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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Feb 09. 2021

코로나 블루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한다.


“최대한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뒤를 보고 할 것을 권합니다.” ‘코로나 시대의 섹스 가이드’ 기사 타이틀이다. 피식 웃었다. 높은 신뢰와 권위로 존경받는 뉴스 채널이 이제 사람들이 어떻게 섹스를 해야 바이러스로부터 그나마 안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떠드는 게 꼭 봉준호 영화 같아서. 뉴스에서 섹스 얘길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사는 사회적 거리를 지켜야 목숨도 지킬 수 있는 팬데믹에도 암수의 본능을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섹스를 과학에 근거해 꽤 우아하게 썼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아니, 지구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


봉준호식 블랙 코미디는 팬데믹을 관통하는 유일한 내 삶의 낙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북미부터 남미까지 온 대륙을 집어삼킬 때 멕시코 유카탄 반도 내가 살던 집 앞엔 매일 같은 시간 멕시코를 대표하는 ‘코로나’ 맥주 배송 트럭이 지나갔다. 신호에라도 걸려 그 커다란 트럭에 또 커다랗게 새겨진 코로나 맥주병 그림이 멈춰 온 시야를 가리면, 발코니에 앉아 멕시코의 쏟아지는 햇빛에 눈살을 잔뜩 찌푸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코로나 맥주는 과연 이 팬데믹으로 끝내 웃게 될지 울게 될지 궁금하다. 아마 5년 후엔 사람들이 코로나 맥주병을 부딪치며 “기억나니, 코로나?” 할 테지.


미국과 일본, 유럽이 팬데믹에 쩔쩔매면서 한국, 대만, 뉴질랜드가 우쭐해졌다. 아무리 한국에 바이러스가 재확산되고 있다고 해도 의지의 한국인들은 상황을 미국이나 브라질, 유럽처럼 막 가거나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것이다. 이런, 모든 질병은 나쁜 거다. 다른 나라의 확진자, 사망자 숫자 그리고 치사율을 비교하며 우쭐할 일이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삼십 년 넘게 자라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느낀 건 미국과 유럽, 일본은 우리가 가랑이 찢어지도록 쫓아가 따라잡아야 할 나라들이었다. 늘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던 한국이 사람들이 죽고 병들어가는 상황에서 형님 나라들보다 잘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유럽 학교들이 휴교하면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는데 이를 뒷받침해 줄 기술이 변변치 않다고 한다. 그동안 아시아인들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교양 없는 애들’이라 손가락질해왔는데 그 스마트폰과 테크놀로지 때문에 바이러스에 그나마 더 낫게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유럽 사람들을 괴롭힐까.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미국, 일본, 유럽은 여전히 자신들의 건재를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 훈계질이다. ‘유럽은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산다’는 자조로 가득한 이탈리아 영화 <그레이트 뷰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만함과 동시에 고상한 이유와도 같다. 재밌다. 저물어가는 모습조차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 또한 유럽 문화에 대한 오래 쌓인 ‘판타지’ 같은 습관이다.


