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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기죽지 마! 다음엔 돼지 말고 소 먹어!

공수처와 시민이 함께 한 성장 드라마.

by 조하나


‘대한민국 역사상 45년 만의 계엄’, 12.3 내란은 나에겐 평범한 일상의 하루하루에 조금씩 스며든 일상의 폭력, ‘학폭’으로 느껴진다. 따땃한 전기장판에 이불을 깔고 달큼한 귤을 하나씩 까먹으며 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작하던 추운 겨울밤, 갑자기 평화로운 교실 안에 들어와 모든 걸 때려 부수고 아이들을 하나씩 돌아가며 폭행하듯 우두머리 윤석열은 예고도, 허락도 없이 나의 일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윤석열은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여전한 자신의 권력을 빌어 TV 전파를 이용해 얼굴을 디밀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며 히죽거렸다. 마치 학폭을 당하면서도 매일 학교에 가서 가해자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윤석열은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힘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쓰는 건 학폭 가해자, 조직폭력배, 강간범, 내란범, 폭도 등과 다를 게 없다.

“유혈사태도 없었는데 무슨 내란이냐?”

우두머리가 말했다. 때리긴 했지만 피 터져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폭력이 아니라 우긴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가졌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라이브 방송을 켜고 시민들에게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하자 우리 모두의 멈춰버린 일상을 재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갔다.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간 190인의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의 기습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했고, 그렇게 국회의원들과 시민들이 빨리 모일 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윤석열은 국회 해제 의결 후에도 몇 시간을 버티며 대안을 도모하다 그마저 여의치 않게 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 일상의 가치를 몰랐다.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얕잡아봤다. 단 한 번도 피해자였던 적이 없는 윤석열은 우리들이 그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는지 평생 모른 채 살아왔고, 앞으로도 영영 모를 것이다.

그는 12.3 내란이 실패할 거란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로지 성공을 목표로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제야 “애초에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명령에 군이 따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라고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군인 역시 보통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가족과 사회를 건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지 못했다.


그는 이걸 “경고성의 평화적인 계엄”이라 불렀다. ‘평화’와 ‘계엄’이란 단어는 공존할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 비상계엄을 겪은 내 홍콩 친구는 태어나 자란 고향을 떠나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고, 미얀마 친구는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여태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산다. 그게 21세기에도 여전히 일어나는 국가 폭력이 만들어 낸 일상이다. 12월 3일 그날 밤 멈춰둔, 내가 보던 드라마도 여전히 시작되지 않았다.






그들만의 일그러진 영웅

“2시간짜리 계엄이 어디 있단 말이냐?”

애초에 책임감 따위 없었던 내란우두머리는 내내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아예 그런 사실이 있다는 것조차 부정하는 인지 부조화 상태다. 피해자는 아무도 없다고까지 말한다. 가해자는 언제나 피해자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만든다. 학폭이나 사회적 억압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건 분명한 2차 가해다.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

윤석열은 최악의 최악이다. 자신의 패거리들에게 자신의 편을 들면 피해자가 아닌 힘 있는 가해자가 될 거라 꼬드긴다. 일부러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고립된, 폭력을 사용해 자신을 찾거나 존재감을 느끼려는 사람들을 이용한다. 외로움과 무력감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과 꼭 닮은 사람들만 찾아 패거리를 만든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더욱 극심해진 경제적 양극화, 그로 인한 무기력감과 소외감, 외로움에 빠진 노년층과 경제적 약자는 물론 청년 남성들에게 젠더 갈등까지 부추겨 광장을 반으로 갈라놓는다. ‘네가 불행하고 외롭고 가난한 건 바로 저들 때문’이라 끝없이 세뇌한다. 피해자가 되면 약자가 된다는 생각에 이를 부정하려는 심리를 가진 사람들에게 칼을 쥐여주고 찌를 상대를 손가락질한다. 그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임기 내내 인기 없던 대통령 윤석열은 그 원인을 자신의 실정이라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야당, 국회, 언론 탓을 하다 끝내 국민 탓을 했다. 평생 민주주의보다 군사독재 아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에서 한때 잘 나간다고 큰소리쳤지만, 이제는 집에서 가족들에게마저 내쳐져 눈칫밥 먹고 탑골공원 가기엔 자존심은 상하고 광화문 극우 집회에나 가야 ‘선생님, 장군님’ 소리 들으며 대우받는 퇴역 군인, 퇴물 교수, 원로 법조인, 옷 벗은 공무원, 공천 못 받은 국회의원, 한물간 연예인들이 그런 윤석열에게 감정 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비뚤어진 연민과 공감은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 파시즘으로까지 치닫는다.

