국민 3,370만 명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유출시키고도 사과 한마디 없던 자들이, 고작 자신의 연락처는 '소중한 개인정보'라며 철통같이 지키겠다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난다. 이 기막힌 블랙코미디 앞에서 우리는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느낀다.
위기에 몰린 쿠팡은 이제 한국의 정치와 외교마저 인질로 잡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정보 유출 책임을 '중국인' 전 직원 탓으로 돌려 한국 내 반중 정서에 편승하려 했고, 더 악질적으로는 미국에서의 로비를 통해 정치 공작을 펼쳤다. 그들은 스티브 배넌 등이 활동하는 미국의 극우 채널을 통해 "한국의 좌파 정부가 미국 기업을 탄압한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대통령의 "기업도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발언조차 "파산 지시"로 왜곡하며, 한미 동맹이라는 가장 예민한 역린을 건드려 법적 책임을 피하려 한 것이다. 이는 기업 활동을 넘어선 명백한 정치 공작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이 '죽음의 시스템'이 이제 대만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쿠팡에게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사람을 어디까지 극한으로 몰아야 최대 이익이 나오는지, 사람이 죽어도 어떻게 은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완성되자, 그들은 대만으로 건너가 똑같은 비극을 복제하고 있다.
대만 현지에서는 벌써부터 '한국식 속도전'의 부작용이 감지되고 있다. 법으로 금지된 자가용 배송(흰색 번호판)을 강요한다는 내부 폭로가 터져 나오며 도로 위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한국 시장을 장악한 뒤 보여주었던 일방적인 정산 지연과 수수료 인상 갑질이 대만 공급업체들에게도 머지않아 닥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대만 노동단체들이 "한국식 착취 모델이 그대로 수입됐다"며 분노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한국 물류센터의 죽음마저 그대로 이식되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대만 쿠팡 창고에서는 직원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당국 조사 결과, 근무 시간 조작과 수당 미지급 등 한국에서 자행되던 불법적인 노무 관리가 고스란히 적발되었다. 결국 한국에서 완벽하게 검증된 '약탈의 매뉴얼'이 국경을 넘어 또 다른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정부가 검토 중인 '영업정지'는 단순한 행정 처분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 국가로서 거대 자본의 폭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존엄을 방어하려는 최소한의 결단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식 혁신'은 허상이다. 그 실체는 아시아의 고밀도 주거 환경과 노동력을 착취해 미국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약탈적 빨대일 뿐이다.
우리는 기술의 수혜자인가, 아니면 거대 자본이 설계한 알고리즘 속에서 소모되는 디지털 식민지의 부품인가.
대한민국은 이제 그 잘못된 설계도를 찢어버릴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