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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n 13. 2024

“나는 한동훈이 좋아”

가족끼리도 하면 안 된다는 정치 이야기.

서울에서 사회생활로 10년을 보내고, 해외 외딴섬 바닷속에서 또 다른 10년을 보내는 동안, 엄마의 다섯 형제자매들과 그다지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도 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에 들어올 때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수다스럽고 귀여운 구석이 많은 이모들이 나를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보수적이고 엄했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장녀로 자란 우리 엄마는 이모들에게 무뚝뚝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큰 언니였지만, 그 언니의 딸인,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나와는 꽤 말이 잘 통한다고 했다. 혼자서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떠돌며 온전히 내 삶에 집중하는 모습이 일찌감치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 이모들에겐 대리만족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엄마는 오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당신이 나고 자란 깊은 산골짜기로 돌아와 집을 지었다. 갱년기를 지나며 몸과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모들은 이따금 시골에 내려와 도시의 각종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핫’하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줬고, 나는 그동안 해외에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이모들에게 들려줬다. 도시 생활의 각박함과 편리함부터 다 키워놓은 자식들과의 거리감,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 사회로부터 뒤처진다는 소외감, 끝이 없는 돈에 대한 욕망까지 이모들과의 수다 거리는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가족끼리도 절대 해선 안 된다는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니 정치 이야기를 핑계로 이모의 삶을 살피고 싶었다. 정치는 매일 우리 밥상에 오르는 쌀값부터 자동차 기름값, 공과금, 세금까지 우리 모든 생활과 직결되어 있으니까.


가족끼리라도 절대 하면 안 되는 얘기가 정치라고? 그렇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정치 이야기는 누구랑 하나? 뉴스에나 나오는 거라 치부되는 이야기들은 분명 가장 보통의 사람들로 구성된 우리 가족의 것이다.








얼마 전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둘째 이모와 막내 삼촌이 내려왔다. 어린 시절, 미대를 나와 부잣집에 시집간 이모는 겉으론 편안한 생활을 이어가는 듯 보였으나 모진 시집살이를 겪었다고 한다. 시부모 상을 치른 후 많은 빚을 떠안았고, 한때 잘 나가던 이모부는 자의적, 타의적으로 경제력을 잃었다. 이모는 요즘 무섭게 오른 금리로 폭탄이 된 아파트 대출 이자에 온 신경이 곤두서있다. 생활비를 상당 부분 보태던 이모의 외동딸과도 최근 갈등이 깊어졌다. 이모는 최근, 갱년기로 하루에도 몇 번씩 치솟았다 내려앉길 반복하는 몸의 열기와 싸우며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모와 외할머니와 함께 거실에 앉아 있다가 대부분 가족이 그러하듯 고요함을 깨뜨리기 위해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윤석열과 김건희로 도배된 뉴스를 보며 지난 총선, 귀찮다고 투표를 안 하겠다던 외할머니가 마을회관 할머니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단체로 봉고차 타고 2번 찍고 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노인으로 가득한 대한민국 산골 마을엔 여전히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아흔이 넘은 외할머니는 여전히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북한이 쳐들어올 거라 믿는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을 뽑겠다는 이모와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모는 그 이유를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재명이 싫어서’라고 들었다. 아파트 건축 관련 일을 했던 이모가 문재인 정부 때 현장에서 직접 본 현실 때문이었다. 정부의 각종 지원과 혜택을 편법적으로 이용해 제 잇속만 챙기고 제 배 불리기 바쁜 관리자들을 보며 이모는 박탈감에 빠졌다. 정책의 취지대로 정작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들까지 선명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허울만 좋은 문재인 정부 표 복지 정책의 이면에 진저리를 쳤다. 고귀하고 품격 있는 양반인 척 갖은 체면치레는 다 하며 ‘복지국가‧선진국가’를 표방하면서도 딱 부러지게 제대로 해낸 건 하나 없었던 지난 문재인 정부의 모순과 가식에 대한 강한 반감이었다.      


그때 느낀 이모의 감정은 분명, 한때 민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더 크게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이었다. 전 정부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그 모습이 나는, 이모가 열렬히 사랑했던, 하지만 나쁘게 헤어진 전 남자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런 마음으로 윤석열에 표를 던진 중도층이 많았다. 

