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3부작’으로 한국의 정치 스릴러 장르의 전문가로 꼽히는 박경수 작가가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돌풍>입니다. 지난 6월 28일에 공개되어 현재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1위를 달리고 있네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
한국은 현실 정치가 드라마보다 더 흥미로워서일까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왼쪽과 오른쪽이 극명하게 갈려있는 한국에선 정치 드라마 장르가 깊이 있게 뿌리내리지 못했죠.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돌풍>은 대체역사물이지만 정치 관련 드라마가 공개될 때마다 현실의 정치 진영에 의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되는 한국 현실에서 여러 논란에서 한결 자유로운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통해 제작/유통한 건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
OTT 시리즈임을 의식해서인지 <돌풍>은 전개가 빠르고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데, 바로 이점 때문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습니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
주어와 목적어를 뒤에 두는 한국 정치의 민낯
박동호(설경구)와 정수진(김희애)의 치열한 수 싸움으로 가득한 대결 구도가 시리즈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들과 인물이 되짚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한국 정치 드라마가 여러 가지 논란을 피하기 위해 특정 정당의 성향이나 인물을 모호하게 설정하는 것과 달리 <돌풍>에서는 한국 현실 정치를 대표하는 두 정당을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죠.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의 서사나 대사가 많아 드라마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돌풍>은 현대 정치사를 상징하는 인물들의 이미지를 조금씩 오려다가 박동호와 정수진을 비롯한 여러 인물에 갖다 붙인 콜라주 같기도,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 청와대의 권력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정치인들의 점을 하나씩 모아 만든 모자이크 같기도 합니다.
<돌풍>은 산업화 시대와 반공보수, 독재, 운동권의 물락과 부패까지 진영을 가리지 않고 한국 정치사에 독설을 퍼붓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정치사의 여러 대사를 자주 오마쥬하죠. 박동호가 “나의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고 읊는 대사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소환합니다. 이 밖에도 유다에게 배신당하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나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하는 카이사르, 죽어서도 사마의를 놀라게 했다는 제갈량 등 동서고금의 여러 일화에 빗대어 한국 정치 현실을 보편적 인간사로 확장하려는 시도가 엿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돌풍>이 다른 정치 드라마와 비교해 흥미로웠던 이유는 비중 면에서 한국의 수구 보수 세력에 시선을 크게 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한국 정치에서 극단적으로 갈린 양 진영의 대립이 아닌 정권을 잡은 민주 세력이 기만과 모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을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386 세대의 구태를 작정하고 비판합니다. ‘까더라도 내가 깐다’라는 스탠스가 보인다고 할까요? 민주 진영에 대한 애정과 지지가 없었다면 갖지 못할 시선입니다. 뉴스도 아닌 정치드라마에서마저 ‘중립’을 외치며 양 진영을 저울처럼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고 믿는 한국의 드라마 문화에선 꽤 신선합니다.
<돌풍>을 보면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 한때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앞장섰다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정치의 명분을 내세웠지만 어느새 기득권에 물들어 권력에 취해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린 민주 진영,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지고 여의도 구천을 떠돌며 죽지도 않고 언제나 또 살아 돌아오는 수구 보수 진영, 현실 정치에서 우리가 이미 경험한 헌법재판소의 사법 농단, 한국의 정치 역사에 기생하며 권력과의 유착으로 생존해 온 검찰, 권력의 눈치만 보는 무능하고 무기력한 공수처,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허구의 명찰을 단 좀비 같은 사람들.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와 탐욕의 깊이가 지구의 핵에 닿을 정도인 한국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추앙받는, 정치권력 위에 군림하는 한국의 재벌가(라고 쓰고 삼성이라 읽습니다). 한국 정치 역사를 오래 거슬러 오르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정치인 노무현, 노회찬, 심상정, 나경원, 추미애 등 수많은 인물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서술어를 언제나 먼저 말하는 박동호의 영화 대사 같은 작위적 화법 역시 주목할만합니다. 주어와 목적어가 언제나 선명하지 않고, 또 언제나 문장의 마지막에 배치하는 한국 정치의 교활함과 비겁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요.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
돌풍이 지나간 자리, 무엇이 남았나
박동호는 한국 정치 역사를 바꾸고 싶어 하지만 그 ‘순진한 신념’만으로 이길 수 없는 어둠의 깊이에 한계를 느낍니다. 하지만 빛이 아닌, 어둠이 되기로 선택한 박동호가 결국 어떠한 불의의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설득에 <돌풍>의 급박한 전개와 반전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설득이 잘 되지 않으니 시청자의 입장에선 박동호라는 인물과 공감대를 갖기도 힘듭니다. 정수진 역시 모진 고문을 이겨낼 정도로 신념이 강했던 민주화 투사가 아무리 민주화 세력의 정신과 진영을 지키기 위함이라 해도 매번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역시 설득이 부족합니다. “결국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정치를 했다”라는 박동호의 대사만으로 모든 게 납득되진 않습니다.