한 나라의 공당이자 집권 여당이라는 국민의힘은 그들만의 일그러진 영웅, 우두머리 윤석열을 따라 몰려다니며 온갖 폭력에 동참한 패거리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권력 구조에 복종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집단을 지키고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학폭에서 가해자는 자신이 속한 패거리의 일원으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 지으며 그 집단의 가치를 지키려 한다. 그 목적 역시 오로지 자기 패거리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때, 가해자가 그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면서 피해자는 무시된다. 피해자의 고통을 부정하거나 비난하는 게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을 유지하고 권력을 보호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걸 믿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계엄까지 했겠냐”라고 말하는 국민의힘 패거리는 이 무시무시한 학폭의 책임을 오로지 피해자에게 돌린다. 그들의 조상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여태 그런 식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온갖 죄를 저지른 추악한 가해자 패거리가 똘똘 뭉쳐 오히려 피해자를 짓밟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는 2차 가해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입만 열면 외치는 ‘입법 독재’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국민의 선출한 국회의원들도 채워진 국회의 ‘입법의 권리’는 ‘독재’라는 말과 공존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의 횡포로 줄탄핵을 해 국정이 파탄 났다는 윤석열의 변명은 자신이 국회의 동의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총 29명의 장관급 인사를 강행했다는 진실을 덮는다. 그렇게 임명한 자들이 단지 금융 사건 수사를 해봤다는 이유로 금융위원장으로 임명된 자신의 측근이자 검사 출신인 김주현, 전광훈이 하나님으로부터 대통령으로 만들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고용노동부 장관 김문수, MBC를 갈기갈기 찢어 민영화해 버리겠다는 방송통신위원장 이진숙,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국가인원위원장 안창호, 그리고 대통령을 북한의 수령처럼 여기는 국방부장관 김용현 등이다. 그는 심지어 12.3 내란 직후에도 헌법재판관 정형식의 처형인 박선영을 국회 동의 없이 진실화해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야당이 예산을 일방적으로 삭감했다는 선동은 윤석열 정부의 서민 정책과 과학기술분야 R&D 예산 삭감의 민낯을 가리기 위함이었다. 야당이 삭감한 예산 중 대부분은 검찰과 대통령실의 눈먼 돈, 특활비였다. 법적 절차를 밟아 국회의 권능을 행사해 폭주하는 정부를 견제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국회, 즉 국민과 소통하고 협치 하는 대신 ‘입법 독재’라는 프레임을 씌워 패거리를 내세워 여당을 마치 상종 못 할 범죄자로 취급했다. 국회에 가로막힌 법안은 대통령이 아닌 오만하고 난폭한 검사의 태도로 패거리의 도움을 받아 시행령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면서도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국회 의결로 넘어온 법안에 총 25회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거부권 행사 횟수로 기록됐다. 그가 거부한 법안에는 양곡관리법, 전세사기 특별법, 민주유공자 예우법, 노란봉투법, 방송개혁법, 민생회복지원금 지급법, 농어업재해대책법,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 등이 있으며, 윤석열이 12.3 내란을 일으키기 직전 마지막으로 행사한 거부권은 11월 27일의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삼권분립의 원칙을 무시하고 검찰 조직을 사조직처럼 부리고 언론을 통제해 온 윤석열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까 골몰했다. 우두머리 윤석열은 언제나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숨기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패거리 언론의 협조하에 사회적 담론으로 몰아갔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을 마약과 연관 있는 것처럼 둔갑시키고, 노동자를 ‘건폭’으로 악마화하고, 검찰의 칼로 정적들을 모두 제거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은 이들을 다수인 대중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혐오하도록 판을 짰다.

