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층에게는 평등이 억압으로 느껴진다

이제는 "네 특권을 알라"

by 조하나




"특권에 익숙해지면 평등이 억압처럼 느껴진다."

당신이 누리는 그 안락함은 혼자 얻은 것이 아니다.

거대 악에는 무기력하면서 만만한 약자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묵직한 일침.

"네 특권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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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의 투명성: "왜 나만 손해 봐야 해?"라는 착각


출근길 붐비는 지하철,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보장 시위로 열차가 10분 지연되었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객차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날카로워진다. 누군가 혀를 차며 "출근 시간에 꼭 저래야 해?"라고 중얼거린다.


주말의 쾌적한 카페, 아기 띠를 한 엄마가 들어온다. 아이가 낯선 환경에 놀라 칭얼거리기 시작하자 노트북을 펴고 있던 젊은이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린다. 그의 표정에는 '내 돈 내고 왔는데, 왜 내가 저 소음을 견뎌야 하지?'라는 무언의 항의가 역력하다.


우리는 지금 '피해자'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시위 때문에 자신의 '이동권'을 침해당했다고 분노하고, 성인은 우는 아이 때문에 자신의 '조용할 권리'를 빼앗겼다고 억울해한다. 남성은 페미니즘이 자신의 파이를 빼앗아 간다고 느끼고, 내국인은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믿는다.


이 거대한 억울함의 기저에는 "특권에 익숙해지면 평등이 억압처럼 느껴진다"는 프랭클린 레너드의 뼈아픈 통찰이 숨어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이자 각본 발굴 플랫폼인 '블랙리스트'의 창립자인 그는, 백인 남성 중심의 영화계에 인종적·성별 다양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이를 '역차별'이라며 반발하는 기득권층을 향해 이 문장을 남겼다. 오랫동안 주류로서 독점해 온 혜택을 당연한 권리로 여겨왔기에 파이를 나누어 평등에 다가서는 사회적 교정 과정을 도리어 자신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촌철살인이었다.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모르듯, 주류에 속한 사람들에게 특권은 '공기'처럼 투명하다. 비장애인이 계단을 뛰어오르는 것, 성인이 카페에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 남성이 밤길을 걷으며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은 '능력'이 아니라 사회가 그들에게 허락한 '인프라'이자 '특권'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투명한 혜택을 '보편적 권리'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약자들의 몸부림을, 평등을 향한 교정이 아니라, 자신의 정당한 몫을 침해하는 '역차별'이자 '억압'으로 받아들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혐오를 '쿨함'이나 '지성'으로 포장하는 태도다. 그들은 맥락이 거세된 파편적인 '팩트'를 휘두르며 약자를 공격한다. "시위 때문에 지각한 건 팩트잖아?", "애가 시끄러운 건 팩트잖아?"라고 말하며, 감성에 휘둘리지 않는 이성적인 자신에게 도취된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것은 지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할 능력이 퇴화한 '공감의 지체'일뿐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가치관과 철학, 인문학적 깊이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지적 게으름을 '쿨함'으로 위장한 비겁함에 불과하다.


어릴 적 아빠의 좌우명은 "민폐 끼치고 살지 마"였다. 타인과 공동체를 존중하라는 다정한 훈계였을 그 말이 오늘날에는 약자의 숨통을 조이는 무기로 변질되었다. 진짜 '민폐'의 정의는 무엇일까? 투명한 특권을 무기 삼아 약자의 생존을 가로막는 오만함이야말로 진짜 민폐이지, 휠체어를 타고 길을 나서거나 식당에서 칭얼거리는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은 결코 민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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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쩌다 서로를 '불량품' 취급하게 되었나


도대체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삭막해졌을까? 나는 그 답을 우리가 통과해 온 시간 속에서 찾는다.


나는 X세대와 Z 세대의 경계에 있는 '제니얼' 세대다. 홍대 클럽의 낭만과,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했던 시절의 온기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다. 동시에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쳤을 때 가장 먼저 쓸려나간 '88만 원 세대'이자 '잉여 세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이기도 하다.


IMF 이전의 한국 사회에는 '오프라인 공동체'라는 개념이 분명했다. 버스에서 아이가 울면 옆자리의 아주머니가 사탕을 건네는 것은 당연한 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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