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이용하거나 혐오에 이용당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
3천만 구독자를 보유하며 승승장구했던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지역 비하 발언과 여성 출연자들에 대한 성희롱 논란부터 대한민국 ‘개통령’ 강형욱의 갑질 논란, 서울대 N번방, 석연찮은 수사와 처벌로 흐지부지되었다가 BBC가 재조명한 버닝썬 게이트, 수능만점 의대생 교제폭력 살인,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20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까지, 이 모든 게 2024년 5월, 한 달 동안 벌어진 일이다.
막대한 권력을 가진 자가 선량하게 살기란 쉽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사회 곳곳에서 매일 같이 보고, 듣고, 경험한다. 권력자, 정치인, 재벌가, 연예인, 셀러브리티, 인플루언서, 교수, 강사 등 셀 수 없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시대, 우리는 권력을 너무 쉽게 내어준다. 누군가 잘 나가면 처음엔 시기하고 질투하다 그 선을 넘으면 선망하게 된다. 그렇게 생긴 권력을 우리는 존경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는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함부로 대한다. 많은 이들은 동조하거나 방관한다. 그래서 피식대학의 컨텐츠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고, 반려견 두 마리를 키우면서도 강형욱을 검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형욱 논란의 전개 과정이 흥미로웠다. 전 국민이 다 아는 ‘개통령’이라는 인지도와 대중성, 인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권력을 가진 대표와 일하며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경험을 했다는 제보자의 주장에 여론은 일제히 강형욱을 맹비난했다. 물론 강형욱이 침묵하는 일주일 동안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주일 후, 강형욱과 그의 아내가 1시간에 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CCTV 설치 의도가 어땠는지, 그걸 실제 직원 감시 용도로 활용했는지 등의 논란은 양쪽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니 법정에서 가리면 되고, 1시간 최저시급에서 세금을 제하고 입금했다는 급여는 분명 강형욱 회사 측의 감정적이고 위법적인 대응이었다. 폭언과 갑질에 대한 문제들도 제보자들이 녹취를 가지고 소송을 준비한다니, 한참 후에나 밝혀질 일이다.
그런데 생뚱맞은 지점에서 여론이 다시 들썩였다. 직원들이 메신저로 주고받은 사적 메시지를 열어본 문제에 대한 강형욱 아내의 해명에서였다. 직원들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열어본 것은 분명 불법인데, 들여다보면 불법인 걸 인지한 상태에서 6개월 치 내용을 모두 봐놓고는, 그 불법으로 본 메신저 내용이 불손했다면서 문제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왜곡시켰다. 자식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부모가 일기장을 훔쳐본 행위 자체에 대해선 사과도 없이 오히려 그 일기장 내용으로 자식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았다.
강형욱 아내가 ‘한남’ ‘소추’ 같은 단어를 늘어놓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경악했다.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이제 ‘보통의 K-직장인’에서 남성 혐오 단어를 남발하는 ‘여성’으로 바뀌었다. 강형욱 아내는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없이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할 단어들을 골라 가져와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꾼 것이다.
강형욱의 아내는 한국 사회의 어느 지점을 어떤 용어로 찌르면 발작 버튼이 눌리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혐오를 이용했다. 기다렸다는 듯 ‘페미X’이라는 혐오 단어가 등장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주된 공격 대상인 ‘MZ’와 ‘페미X’이 만났다. 댓글 창엔 이런 글들로 가득 찼다. “이래서 이삼십 대 여자들은 쓰면 안 돼.”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권리만 주장하는 나쁜 X.” “‘페미X’들은 싹 다 죽여야 해.” 2024년을 살고 있는 이삼십 대 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그랬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분노를 혐오에 녹여 아무렇지 않게 분출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가 아닌 슬프고 안타까운 감정에 휩쓸렸다.
