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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Jul 30. 2024

올림픽과 사도광산

왜 우리는 이것밖에 할 수 없는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사격, 펜싱, 양궁에서 금메달을 따며 검·총·활로 세계를 제패했다.     

 

어젯밤 남자 양궁 단체전은 8강전부터 한국과 일본, 중국과 대만의 대진이 눈길을 끌었다. “일본엔 가위바위보도 절대 지지 말라”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한일전을 치러왔다는 막내 김제덕은 활 한 발 한 발을 쏠 때마다 일본팀을 향해 보란 듯이 포효했다. 대만은 또 중국을 얼마나 이기고 싶었을까.     


           

일본팀에 '파이팅' 포효하는 김제덕. 이 경기로 김제덕은 심판에게 구두 경고를 받았다. ⓒ 연합뉴스




일제 강점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장기를 달고 출전할 수밖에 없었던 손기정은 게르만족의 유전학적 우월성에 도취된 히틀러의 올림픽에서 유색인종으로 당당하게 마라톤 금메달을 땄다. 그러고도 그는 시상대에 올라서서 고개를 떨구고 가슴을 가렸다. 이후,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조선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를 보도한 당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폐간·무기정간되며 핍박을 받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손기정




뱀 같은 천성을 가진 일본은 세계인의 이목이 올림픽에 쏠려있던 어제, 태극전사가 양궁에서 일본과 활을 쏘던 바로 어제,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신청이 지연됐던 가장 큰 이유였던 ‘조선인 강제 징용’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합의를 얻어냈다고 발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유네스코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지녀 인류가 함께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지정하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이른다. 


일본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신청은 애초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이 이뤄졌던 20세기를 제외하고 등재 기간을 에도 기간으로 한정해 이뤄졌지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전체 역사’를 설명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동의했고, 이후 윤석열 정부와도 합의하면서 등재가 결정됐다. 

     

일본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군함도를 등재할 때도 박근혜 정부에 비슷한 약속을 했다. ‘조선인이 일을 강요당했다’라는 표현을 인정하며 ‘조선인 강제 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라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믿고 합의했지만 이후, 일본은 ‘일을 강요당했다’라는 표현은 ‘강제 노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며 말을 바꿨다.      


대한민국의 윤석열 정부와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전시시설에서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사전 협의했다고 일본 언론보도가 대서특필하며 사도광산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 출구에 28일 '세계문화유산 결정'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이번에도 일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위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고난을 기리는 새로운 전시물이 설치되었다며 이를 외교적 성과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지난 28일부터 관람이 시작된 전시물에는 정작 ‘장제동원’과 ‘강제노동’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     





이제 전 세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름 아래 군함도와 사도광산을 뒤덮은 강제징용인들의 피를 깨끗이 지우고 얌전을 떨고 있는 일본의 거짓과 은폐에 속을 것이다.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길고 한 맺힌 기다림 끝에 사과 한 번 못 받아보고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역사는 바로 적히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그토록 원하고 기다리고 바라는 것. 모든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일본은 그동안 내색 않고 진행해 오던 역사 왜곡을 지금보다 더 뻔뻔하고 당당하게 할 것이다.   

   

프랑스는 100년 만에 또다시 올림픽을 치른다는데 한 세기 전인 1924년, 우리는 나라도 없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2년이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오랜 세월 나라 없이 떠돌다 피를 피로 되갚고 있는 이스라엘, 그리고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인종이 말살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보며, 일본과 대한민국의 국기가 따로 펄럭거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 일인지, 그리고 왜 우리는 세계 무대에서 만난 일본을 상대로 악을 쓰는 것밖에는 그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과 대가를 제대로 요구할 수 없는 것인지, 안타깝고 분노하며 개탄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손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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