한국이 방역을 잘하는 이유에 대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건 바로 문화였다. 좋게 말하면 ‘수치의 문화’, 한마디로 ‘쪽팔림’이다. 멕시코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유난히 위생을 챙겼던 이유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를 감염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럼 엄마와 아빠와 가까운 이들 역시 감염 여부에 관계없이 코로나 검사받고 2주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웬 ‘집안 망신’인가. 자랑스러운 딸은 못 돼도 부끄러운 딸은 되지 않고 싶어서 코로나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았던 멕시코에서 4개월 동안 손이 닳도록 소독했다. 한국은 개인보다 가족, 집단을 중시하고, 코로나 걸렸다고 망신당하지 않으려 방역을 그리 잘하다 되레 같은 이유로 여러 차례 재확산을 겪고 있다. 교회에서 함께 모이는 집사님, 권사님, 목사님을 무시할 수 없어서, 클럽 가서 포차 가서 놀자는 친구를 무시할 수 없어서 지금은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팬데믹으로 사실 궁금하지도 않은 세상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신천지, 동성애자, 기독교인들이 주홍 글씨를 얻었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당당하게 혐오할 명분을 얻었다. 바이러스가 그런 게 아니라, 이 상황을 겪는 인간들이 그런 거다. 하나님이 시험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환자를 버리는 의사, 교인을 버리는 목사, 부하 직원을 버리는 상관마저 용서하는 게 하나님이라지만 왜 항상 종교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이런 상황을 악랄하게 계산해 이용하는 걸까. 마치 누가 누가 제일 잘 믿나 시합이라도 하려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건지, 목사를 잘 믿는다는 건지, 돈을 잘 믿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전광훈을 신 받들 듯 모시는 이들은 마음이 약하고 허하고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뿐이었고, 그걸 간파하고 원하는 걸 준 터라 교인들은 믿음이 크다. 사회에서 ‘아무개’도 아니었던 사람이 교회에서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목사님’이 되면 세상이 얼마나 달리 보일까. 


종교의 자유도 좋고, 집회의 자유도 좋다. 극우보수가 논리 안 맞는 국기 조합으로 일장기, 성조기를 흔들며 문재인 물러가라, 트럼프가 최고다, 김정일을 죽여라, 아무리 악을 써도, 이명박, 박근혜 때 그 흔했던 차벽 한 번 안 친 정부다. 거기다 코로나 검사를 공짜로 해주겠다고, 익명으로라도 해주겠다고 부탁하는데, ‘전광훈과 아이들’은 민주노총의 작년 집회 사진으로 그들 역시 방역 엉망으로 대형 집회 열었는데 왜 자신들만 정치적으로 핍박하냐며 조악한 뉴스를 만들어 카톡으로 퍼뜨린다. 그런데 이걸 사람들이 믿는다. 한국의 종교 단체를 이끄는 지도자들은 대부분 정치인이 못 돼 차선으로 종교인이 된 것처럼 군다. 예수를 핍박한 자들이 정치인이었다. 종교인들이 하나님을 더 노하게 만드는 바람에 종말이 더 빨리 오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이 검사들과 담판 대화를 나눌 때 “막 가자는 거지요?” 씩 웃던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노무현은 속으로 그랬겠지. 아오, 이거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노무현은 내가 가진 첫 투표권으로 뽑은 대통령인데 지금 생각해 봐도 그 정권에 유난히 집회가 많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겪고 나서 깨달았다. 좋은 정권일수록 사람들이 불평을 많이 늘어놓고 집회도 많이 한다고. 미국에선 오바마 정권 때 흑인 집회가 더 많이 열렸다. ‘말하면 적어도 들어라도 줄 거다’라는 사회의 암묵적 동의가 있다는 거다. 말해도 소용없다 생각하면 입을 닫는다. 의료 파업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 얼굴을 보면 같은 생각이 든다. 속으로 그러겠지. 아오, 이거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정치는 최선이 아닌 차악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빠진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는 현재 야당의 집권 아래 팬데믹을 겪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지금 나는, 이 정권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 


팬데믹으로 봉쇄령이 내려지고 내가 지냈던 멕시코에선 여자들이 시퍼렇게 멍든 눈 사진을 페이스북에 줄줄이 올렸다. 여성 폭력과 강간 범죄가 말도 못 하게 심각한 멕시코에서 팬데믹 봉쇄령으로 자신을 버릇처럼 패는 남편과 한 집에 있어야만 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지냈던 툴룸이란 도시에 여성 커뮤니티가 있었다. 그중 한 여성이 페이스북 그룹에 이렇게 글을 올렸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들이여. 혹시라도 학대를 당하고 있다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수제 비누를 주문한다고 하세요. 코로나 때문에 집까지 배달이 가능하니 집 주소를 불러줘요. 그럼 내가 당신이 위험에 빠졌다는 의미라 생각하고 경찰을 불러 함께 갈게요.” 자신의 전화번호도 함께.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다른 여성들 역시 하나씩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겼다. 내가 지금 아무리 다이빙도 못 하고 한국에서 시들하게 지낸다 해도 나는 복에 겹다.


