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숲의 겨울은 길고 혹독했다. 하지만 아무리 앙상한 가지뿐인 혹한 속에서도 땅속에서는 생명의 박동이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도시에 살 때 봄은 쇼윈도의 마네킹이 입은 얇은 옷이나 카페의 벚꽃 에디션 음료로 찾아왔다. 계절의 변화조차 소비로 확인해야 안심이 되던 시절이었다.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사람들은 앞다투어 몰려가 사진을 찍고 소셜 미디어에 전시했다. 나 역시 그 수많은 인파 속에서 타인의 어깨에 부딪히며 쫓기듯 꽃을 구경했다. 도시의 봄은 늘 소란스럽고 피곤하게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이곳 숲속 마을에서 맞이하는 봄은 전혀 다른 속도와 온도로 다가온다. 아직 겨울의 매서운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무렵, 숲에서 가장 먼저 봄을 선언하는 꽃은 자그마한 매화다. 숲속 우리 집 앞에는 몇 해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심어두신 매실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마을의 그 어떤 나무보다도 이 나무의 매화가 가장 빨리 기지개를 켠다. 할아버지가 남긴 생명의 유산이 가장 먼저 봄의 소식을 물어다 주는 셈이다. 잎사귀 하나 없이 깡마른 나뭇가지에서 어떻게 저런 고운 빛깔의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지 볼 때마다 경이롭다. 매화는 혹한의 끝자락을 온몸으로 견뎌내며 조용히 피어난다. 누구의 인정도, 박수갈채도 바라지 않고 그저 제 안에 품은 생명력을 밀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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