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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pr 30. 2024

“그래, 난 미친 X이지만 적어도 나쁜 X은 아니야.”

개저씨의 세상을 향한 민희진의 반격


전설의 나훈아 기자회견 이후 최고의 기자회견이라 회자되고 있는 어도어 대표이자 ‘뉴진스 엄마’라 불리는 민희진이 이 시점 대한민국의 ‘국힙원탑’으로 꼽히고 있다.    


오랫동안 패션지 에디터로 일하며 미디어와 연예계의 민낯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들과 동화되고 싶지도 않고, 그들을 무시할 만큼의 깜냥은 안 되어 결국 그들만의 세상을 떠나기로 했던 나는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사적인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제 끝났다’ 싶으면 또다시 반복되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역사에 꼽힐 정도로 길고도 격정적인 기자회견이었다.  


“만약 민희진이 남자였다면, 여기까지 왔을까?”  


나는 기자회견을 보는 내내 오직 하나의 질문만 떠올렸다.     


민희진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내가 맘 졸인 이유는 몇 톤은 높아진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 범벅된 얼굴, 헝클어진 머리에서 대중이 찾을 ‘여자라 저리 감정적이다’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진실을 얘기한다고 해도 언제나 말하는 태도부터 문제 삼는, 특히 여자에게는 그 잣대가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대중에 먹잇감을 던져주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성보단 감성을 따르기로 한 모양이었다. 다윗과 골리앗만큼 차이나는 체급에서 상대는 수많은 언론사와 미디어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비즈니스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방시혁이 BTS로 충분한 빅히트를 문어발식 레이블 확장을 통해 하이브로 키운 건 그가 작은 기획사였을 때 언론과 방송사에 당한 게 많기 때문이다(업계에선 그의 프로듀싱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BTS 데뷔 초 인터뷰를 했던 당사자로서 할 말은 많지만 않겠다. BTS의 성공은 방시혁이 직접적인 프로듀싱에서 멀어지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만 해두자. 방시혁은 자신에게 크리에이티브한 재능이 없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다. 열등감이 큰 만큼 나르시시즘 또한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쓴 모든 글에서 말했듯 우리는 ‘을’로 당한 수모와 설움을 앞으로 누군가 또 당할 ‘을’의 피해나 재발을 막기 위한 연대 대신 어떻게든 힘을 키워(돈을 벌어) 권력을 쥐어 ‘갑’이 되는 해결 방법을 택한다. 이런 사람이 더 많아질수록 한국 사회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을’에서 ‘갑’이 된, 열등감도 높고 자아도 높은 방시혁의 하이브가 민희진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언론플레이는 더욱 그를 쪼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회사 덩치만 키웠지, 크리에이브하고 개성 강하고 자유분방한 사람들과는 결이 맞지 않는 고지식하고 정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렇다고 자신에게 없는 면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할 마음의 공간도 없어 자회사 레이블끼리 모방하는 지경까지 간 건 역설적으로 방시혁의 자기애가 얼마나 유치했는지 보여준다.


민희진이 예고한 기자회견 시간이 다가오자 하이브는 급기야 그녀가 ‘주술에 의존해 경영했다’는 보도자료를 모든 언론사에 뿌렸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의문이 든다. 민희진이 만약 남자였다면 하이브는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렸을 것인가? ‘여성이니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점술에 의존한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싶었던 의도가 명백했다. 대한민국 엔터 업계 대부분이 아티스트의 데뷔나 신보 발매 전 점을 본다. 대통령도 ‘王’ 자를 손바닥에 쓰도 나오고, 영부인도 점을 보고, 대기업 회장님도 사모님도 점을 본다. 입시를 앞둔 학부모도 점을 보고 결혼을 할 때도 아이 이름을 지을 때도 젊은이들은 점을 본다. 하지만 방시혁도 본 점을 여자인 민희진이 보면 대중이 어떻게 판단하리란 걸 하이브는 잘 알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하이브는 그걸 작정하고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이용한 거고.       


하이브의 ‘미친 X’ 공격에 민희진은 정면 승부를 택했다. 커리어 현장에서 여성을 공격하는 데 대표적으로 쓰이는 ‘감정적이다’라는, 단점으로 굳어진 고정관념을 “그래, XX. 나, 감정적이다, 어쩔래?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 이성적일 수 있겠냐? 그렇게 가식을 떨 여유가 있다면, 오히려 진실이 아닌 거야!”라며 남성의 전유물인 욕설까지 섞어 시원하게 전복시켜 버렸다. 조마조마하게 그녀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내 마음은 안심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할 말을 했고, 세상이 그녀에게 강요하는 방식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방시혁은 보도자료와 언론 플레이 뒤에 숨었지만, 그녀는 수백의 카메라 앞에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섰다. 카피를 한 사람은 숨지만, 카피를 당한 사람은 떳떳하다.

    

민희진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모두 사실이다. 자의식은 강하지만 센스나 일머리, 감이 없는 남자들은 대부분 그걸 골프나 술, 룸살롱 문화 등을 통해 동족연대로 능력 부족을 포장한다. 사장부터 임원진, 장급, 현장 매니저까지 모두가 남자인 엔터 업계는 여전히 이 방법이 잘 먹힌다. 이렇게 능력은 없는데 자아만 비대해진 남자가 권력을 쥐게 되면 자신보다 잘 난 남자에겐 알아서 기며 정치력을 발휘하지만, 잘 난 여자는 인정하지 못한다. ‘개저씨’가 ‘군대식 축구’하듯 일하지 말라고 엔터 업계에 일침을 날린 그녀는 그동안 ‘일 정말 잘한다’라는 인정과 존경보다 ‘여자가 너무 빡빡하게 일만 한다’는 공격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궁금하다. 그녀가 남자였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능력 있는데 카리스마까지 있다’라고 했을까?


민희진은 말한다. “그래, 나 미친 X이다. 하지만 너처럼 나쁜 X은 아니다”라고. 맥락 없이 카톡을 캡처해 뿌린 보도자료 뒤에 비겁하게 숨어 마녀 재판으로 몰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나와서 얼굴 보고 똑바로 하라고. ‘능력 있는 여자는 동시에 다소곳하고 부드러운 인격을 갖춰야 하고, 모든 경쟁과 갈등 상황에 너그럽고 우아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대한민국 사회에 민희진은 적어도 가운데 손가락은 한 번 날렸다. 그녀가 하이브를 상대로 법률적으로 이기든 지든, 모든 것을 떠나 나는, 그녀의 용기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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