멕시코에 가기 전부터 나는 <나르코스> 팬이었다. 태국 꼬따오에서 함께 다이빙 강사 생활을 오래 해온 멕시칸 친구에게 “나 케이브 다이빙하러 멕시코 툴룸 간다” 했을 때 그가 보였던 흐릿한 미소의 의미를 그땐 몰랐다. 칸쿤 공항에서 내가 지내는 툴룸까지 이어지는 콴타나오로 주는 우버가 없다. 나르코스가 택시로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관광지, 리조트 건설,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멕시칸들은 대부분 직장을 잃었고, 나르코스가 당장 먹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줬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나르코스가 정치인보다 인기가 더 많다. 그 대신 나르코스는 사람들을 마음껏 중독시킨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 유통시킨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붕괴로 나르코스는 더 힘을 얻었다. 내가 멕시코 툴룸에 있던 4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두 번 꼴은 나르코스 간의 패권 다툼으로 대낮 길거리에서 처형이 이뤄졌다. 멕시코는 또 이런 장면을 모자이크 없이 거침없이 올리는 문화라 그걸 보고 벌벌 떨며 한국행 비행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전 세계에서 케이브 다이빙으로 가장 유명한 멕시코 유카탄 반도. 내가 있는 동안 넓은 고속도로 한 곳이 푹 꺼지는 싱크홀이 생겼는데, 나라 스케일만큼이나 한국 싱크홀에 비하면 수십 배는 크고 깊다. 그만큼 이 일대 지반이 불안정하단 뜻인데 주 정부는 며칠 만에 그걸 그냥 다시 아스팔트로 메워 버렸다. 케이브 다이빙을 하다 보면 초대형 리조트를 지대 환경 조사 없이 무분별하게 짓는 바람에 수중 동굴 한가운데에 건물 기둥을 만나기도 한단 말을 다른 다이버에게서 들었다. 이젠 그 일대 어떤 리조트가, 어떤 수중 동굴이, 어떤 도로가 한순간에 폭삭 무너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어리석음으로 땜질한 그 싱크홀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멕시코에 있는 동안 유일한 외출은 식료품 쇼핑이었는데, 대형 쇼핑몰에 들어갈 때마다 그들이 펌핑해 주는 소독제로 손을 비볐다. 몇 달이 지나서야 저렴한 MADE IN MEXICO 소독제에서 발암 물질이 발견돼 미국, 캐나다에서 수입을 중지했다는 뉴스를 봤다. 코로나 바이러스 안 걸리려다가 암 걸릴 뻔했다. 한동안 실행됐던 멕시코 봉쇄령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온 부자 사업가들은 자신들의 성에 안전하게 숨어있었지만, 감염으로 죽나 굶어 죽나 마찬가지라며 한숨짓던 사람들은 봉쇄령이 완화되자마자 열명 스무 명씩 픽업트럭에 올라타고 호화 리조트 건설 현장으로 떠났다. 사회적 거리나 마스크 쓰기는 딴 세상 이야기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고민조차 사치인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멕시코는 지금까지도 국경을 한 번도 닫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멕시코 관광지는 세계 최고의 ‘바이러스 캐리어’ 미국인들로 성업 중이다. 내가 본 이들은 주로 미국 부호들의 자제층이 많았다. 십여 명이 넘는 십 대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파티도 하고 약도 한다. 물론 이들에겐 현금이 마스크 역할을 한다. 트럼프 집권 당시라 더 그랬다. 늘 멕시코쯤 자기들 마음대로 어찌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나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트럼프가 문제인 건지, 미국의 자본주의가 문제인 건지, 미국의 자유가 문제인 건지, 아니면 그저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인간성 결여 현상인 건지 헛갈렸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멕시코에 가는 건 안 막겠다, 대신 멕시코 들어올 때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가지고 와라, 정책을 바꾸니 요즘은 멕시코 칸쿤 일대 병원에서 허위 음성 확인서 발급이 성행하고 있다. 