혐오는 더 큰 혐오를 낳는다. 강형욱 측은 사회의 젠더 갈등에 예민한 혐오 단어를 얹어 우물에 독을 풀었고, 사람들은 그 독에 취해 서로 죽일 듯 싸운다. 제보자가 ‘페미X’이라 모든 것이 거짓이고 음해라는 논리였다. 영업이익 연 수백억에 달하는 회사를 이끈다는,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사람이 일주일 동안 머리 싸매고 시간을 끌며 고민 끝에 내놓은 해명이 이래야만 했을까. 이건 전형적으로 정치인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슈를 전환하는 물타기용으로 쓰는 방법이 아닌가.
대한민국 경‧검찰과 기득권 세력의 커넥션이 싹 덮여버린 버닝썬 게이트 사건은 최근 BBC의 보도로 재조명됐지만 김호성 음주운전 사건으로 금세 잠잠해졌다. 서울대 N번방 사건도 마찬가지다. 당시 버닝썬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기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페미X’이라 불리며 ‘아무 죄 없는 남자 인생 망치는 XX’이라는 협박, 혐오 메시지를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수년 째 경찰이 손을 놓고 있던 서울대 N번방 사건은 추적단 불꽃의 노력으로 겨우 범인을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버닝썬, N번방의 복제 현실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공공연히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얼마 후, 20년 전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이 유튜버에 의해 공개됐고,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다시 떠오른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그렇게 모든 이슈를 덮어버렸고, 나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던 20년 전,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 시절 성평등과 성폭력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비교해 굉장히 열악했다. ‘페미니즘’의 개념조차 소개되지 않은 사회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조차 없었고, 물론 ‘페미X’이라는 혐오 표현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더 나은 사회였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다세대주택 4층에 살던 우리 집 내방 창에선 우리 동네 작은 공원이 내다보였다. 새벽 한가운데 여자의 비명 소리에 잠이 깨 창을 내다보니 공원에서 한 남자가 끔찍하고 무차별적으로 여자를 때리고 있었다.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여자는 돌려보냈다. 자신을 때린 남자와 연인 관계라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라는 이유였다. 2024년과 2004년, 연간 교제폭력 및 성폭력 신고 건수를 비교하면 2004년이 현저히 적은 건 요즘 세상이 더 위험한 게 아니라 그때 여자들이 신고를 못 했기 때문이다. 그땐 ‘교제폭력’이라는 단어도, 개념도 물론 없었다.
폭력의 피해자는 경찰 신고는 꿈도 못 꿨다. 여자가 밤늦게 싸돌아 다녀서, 여자가 작정하고 남자를 꾀어,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그런 짓을 당해도 싸니까 등등의 ‘2차 가해(그땐 이런 단어 역시 없었다)’가 너무 당연해 여자인 나도 접대나 섹스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잠시 있었다. 남성 중심 사회의 가스라이팅으로 여자들끼리 서로 척을 지고 싸우곤 했다. 여성들이 겪는 폭력이나 불평등을 담론으로 끌어내기 위한 연대조차 쉽지 않았다.
내 또래 남자친구들은 군대 가기 전 공공연히 영등포 사창가에 떼 지어 몰려갔고, 그걸 또 나에게 보란 듯이 자랑했다. 사회에 나가선, 세상에서 가장 눈먼 돈이 접대비라며 룸살롱에 가서 거래처 양반들과 각각 여성 접대부를 옆에 끼고 노는 걸 당연한 것처럼 떠들었다. 또 나는 그걸 당연한 거라 받아들였다. 남자는 어릴 적부터 포르노를 보는 게 당연하고 욕망을 풀어야 하는 본능을 가졌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용인됐다. 하지만 같은 욕망을 가진 인간이어도 그것을 드러내는 여자들은 헤프고, 싸고, 천박하고,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주홍 글씨가 새겨졌다.
나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체질적으로 술을 먹지 못하기도 하지만, 어디서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어떤 실수도 빌미도 주지 말자는 어릴 때부터 자리한 강박이기도 했다. 여자가 술에 취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았던 사회 분위기도 나를 늘 긴장하게 만들었다. 여자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면 헤프게 군다고 하면서도, 사귀는 애인의 친구들과 인사하는 자리에라도 가면 남자들은 나에게 그렇게 술을 먹여댔다. 못 먹겠다 거절하면 ‘뭐 그리 깐깐하게 굴어’ 하는 말이 여과 없이 고깃집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시절이었다. 그게 나중에 회사 회식 자리로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20년 전엔 그랬다. 여성도 남성도, 모든 게 노골적이었다.