윤석열은 사회에서 소외된 수많은 이들이 정작 화를 내어야 할 정부와 이 시스템을 만든 주체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무조건 파란색과 빨간색 중 하나를 골라 상대를 죽도록 혐오하도록 부추기며, 더 나아가 너무 화가 나면 죽여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었다. 결국 작년 이맘때쯤 윤석열의 권력에 유일하게 대적할 만한 힘을 가진, 검찰의 칼로 아무리 베어도 버티던 거대 여당 당대표 이재명이 목에 칼을 맞았다. 피를 철철 흘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에게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위기 상황도 아닌데 응급헬기를 썼다며 고발했고, 습격당한 부산이 아닌 자택과 가까운 서울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부산을 무시했다며 지역감정과 혐오를 조장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으로 저 패거리의 바닥이 어디인지 이미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저들의 바닥은 아직이었다.

12.3 내란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과 박선원 의원이 ‘주블리 김병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고 특전사령관을 항의 방문해 “2차 계엄 명령이 내려오더라도 따르지 않겠다”는 항복선언을 받아냈다. 그제야 나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걸 깨달았다. 국회는 다시 헬기가 착륙하지 못하도록 운동장에 드문드문 대형 버스와 당직자들의 자가용을 세워놓았고,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먹고 자며, 시민들은 몇 날 며칠 국회를 지키겠다며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계속되는 우두머리 윤석열과 그 패거리의 폭력이 머지않아 끝날 거란 희망도 잠시,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 좌절됐다. 본회의장을 우르르 나가 버리는 국민의힘 패거리들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던 피해자인 국민은 또다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프고 두려웠다. 끔찍한 2차 가해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고 있었고, 우리는 점점 더해지는 고통에 무뎌지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노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죽었다 깨나도 이해 못 할 성장 드라마

윤석열은 지난 2년 반 동안 교실, 아니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때리고 괴롭히고, 하다 하다 선생님들(판사들)까지 협박하고 어깃장을 놓았다. 그때 우두머리와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던 패거리 중 항상 앞에 나섰던 검찰이 12.3 내란 직후 갑자기 정의의 사도로 돌변해 수사를 시작했다. 윤석열 패거리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경찰도 갑자기 우두머리를 잡겠다고 나섰다.

그동안 윤석열의 무자비한 폭력에 국민의힘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12.3 내란에도 분명 연루되어 있을 검찰은 학폭 가해자 DNA를 절대 버릴 수 없는지 다른 수사기관과 협조해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을 잡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국수본을 치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다. 그동안 권력을 쥔 패거리에만 붙어 다니며 콩고물을 얻어먹던 검찰 출입 법조 기자들이 깔아주는 레드 카펫에서 검찰은 말쑥하게 수트를 차려입고 칼을 갈며 누굴 죽이고 누굴 살릴까, 장난질하려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있는 듯 없는 듯했던 공수처가 나타났다. 그동안 윤석열의 학폭을 모른 척하고 가만히 구석에서 책이나 읽던 오동운이 사부작거리며 일어난 것이다. 사실 오동운은 원래 공수처장 1순위가 아니었다. 당초 윤석열이 낙점한 건 김태규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이었는데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다른 추천위원인 법원행정처장조차 그를 반대해 어부지리로 오동운이 공수처장이 된 것이다. 또 다른 후보였던 검사 출신 이명순도 있었는데,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직후라 윤석열이 또 검사 출신을 임명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법은 현직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법의 빈틈과 혼란을 오히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이 이용하려 했다. 그러자 공수처는 수사권 논란을 정리하겠다며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와 함께 공조수사본부를 만들어 검찰에 윤석열 관련 사건에 대한 이첩을 요구했다. ‘법대로’ 하자니 할 말 없는 검찰은 윤석열처럼 며칠을 뻗대고 버티다 ‘니들이 해봤자 얼마나 하나 보자’ 하는 태도로 사건을 공수처에 넘겼다.