태국에서 5년 간 지내며 미얀마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동남아에서 부국인 태국에선 3D 업종은 대부분 미얀마인들이 맡는다. 내가 살던 꼬따오 섬에서 미얀마 친구들은 대부분 다이빙 보트에서 다이빙 트립을 돕는 일을 했고, 24시간 보트 위에서 먹고 잤다. 한창 학교 다닐 나이에 바다 위 흔들리는 보트에서 살았다. 그렇게 번 돈을 미얀마 가족에 보냈다. 태국이 국경을 닫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대부분의 미얀마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꼬따오를 떠나 미얀마로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 그들이 맞이한 상황은 쿠데타 군부의 총이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몇몇 국가들이 팬데믹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권력을 탈취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 짓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이용한 인간들이 하는 짓이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다. 주식에, 금값에, 달러에, 집값에, 모든 건 요동친다. 불확실한 미래에 누가 언제라도 바이러스에 걸려 목숨을 잃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닐 거’라는 생각인가 보다. 우리나라 집값은 과거, 현재를 통틀어 지구상의 그 누구도 해결 못할 일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이 관여된 일을 욕망 없이 해결할 순 없다. 잡지사 에디터 시절, ‘House’와 ‘Home’의 개념이 일치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의 젊은이는 불행하다고, 앞으로도 불행할 거라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런 나의 생각은 유효하다.


오늘은 코로나 긴급 브리핑 방송을 보는데 옆에서 수화하는 분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얼마 전 미국에서 굉장히 심각한 내용의 연설을 옆에서 수화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엉터리 수화였다는 기사를 봤다. 심지어 그 사람은 수화를 할 줄도 몰랐다고. 딴 얘길 해보자면, 문득 한국 대부분의 방송에서 이젠 수화도 나오고, 베트남어, 태국어까지 재난 안내 메시지가 나오는 걸 보니 한국이란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차별과 혐오를 줄이고 고쳐나가는 과정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으로 인한 차별과 혐오가 더욱더 깊어지는 때에 양극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예전에 민주당 국회의원(당연히 송영길이다)이 어떤 사안에 대해 ‘그러면 절름발이 정권이 됐겠죠’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의당 정혜영 의원이 ‘절름발이라는 표현은 장애인 차별 혐오 발언’이라고 했다. 송영길은 짜증이 난다. 일평생 자신뿐 아니라 사회 모두가 써온 말인데, 이제 와서 잘못됐다고 고치란다. 그래, 그런 거다. 차별은 그런 거다. 불편하고 짜증 나고, 유난이란 생각이 들어도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열렬한 교육열이 한국인을 오히려 더 바보로 만들었다. ‘무지란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지식의 포화상태다. 꽉 차서, 썩어서 새로움을 못 받아들인다.’ 이제 그런 세상이 곧 온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AI가 가지고 있을 테니 인간은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없다. 대학의 존폐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팬데믹이 그걸 더욱 빠르게 현실화시키고 있다. 우리에게 학교가 필요할까?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걸 가르쳐야 할까? 사회가 저질러온 실수와 잘못을 바로잡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뭘까.


<데이비드 레터맨쇼>에서 레터맨이 오바마와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한다. 20년 전 우리 사회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20년 전 아버지는 이 문제를 위해서 뭘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서든 부끄럽지 않은 대답을 하고 싶다고, 그게 그저 우리가 작게나마 해야 할 일이라고. 1965년 셀마 거리 행진으로 인해 50년 후 오바마가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대화 중이었다.


별의별 우여곡절 속에서도 역사는 결국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항상 불평불만에 가득해 입이 잔뜩 나와 있는 나에게 아빠는 얘기한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한다”는 로맹 롤랑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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