     

“이모는 윤석열 뽑은 거 후회 안 해?”     


윤석열의 얼굴로 가득한 뉴스를 보며, 나는 이모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모는 화제를 돌려, 최근 다시 일을 시작한 자신이 얼마나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달픈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모가 일을 쉬었던 몇 년 사이 더 젊어지고 대하기 어려워진 세대와 여전히 비열하고 편법에 능하며 꼰대 같은 관리자들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이모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었다. 무엇보다 이모가 힘든 건 이런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모는 “일은 안 하고 사치만 부리는 요즘 애들” 때문에 최저 시급 인상에 반대하고, 각종 기독교 단체가 주장하는 논리에 따라 차별금지법도 반대한다며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요즘 애들, 요즘 애들” 하는 이모에게 나는, “‘이런 시대’와 ‘그런 세대’를 만든 건 바로 이모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라며, 언제나 그랬듯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에게 괜한 화풀이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젠 더 이상 인간의 노동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시대가 아니기에 복지국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낀다”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온갖 비하와 조롱을 받으며 차별당하는 내 친구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은 “더 달라”는 게 아닌, 이모와 나처럼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소망하는 것뿐이라 말했다.        



  



             

이모와 나의 대화를 듣다 “아, 뭐 그리 쓸데없는 얘기들을 하고 있샤~” 하는 외할머니에게 나는, 서로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민주당 권리당원이자 노무현 재단을 후원해 온 우리 엄마는 이모와 이런 대화를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입장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적’이 아니라 내 가족일 수도, 동네 이웃일 수도 있다. 뉴스와 유튜브, 정치인들이 악마화한 괴물이 가까운 사람의 일상에 내려앉은 현실이라는 게 보이면, 맹목적인 증오도 혐오도 줄어든다.      


“나는 한동훈이 좋아.”     


한창 열띤 토론을 벌이는데, 이모가 생뚱맞은 고백을 했다.    

  

그러고는 뉴스를 보다가 “그 여자 안면거상을 한 피부과 의사가 그걸로 건물을 올렸는데, 3천이면 한데, 3천” 하고 말하고는, 자신은 그만한 돈이 없으니 실 리프팅을 해야겠다며 이모는 자신의 처진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 올렸다. 그런 이모가 밉지 않았다. 그러면서 “야, 이재명은 25만 원 언제 준다니” 하는 이모가 인간적이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이모에게 한동훈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는 이모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모순을 수백 가지는 늘어놓을 수 있었지만, 이모에게 왜 한동훈을 좋아하냐고 따지지 않았다.      


한편, 민주당 지지자인 막내 삼촌의 아들은 다니던 공대를 그만두고 의대에 갔다. 하루빨리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막내 삼촌의 은퇴 예정 시기는 아들의 진로 변경으로 10년은 더 미뤄졌다. 조카는 현재 진행 중인 의료파업으로 의대생 집단 휴학에 동참했다. 그 친구가 말하는 의대 조직의 현실로는 개인적인 의사 결정이나 행동이 불가능한 듯 보였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끈끈하게 전해 내려지도록 만든 조직의 문화다. 그 아이는 벌써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적은 인풋에 커다란 아웃풋을 낼 수 있는지 탐색을 마쳤다. 조카는 이모가 그렇게 싫어 죽겠다는 ‘요즘 애들’이었다.       


이 작은 가족 안에 대한민국 별별 입장이 모두 모여있다. 이모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처럼 평행선을 달리지만, 그래도 괜찮다. 애초에 타협점에 이르려 시작한 대화가 아니었다. 나는 저만치 걸어가는 이모의 풍경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만치 걸어가며 내 앞에 펼쳐진 풍경에 대해 말해준다. 서로 살아가는 삶을 관심 갖고 들여다보니 외할머니, 엄마, 이모, 막내삼촌, 조카, 제각기 다른 생각과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사람들은 제각각 하나씩 떼어 보면 한없이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이렇게 한 가족만 들여다봐도 복잡하고 모순투성이인데, 우리네 인간사에서 이모가 한동훈을 좋아하는 건 존중할 만하다. 이모 역시 집으로 돌아가 나와의 대화를 떠올릴 때 한동훈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존중할 거라 믿는다. 그저 서로를 ‘인정’하는 것, 그 자체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 천지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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