오동운은 극악한 학폭 가해자이자 한 나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 한 내란범을 잡기엔 너무 예의 바르고 점잖았다. “대통령님이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셨으면 좋겠다”라며 악인에게 허망한 선의를 바라는 그의 모습에 피해자인 국민들은 허탈했다. 하루하루 2차 가해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우리에게 의지도, 능력도 없는 공수처는 거대한 패거리의 한통속으로 보였다. 대통령에, 여당에, 검찰에, 경찰에 늘 얻어터지기만 하던 우리는 “그래도 의지할 때라곤 우리 힘으로 세운 공수처밖에 없다”라며 화내고 욕했다가 어르고 달래며 멱살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공수처장 ⓒ 연합뉴스




우두머리 윤석열의 1차 체포 집행 실패 후, 오동운 공수처장은 달라진 모습으로 국민 앞에 섰다. 이미 한차례 윤석열의 한남동 관저 앞에 찾아가 또다시 내란을 선동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위법한 영장을 집행하지 말라”며 오동운에게 달려들었고, 그는 강한 눈빛과 어조로 “정당한 영장 집행이고, 집행을 막을 경우 국회의원이라도 현행범 체포 대상이 된다”라고 쏘아붙였다. 우리는 오동운, 그가 각성하는 모습에 감정을 이입했다. 불의에 맞서 정의를 수호하려는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안 되는 거라면, 괜찮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이해할 수 있다.



1.jpg 오동운 공수처장 각성 전 / 각성 후 ⓒ 무명의더쿠



공수처와 경찰이 힘을 모아 드디어 윤석열 2차 체포 집행에 성공했다. 체포 영장 집행 시 윤석열이 관저 안에 공수처 젊은 검사들을 앉혀 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고, 이후 윤석열 측으로부터 “체포 대신 자진 출석하겠다” 같은 내용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모두 마음을 모아 빌었다. ‘제발, 안 돼. 공수처야, 마음 약해지지 마.’


결국 공수처가 해냈다. 검찰이 선택적으로 휘두르는 법의 칼날과 폭압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고군분투로 겨우겨우 세운 공수처가, “공수처는 삼류, 사류나 가는 곳”이라며 윤석열이 작정하고 모멸감을 준 공수처가, 그래서 인력도 예산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건물 하나 없어 과천중앙청사에 세 들어 사는 공수처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이자 포악하기로 소문난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을 체포한 것이다. 처음엔 의기소침했던 존재감 없던 주인공이 계속되는 학폭 가해자들과 패거리의 협박과 물리적인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한 편의 성장 드라마에서 우리는 공수처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가해자 윤석열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한 날, 우두머리를 잃은 패거리는 또다시 피해자의 인격을 짓밟고 모멸감을 느끼도록 자존심을 건드리는 치졸하고 사악한 화풀이와 2차 가해를 벌였다. 서로 수고했다 다독이며 공수처장이 팀원과 함께한 돼지갈비 회식을 트집 잡아 <TV조선>이 식당 CCTV 화면까지 함께 내보냈고, 다음 날 바로 이 기사를 활용해 국민의힘과 지지자 패거리가 집단 사이버 린치를 가했다. 언제나 윤리를 왜곡해 정의를 부정하는 노련한 가해자와 권력자에게 논리는 필요 없다. 그들의 힘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패거리에겐 이런 말도 안 되는 트집이 오히려 더 잘 먹히기 때문이다.



공수처_회식_조선일보.png 공수처 돼지갈비 회식을 비난하는 TV조선의 보도




<조선일보>가 어떤 신문인가? 1972년 10월, 박정희가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조국의 앞날의 걸어가는 길을 내다볼 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로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사설을 낸 신문 아닌가? 1980년 전두환이 광주를 탱크로 짓밟았을 때는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며 “계엄군은 일반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극소화한 희생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라고 평가한 신문 아닌가?

그런 <조선일보>가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의 1차 체포 영장 집행이 실패했던 지난 6일, “법이 무너졌다”는 1면 머리기사를 냈다. 우두머리와 그 패거리는 그들의 조상인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위헌이라고 분명히 인식하는 12.3 불법 비상계엄을 여전히 “대통령의 합법적인 통치 행위”라 우긴다. 그리고 대한민국 법치주의 시스템과 국민이 합법적으로 집행한 체포, 구속, 기소에 모두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여 민주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내란범들과 그 패거리 언론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vs 반민주주의’ 대결을 ‘보수 vs 진보’ 프레임으로 뒤섞어 물타기 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50여 년 전 쓴 <조선일보>의 기사가 지금까지 남아있고, 또 지금 봐도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것처럼 역사는 지금, 이 시대, 이 순간, 누가 정의의 편에 섰는지 바르고 적확하게 적힐 것이다.