20년 전, 나는 어떤 여성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사회가 바라는 ‘현모양처’가 되어야 하는지, ‘피곤한 여자’ ‘깐깐한 여자’ ‘기 센 여자’가 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나를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지, ‘여자’는 단순히 성별을 구분 짓는 단어일 뿐이라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스스로 속이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여자’라는 타이틀을 오히려 영악하게 이용해야 하는지, 방황했다.
지난 20년 간 직장생활, 사회생활, 해외 생활로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보내며 이제 좀 내 나름의 가치관과 시각과 줏대가 조금은 생기긴 했지만, 나는 언제나 ‘페미X’이라는 혐오의 흉기를 피해 글을 쓸 때도, 말을 할 때도, 일상생활을 할 때도, 자기 검열을 한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 의식은 20년 전에 비해 훨씬 높아졌지만, 이제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남성 혐오를 의미하는 것으로 치부된다. 비판은 혐오가 아니다. 여전히 ‘무서워서’ ‘보복이 두려워서’ ‘그래도 사랑하니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다짜고짜 페미X이라 손가락질부터 받을까 봐’ ‘남성인 경찰과 검찰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등등의 이유로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죽이고 사는 사람들을 일상에서 마주한다. 그들은 내 친구이기도 하고, 선후배이기도 하고, 동네 이웃이기도 하며, 지하철 같은 칸에서 우연히 만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상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을 철천지 원수와 파괴 대상으로 여기며 작정하고 성폭력으로 몰아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사는 혐오자가 아니다.
2004년, 피해 여학생이 115명의 멀쩡한 남자애들을 유혹해 이 사달을 낸 거라고 비난하는 밀양 집단 성폭력 가해자 부모의 인터뷰가 버젓이 TV 뉴스를 타고 나왔다. “피해자가 행실을 똑바로 못해 그런 일을 당했다”라는 분위기는 당시 밀양뿐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그런 분위기였다. 그 끔찍한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고도 언론, 경찰, 검찰, 법정, 사회구성원 모두 그 일을 방조했다. 그때 내 또래의 젊은 여성들은 그걸 사회가 보내는 무언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네가 살면서 행여라도 성폭력을 당하게 된다면, 그건 무조건 네 잘못이야.’
이후에도 가해자 부모들은 피해 여학생이 전학 간 학교까지 찾아가 새 학교 친구들에게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합의서를 들이밀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가해 남성들은 이제 30대 중반 아버지가 되어 딸을 낳아 키우고 있다.
20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제대로 처벌받지 못한 가해자의 신상이 밝혀지자, 가해자들은 또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협박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만약 그 일을 당했다면,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365일, 24시간, 일분일초도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20년 만에 전국적으로 또다시 들춰졌다. ‘사회정의’를 외치며 가해자의 신상을 폭로하는 유튜버들을 향해 피해자가 "제발 멈춰달라" 부탁하자, 급기야 이런 이런 댓글이 등장했다.
“피해자야,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너 하나 때문에 4,999만 명의 알 권리를 포기해야 하니?”
자신이 마치 정의의 칼을 들었다 착각하고는 그 칼을 망나니처럼 휘두르는 괴물이 보였다. 몇몇 유튜버는 제보를 했다 취소한 피해자를 공개 비난하며 사회 정의를 위해 계속해서 가해자를 쫓겠다고 공공연하게 으름장을 놨다.
