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 하프타임쇼, 배드머니의 거대한 문화적 시위

리듬으로 권력을 조롱하다

by 조하나

가장 미국적인 순간의 역설


2026년 2월 8일 일요일, 전 세계 1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진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단순한 음악 공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선언이자, 시대의 분기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무대의 주인공 배드 버니(Bad Bunny)가 13분간 쏟아낸 에너지는 누구보다 미국인 같았고, 트럼프보다 더 대통령다웠다. 하지만 하프타임 쇼 직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역대 최악", "역겹다", "미국적이지 않다"는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트럼프가 보기에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가 난무하고, 백인이 아닌 갈색 피부의 사람들이 점령한 그 무대는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는 '침략'이었다. 트럼프와 그의 슬로건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끊임없이 "이민자가 우리(백인)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를 자극해 권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배드버니는 그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삼았던 이민자의 문화를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축제'로 뒤바꿔버렸다.


역설적이게도 대다수 대중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 무대는 가장 '미국적인 순간'으로 다가왔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느껴진 것이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의 건국 신화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 쇼가 보여준 가장 통쾌한 한 방은 바로 '언어'였다.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에게 "미국에선 영어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주류 사회에 복종하라"는 압박이다. 그러나 배드버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광고가 붙는 이 13분 동안, 단 한순간도 타협하지 않고 스페인어로 노래했다. 이는 미국 내 수천만 히스패닉과 이민자들에게 "우리의 언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자존감을 심어줬다.


특히 그의 조국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헌사는 비장했다. 푸에르토리코는 엄연한 미국령이지만 대통령 투표권이 없고, 재난 때마다 본토로부터 철저히 홀대받아 왔으며, 심지어 지난 트럼프 유세 현장에서는 "쓰레기 섬"이라는 치욕적인 모욕을 듣기도 했다. 배드버니는 그 무시당하던 '쓰레기 섬'의 깃발과 문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보라, 우리는 이렇게 아름답고 강렬한 존재다"라고 온몸으로 외쳤다.


현재 미국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힘(MAGA)'과 '미래로 나아가려는 힘(다양성)'이 정면으로 충돌 중이다. 2026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트럼프의 '정치권력'이 쌓아 올린 혐오의 장벽을, 배드 버니의 '문화 권력'이 가장 뜨겁고 유연한 창의성으로 걷어차 버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배드버니는 총칼이나 혐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마이크와 리듬, 그리고 춤을 무기로 삼았다. 그것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었으나, 그 어떤 정치적 연설보다 강력한 타격감을 주었다. 트럼프가 정치권력을 쥐고 있을지 몰라도, 배드 버니의 이번 쇼는 문화 권력은 이미 새로운 세대와 다양성 쪽에 있음을 만천하에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2026 슈퍼볼 배드 버니의 하프타임 쇼는 정치의 딱딱하고 배타적인 문법이, 문화의 유연하고 포용적인 힘 앞에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준 통쾌한 드라마였다.





"God Bless America"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 심연에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미합중국 대통령 트럼프는 배드 버니의 쇼가 끝난 후 "아무도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다"라고 소셜미디어에 적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수억 명이 따라 부르는 그 가사를 자신만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립감의 표현이다. 이는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주류 집단(백인·영어 사용자)에 속한 권력자가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보이는 전형적인 방어 기제다. 그는 자신의 '문화적 문맹'을 인정하는 대신, 다름을 '틀림'으로, 낯섦을 '위협'으로 규정해 버렸다.


그의 방어 기제는 촌극에 가까웠다. 문화적 패배감을 감추기 위해 그는 뜬금없이 "주식 시장은 최고다"라며 돈 자랑을 늘어놓았다. 예술과 영혼, 정체성이 춤추는 무대 앞에서 숫자와 자본 뒤로 숨으려 하는 그의 모습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권력자의 옹졸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것은 그가 슈퍼볼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캘리포니아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은 민주당 성향이 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역이다. 그곳에 나타났다면 쏟아질 야유와 조롱이 두려웠던 트럼프는, 자신의 안전가옥인 마라라고의 안방에 숨어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길을 택했다. '방구석 여포'가 되어버린 늙은 권력자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트럼프는 '과거'와 '배제'의 언어로 자기 내면의 공포와 열등감을 감추려 하지만, 배드버니는 '미래'와 '통합'을 이야기하며 멋들어진 쇼를 여유 있게 펼쳤다. 배드버니는 '적진'이나 다름없는 NFL의 심장부를 점령했다. 미식축구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백인 남성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러시아의 문학가 바흐친은 중세의 축제, '카니발' 기간에는 기존의 위계질서가 전복되고 광대가 왕이 되는 해방의 공간이 열린다고 했다. 배드버니는 슈퍼볼을 거대한 '카니발'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왕(기득권)을 조롱하고, 주변부의 언어인 스페인어로 노래했다.


그가 쇼의 마지막에 외친 "God Bless America"는 그가 공연에서 유일하게 쓴 영어였지만, 이것은 타협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메이저리그 경기 등 공식 석상에서 'God Bless America'가 울려 퍼질 때, 기립조차 거부하며 미국의 제국주의적 태도와 푸에르토리코 홀대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전 세계 앞에서 이 문장을 뱉은 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반전'이었다. 그는 이 문장을 거부하는 대신, 그 의미를 빼앗아오는 길을 택했다.


그는 이 말을 뱉은 직후, 숨 쉴 틈도 없이 미 대륙의 모든 국가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기 시작했다.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파나마!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멕시코!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자메이카! 아이티! 앤틸리스! 유나이트 스테이츠! 캐나다!"


"그리고 나의 조국, 나의 고향, 푸에르토리코!"


"우리는 여기 있어요!"


이는 '아메리카'라는 단어가 미국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미에서 북미 끝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대륙의 이름임을 상기시키는 지리적, 문화적 선언이었다.


즉, 과거의 침묵이 '미국(USA)'에 대한 분노였다면, 오늘의 외침은 '아메리카(The Americas)' 전체를 향한 축복이었다. 트럼프가 쌓으려던 국경 장벽을 언어와 음악, 그리고 이름들을 통해 허물어버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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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버니 무대의 상징들: 이야기는 중요하다


이 쇼가 위대한 진짜 이유는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치밀한 디테일에 있다. 인도의 이론가 스피박은 "서발턴(하위 주체)은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제국주의와 가부장제 아래서 억압받는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배드버니는 이 무대를 통해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가 입은 흰색 저지의 등번호 '64'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여기에는 중의적인 저항의 코드가 겹겹이 쌓여 있다. 우선 저지에 적힌 이름 'Ocasio'의 의미를 들여다봐야 한다. 배드 버니의 본명은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Benito Antonio Martínez Ocasio)'다. 그래서 이번 슈퍼볼을 '베니토볼'이라고도 부른다. 스페인어권에서는 통상 아버지의 성(Martínez)을 앞세우고 이를 사회적 대표 성으로 사용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어머니의 성 '오카시오(Ocasio)'를 선택해 등에 새겼다. 이는 라틴 문화 깊숙이 박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자신의 뿌리가 여성이자 어머니에게 있음을 밝히는 페미니즘적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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