공수처_입장.png 검찰은 수백만원 술자리 접대도 서로 봐주는데 돼지갈비 회식을 기자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공수처








키세스우주연합군이 간다!

저따위 언론에 비열하고 치졸한 공격을 당한 공수처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또다시 학폭 가해자에 얻어맞고 돌아온 친구를 본 것처럼 속이 상했다. 시민들은 공수처에 하나둘 화환을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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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에 도착한 응원 화환 ⓒ 무명의더쿠




“국민이란 대지에 뿌리내려 어떤 외압에도 굳건하길”

“오동운 너, 이 화환 받으면 국민 손잡고 같이 힘내는 거다?”

“다음엔 소 먹어 돼지 말고 공수처 대박 파이팅!”

“우리 공수처 다음엔 소 먹어! 계엄하고 장어 65kg 먹는 놈도 있는데”

“공수처 기죽지 마! 잘 먹고 다녀 잘 자고!”

“일류가 모이는 공수처 무한히 뻗어나가는 정의”

“지지는 국민이 할 게 마무리는 공수처가 할래?”

“응원 및 지지 항시 대기”

“국민이 만든 성장형 공수처 국민과 함께 완성형 공수처로”

“대업을 이룰 땐 시련이 찾아온다”

“한국인은 밥심이다 밥심으로 윤석열 단죄”

“한우 꼭 먹어. 집도 사서 얼른 이사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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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에 도착한 응원 화환 ⓒ 무명의더쿠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을 체포한 뒤 오동운 공수처장은 한껏 밝은 표정으로 차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기자들 앞에 섰다.

“오늘은 국민 앞에서 버벅거리지 않기 위해서 제가 좀 적어왔습니다”라며 차에서부터 손에 들고 있던 종이 한 장을 펼쳤다. 이제 겨우 조금 웃을 수 있게 된 그와 우리가 공감대와 연대감을 형성했다. 그렇게 믿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국민 앞에서 버벅거리지 않기 위해 적어왔다"는 오동운 공수처장 ⓒ 뉴스핌




“그니까 내가 지금 본도시락 까먹으며 남의 건물에 더부살이하는 공무원들한테 수백 명의 총든 군인과 경호처를 물리치고 대통령 잡아 오라고 호통을 치고 있었던 거임?”

“지금 레벨 1짜리한테 라스트 보스 잡아 오라는 왕이 된 기분임 ㅋㅋㅋ”

“불쌍한 새끼들아. 그럼 도와달라고 했어야지, 오또케 오또케 발 동동 구르지를 말고.”


“내가 진상이었던 거임?”


[키세스우주연합군 커뮤니티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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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jpg ⓒ 무명의더쿠




사람들은 관심이 생기면 더 알고 싶어 한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다. 그렇게 기꺼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서로를 배우는 마음으로 의미를 쌓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자란다. 그렇게 마음은 점점 확장하고 커뮤니티, 사회가 움직인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 체포 이후,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공수처를 철저히 무시했다. 공수처는 끝내 윤석열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못했다. 이후 공수처는 검찰에게 사건을 송부했고, 검찰은 윤석열의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자는 공수처 설립 취지에 따라 검찰은 우두머리 윤석열과 거래하며 수사 장난질할 생각 말고 신속하게 기소 여부만 결정하라는 의미였다. 당황한 검찰은 한 번 더 법원에 떼를 썼으나 윤석열의 내란으로 쑥대밭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서부지법 폭동으로 제대로 화가 난 법원은 단호히 윤석열의 패거리 중 하나인 정치검찰과 윤석열의 작당 모의를 막아 세우고 공수처의 손을 들어줬다. 스타일이 잔뜩 구겨진 검찰은 애써 웃으며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구속기소 했고, 지금도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살아남을까 머리를 쓰고 있다.