또다시, 여성의 목소리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20년 전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른 남성들과 그들을 응징해 사회정의를 이루겠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운운하는, 또 다른 남성들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20년 전, 우리 사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결과에 대한 청구서가 도착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다 교육받고 몸에 밴 남자들의 말과 행동들에 언제부턴가 여자들이 꼬치꼬치 토를 달고, “그건 성희롱이에요” “그건 성차별입니다”라고 하니 혼란과 갈등, 저항감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갈등과 변화의 과정이다. 20년 전, 성차별과 성폭력이 지금보다 노골적이었다고 해서 내 주변의 모든 남자들을 혐오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무지했고, 서로 살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용기와 행동으로 우리 사회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나아져 왔다. ‘페미니스트’란 여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운 남성 페미니스트도 많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남성 혐오를 근거로 사용하는 건 절대 페미니즘이 아니다.
공중화장실을 쓸 때면 여성들은 몰래카메라부터 체크하고, 이별을 통보한 남성이 폭력적인 스토커로 돌변하지 않길 기도하며, 그저 여성이란 이유로 밤길을 걸을 때 그날의 운과 내 옆을 지나는 남성의 선의에 기대지 않아도 될 권리,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외모로 평가받지 않을 권리,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에 비해 능력이 없고 감정적일 거란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권리를 바란다. 내가 바라는 여성의 권리는 남성이 더 가졌으니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든 여자로든 살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남자’로 살기도 녹록지 않다.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강요받는 남성다움과 책임감, 징병제에 대한 희생과 고통, 여성 인권을 말할 때 소외받는 역차별, 부당함도 크다. 하지만 나는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왔기에 경험의 한계가 분명 있다. 남성들 역시 그러하듯. '페미니스트'는 '남성 혐오'로 자동 치환되는 사회에서 내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쓰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불편하고 두렵다고 해서 피해버리면 양지에서의 토론이 아닌 남초/여초 커뮤니티의 비틀어진 혐오와 조롱만 난무하게 된다. 페미니즘 책을 읽는 여자 아이돌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열애설을 인정한 여자 아이돌에겐 헤어지라 협박하는 사회가 된 건 토론을 게을리한 부작용이자 오류다.
우리 사회에선 남초/여초 커뮤니티를 뒤덮은 혐오의 언어를 제외하곤 서로의 처지와 경험, 다른 생각, 대안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힘들다. '남초' 커뮤니티의 혐오 발언과 행동이 한국의 모든 남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듯,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 '여초' 커뮤니티의 혐오적인 생각과 발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인권이 높아진다고 해서 남성의 인권이 낮아지는 제로섬 게임을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서로의 적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를 너무 많이 오해하고 있다.
젠더 갈등으로 사회 기득권은 이득을 본다. 사회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을수록 대중의 이목을 다른 데 돌리기 쉽다. 문재인 정부는 성평등에 깨어 있는 척하며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겨 정권의 이익이 되는 면으로만 접근했다. 우리가 서로 편을 갈라 혐오하는 모습을 마치 '오징어게임' 하듯 커튼 뒤에서 샴페인을 홀짝이며 지켜보는 삼각형 꼭짓점에 있는 사람들. 언론, 정부, 정치인들은 일부러 젠더 갈등,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을 더 부추기고 조장한다. 그 사이 우리는 서로에게 '혐오자'로만 남았다.
우리는 정작 화를 내야 할 곳엔 화를 내지 못하면서, 길거리 세워진 불법 입간판이나 발로 차는 일을 반복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입간판이 ‘불법’인 건 맞지만 그 불법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공권력과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아무리 인식이 높은 시민이라 해도 서로 싸우고 상처받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품겠다. 한 인간으로서 나은 사람이 되겠다. 세상을 바꾸자고 외치면서도 스스로 변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겠다. 개개인의 의식은 한 집단, 국가, 지구의 상태로 연결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개인의 도덕성이나 커뮤니티의 자정능력에만 기댈 수 없기에 국가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사람들은 공권력을 믿지 못하고 사적제재에 나선다.
그렇다고 시스템만 탓할 순 없다. 그 시스템과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실행‧적용하는 건 바로 우리 자신,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과 지방자치장들과 대통령이니까. 그래서 다시 돌고 돌아, 나부터 더 나은 어른이 되겠다.
혐오를 이용하거나 혐오에 이용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혐오 대신 사랑으로 가득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시스템을 고치고,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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