“이미 낡아버린 과거가 현실을 지배하고, 미래의 씨앗은 보이지 않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오늘의 현실을 리셋하고 싶은 갈망에서 시작한 드라마”라고 박경수 작가는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돌풍>이 한국 정치사의 오랜 시간 작은 점들이 모여 만든 모자이크 작품을 통해 결과적으로 현실의 큰 그림을 통찰력 있게 보여주었는가, 하면 답은 “아니요”입니다.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전형성에서 벗어나 악과 악,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현실에서 ‘누가 더 나은 놈인가?’가 아닌 ‘누가 덜 나쁜 놈인가?’를 기준으로 이미 여러 차례 선거를 치른 시청자들입니다. 노무현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놓고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걸 지켜봐야만 했고, 결국 박근혜를 탄핵하고 극단적인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이지요. 현실 정치에서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시청자들을 숨이 차도록 급한 전개로 이끄는 <돌풍>은 한국 정치 현실의 묘사에서 멈춰버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노무현의 마지막을 떠올리는 민주 진영의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현실 정치에서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민주 진영에 ‘박동호의 희생’으로 <돌풍>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흐릿하기만 합니다. 민주 진영이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건 민주화 세력이 ‘민주화가 된 이후 대한민국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긴박하게 몰아치던 <돌풍>은 ‘박동호의 돌풍’이 결국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질문에 멋쩍은 헛기침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부패한 정치인의 기만과 범죄가 밝혀지는 방식과 내용은 결국 불법 녹음과 촬영뿐이고, 정치권의 추악한 악을 감추기 위해 꽁꽁 엮인 재벌과 정치, 공권력, 언론의 공고한 커넥션은 여전히 난공불락입니다. 12회를 그렇게 휘몰아쳐 달려온 끝에 남는 건 허무함뿐입니다.
작위적이고 전형적인 연출과 과도한 배경음악 사용으로 가뜩이나 내내 강 vs 강 구도인 12편의 에피소드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설경구와 김희애는 2024년 현대물에 맞지 않는 잔뜩 힘이 들어가고 과도한 감정으로 어필하는 올드한 연기를 펼칩니다. 드라마 편집과 톤 역시 세련되지 못합니다. 정치 스릴러 장르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선이든 악이든 상대를 제압하는 정치적 기술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기술자들이니까요. 하지만 <돌풍>에 등장하는 정치적 기술은 한국 정치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겐 일상이라 무릎을 탁 치는 창의력이나 기발함, 섬뜩함, 치밀함,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전개의 속도로 밀어붙이는 긴장감 역시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국 정치의 한계만큼이나 돌파구를 찾지 못한 나머지 '순교자의 희생' 판타지로 마무리한 <돌풍>이 한국판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한국 현대 정치사를 되짚어보는 방점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역사는 더디지만 옳은 방향으로 흐른다고 믿습니다.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은 여전히 아득하지만, 지옥 같은 정치판에서 순진하다 조롱당하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지켰던 이들의 희망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가 대안의 길을 이어가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