이 세상에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

철저히 인간의 우열을 가려 계층화하고 패거리를 지어 자기들은 ‘귀족’이라 착각하지만 결국 하는 짓은 ‘조폭’ ‘카르텔’인 윤석열과 패거리는 상대를 모두 악마화한다. 저들이 이재명을 두려워하는 건 이재명이 악마여서가 아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가한 폭력을 가능케 하는 권력을 상대가 가졌을 때 똑같이 할 거란 생각 때문이다. 그게 두려워 상대를 더욱 적으로 만들고 악마화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악의 순환이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세상은 온통 적이요, 누구든 언제든 나를 배신하고 내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르는 잠재적 가해자다. 그들이 아는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더 악랄한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재명은 대한민국 기득권 카르텔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법고시 패스하고 변호사가 되었으니, 자신들처럼 돈과 권력을 좇으며 살아야 하는데 인권 변호사로 약자의 편에 서고 툭하면 귀찮게 기득권에 대든다. 그래서 대체 어느 학교, 어떤 집안 출신이라 저리 까부나, 하고 봤더니 서울대도 아니고 가난한 집 소년공 출신에 감히 자신들과 겸상도 못 할 신분인 것이다. 개천에서 난 용이면 조용히 용들 사이에서 주머니나 채울 것이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고 고작 삽 하나 들고 고군분투한다. 상대가 약하니 곧바로 배척과 무시, 조롱, 악마화, 희화화가 시작된다. 아무리 건드려도 막아주는 민주당 세력조차 없다. 아이코, 신난다.

하지만 2009년, 우리는 노무현을 그렇게 잃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학폭 우두머리를 꾸역꾸역 구치소에 집어넣어 놨더니 이젠 헤어에 메이크업까지 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12.3 계엄 날과 똑같은 정장과 넥타이로, 굳이 안 나와도 되는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심의에 참석해 여전히 패거리를 향한 선동과 협박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 들어 툭하면 그가 운운하는 ‘인권’은 모두 대한민국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자신을 희생한 열사들의 열매이다. 가해자 윤석열은 구치소에 앉아서도 여전히 “너희들이 그럴 만해서 때린 거다”라고 어깃장을 부린다. 자신은 그래도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총살로 끝냈으면 싶지만, 민주주의와 헌법을 부서뜨리는 내란범이자 학폭 가해자 앞에서 피해자인 우리는 오히려 적법절차를 따박따박 밟아 그를 뭉개는 것이 바로 정의일 테다. 그래서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걸 똑똑히 알려줄 테다.










우리의 성장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다


윤석열의 내란은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현대사에서 해방 이후 소련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압박으로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방해해 친일파와 그 잔재를 제대로 숙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친일의 잔재가 대한민국의 군사독재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이어지고, 탐욕스러운 재벌가의 세습과 범법이 구국으로 포장되어 기득권이 시민의 권력을 틀어쥐고 사회를 억압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결국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같은 괴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지금도 또다시 그 세력은 윤석열을 버리고 누구를 우두머리 자리에 앉혀야 자신들의 기득권이 이어질지 골몰한다. 그들이 살짝 찔러보기만 해도 권력에 눈먼 자들은 두더지처럼 튀어나와 자신의 탐욕을 증명한다.

가해자들은 집단을 결속시키기 위해 ‘내집단 vs 외집단’으로 구분하고 자신들을 내집단으로 가둬버렸다. 그리고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집단을 무조건 적으로 규정한다. 그래야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우리는 그들의 규정하에 외집단이 되었다. 내집단은 스스로 포위되었지만, 외집단은 끝없이 바깥으로 확장할 수 있다. 저항의 핵심은 연대이다. 개인이 부당한 권력에 맞선다 해도 혼자선 정의로운 불복종을 실천하기 어렵다. 외집단인 우리는 모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 앞으로 더욱더 그 세계를 확장할 것이다.


내란우두머리 윤석열의 파면과 처벌은 당연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우리가 모든 가해자 패거리를 제대로 단죄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숙제이다. 시민들은 연약한 공수처를 없애기보다 오히려 인력과 예산을 더 지원해 검찰에 대항할 조직으로 제대로 키워보자는 쪽에 더 힘을 실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공수처를 찾아 시민의 권력을 행하는 독립적인 공권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고려한 사회적 목표, 즉 공동선을 추구하는 기관을 통해 시민이 직접 민주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그게 국회가 되어야 하고, 검찰과 경찰이 되어야 하며, 법원이 되어야 한다. 정부와 군대, 국회의원, 공권력이 시민을 따르지 않고 폭력 불량배의 패거리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선명하고 뚜렷한 결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학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 시민, 키세스단 우주연합군의 성장 드라마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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